10월 24일(전교 주일) 이사 2,1-5; 로마 10,9-18; 마태 28,16-20

내 삶의 기쁨은?

기쁘게 지내고 계십니까? 행복과 사랑을 느끼며 지내시는지요? 이렇게 질문하는 연사도 사실은 썩 기쁜 나날을 보낸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리 질문드리는 것은 기쁨이야말로 우리 삶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지는 그가 기쁜가 그렇지 않은가로 가늠된다고도 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세속적 재미, 오락이나 취미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한마디로 좀 심오한 맥락의 기쁨이겠지요. 함께 나눌 때, 진리와 선을 통해,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복음의 기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어떤 이도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에 배제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삶에는 실망과 좌절, 슬픔과 미움이 더 많을 때가 있습니다. 불의한 현실, 억울한 일을 당하며 분노가 솟구칩니다. “정의? 그런 달달한 것이 아직 남아 있는가?”라는 영화 대사처럼 현실은 정말 어수선합니다. 그런데도 이 가을에 우리 가슴은 이리도 시릴까요? 이 아쉬움과 허전함은 뭘까 하는 찰나, 어떤 작가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한번 같이 보실래요?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아프지 않고 마음 졸이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미워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한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김재진

 

행복하고 기쁘고픈 바람들!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사실 우리가 지향하는 가장 이상적인 기쁨과 행복이 아닐까요? 물론 나만 편하고 말자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누군가 날 위해 희생하는 만큼 나 역시 역경과 고난을 견디겠다는 그런 사랑일 겁니다. 하지만 웬걸, 왠지 내 주변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짜증이 나는 왠수만 가득한 것 같은 이 상황은 뭘까요? 그래서 사랑은 고사하고 미움과 스트레스만 가득한 이 심정, 아침에 출근하면서 휘파람보단 욕이 나오고, 그 사람 얼굴을 떠올리면 또 욕이 나오고, 구정물 같은 정치판 보면서 또 욕하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미움과 욕을 달고 살고. “세상은 원래 그래!”라며 넘어가는 게 우리 사는 모습이죠. 하지만 뒤늦게, 아주 뒤늦게 깨닫게 되는 건, 그렇게 미워하고 욕하면서 결국 내가 행복이나 기쁨과는 멀어진다는 슬픈 현실입니다. 행복하고 기뻐도 모자랄 인생, 욕하고 미워하다 다 끝난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깝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 어떻게 해야 기쁠 수 있지? 어떻게 해야 힘든 현실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죠?”라고 절박하게 묻게 됩니다!

빛과 어둠이 있듯이<br>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처럼<br>장점과 단점이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br>축복의 이면에는<br>그 축복이 사라져 버릴 거란 걱정이 있고<br>지금의 불행에는 하느님께서 주시는<br>희망이 있음을 떠올립니다.<br>그리고.... 그 희망을 잃지 않길!<br>잘 모르고 두려워도<br>희망과 용기를 간직하길!<br>서울 마포구 합정동 꾸르실료 회관 성당 십자가. ⓒ이주형<br>
빛과 어둠이 있듯이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장점과 단점이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축복의 이면에는
그 축복이 사라져 버릴 거란 걱정이 있고
지금의 불행에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희망이 있음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잃지 않길!
잘 모르고 두려워도
희망과 용기를 간직하길!
서울 마포구 합정동 꾸르실료 회관 성당 십자가. ⓒ이주형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기쁠 수 있죠?

제가 드리는 이야기가 기쁨을 되찾으려는 여러분들의 기대에 부응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냥 한마디로 “그래도 사랑할 용기”, "내 기쁨을 지킬 의지" 정도로 요약해 봅니다. 분명한 것은 조건이 갖춰져야 행복하다면 누군들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고, 이기고 쟁취해야 행복하다면 그 또한 어림도 없는 이야기고, '언제가 행복해지겠지'라고 믿으며 미래만을 기다린다고 해도 현명해 보이진 않습니다. 결국 행복은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해 보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이야기가 나오지요? 불의했으나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넘긴 청지기를 예수님께서 칭찬하셨다고 합니다.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으나,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와 일맥상통한다고 할까요? 결국 내가 좀 정신을 차려야겠네요! 그렇게 다시 돌아보니 떠오르는 게 좀 있습니다. 가난한 이웃들, 아프고 병든 분들, 자식이나 부모를 먼저 보낸 분들, 심지어 억울한 감옥살이를 수십 년간 하신 분들,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한 사람들 등등. 얼마 전 아는 신부님께서 한국에 선교 와서 감옥살이하신 프랑스 신부님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그 신부님이 너무너무 고생하신 것을 보니 차마 밥 먹기도 미안했다는 그런 말씀을 하신 게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불평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내가 선택하는 것에 따라

이야길 좀 마무리하겠습니다. 어떤 책을 봐도, 어떤 이야길 보아도, 행복은 내 생각이나 의지와 깊이 연관되는 듯합니다. 비관보다는 낙관을, 조급함보단 여유를, 골질이나 화보다는 웃음을, 저주보다는 축복을, 미움보다는 사랑을 그리고 불평보다 감사를, 악보다는 선을 선택하는 이에게 행복은 가까울 것이라 여겨집니다.

오늘 전교 주일입니다. 복음의 가르침을,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함을 기억하는 날이죠. 낙관과 여유, 웃음과 축복, 사랑과 감사, 선함을 전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위해, 무엇보다 나를 위해!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시편 1,1-2)

 

이주형 신부(요한)

서울대교구 성서 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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