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연중 제29주일) 이사 53,10-11; 히브 4,14-16; 마르 10,35-45

가장 깨지기 쉬운 것은?

인생에서 가장 깨지기 쉬운 것은 무엇일까요? 유리컵, 소주잔, 도자기가 아니라 바로 행복이랍니다. 실제로 평화롭고 아늑했던 잔잔한 행복이 금세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집트를 탈출했던 백성들이 거기서 먹던 고기국을 떠올리며 불평을 하듯(탈출 16,3), 우리도 “아 그때가 좋았어!”라며 불만과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첫사랑, 신혼, 학교와 직장생활, 건강과 가족의 행복, 그 모든 것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마테를링크의 동화 파랑새에서 이야기하듯 진정한 행복은 가까이 있으나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꼭 그렇진 않습니다. 인생에는 예기치 못한 불행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힘들어도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 있고 극복할 만한 시련도 있겠지만, 정말 어려운 상황도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많은 분이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나 불우한 이웃들이 더 그렇습니다. 얼마 전 작은 가게를 하시는 신자분을 만났는데 빚이 많아 폐업도 못한다고 허탈해 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며 자살도 생각이 났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사랑을 깨달음과 신앙인의 지혜

요컨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도 있고,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습니다. 전자에 대해서 우리 자신의 건강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실한 삶, 희망과 선함을 신뢰하기, 역경을 이기는 덕과 힘을 기르기 등입니다. 그런데 후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그에 대한 정답이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섣불리 어떤 조언을 내놓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위로와 공감을 먼저 나누고 신앙의 가르침대로 하느님의 위로와 은총을 의식함이 필요해 보입니다. 가톨릭교회의 대사회적인 가르침을 담은 "간추린 사회교리" 문헌에서도 고통과 어려움, 폭력과 좌절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43항) 하지만 행복과 불행을 논함에 있어 이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바로 내가 무엇을 잘해서 받는 사랑도 아니요, 그렇다고 내가 뭘 잘못해서 받는 벌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시고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 최고의 지혜는 바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br>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br>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br>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br>땅에 떨어지지 않는다.<br>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br>다 세어 두셨다.&nbsp;&nbsp; &nbsp;<br>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br>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br>(마태 10,29-31)<br><br>이 말씀이 새삼 눈물 나는 요즘입니다. 고통과 시련이 야기하는 큰 힘듦 바로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작은 참새보다 우리가 귀하고,(물론 참새도 소중합니다 ^^)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주님의 말씀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장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바로 사랑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성 앵배르센터, 십자가의 길. 10처 조각상) ©이주형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마태 10,29-31)

이 말씀이 새삼 눈물 나는 요즘입니다. 고통과 시련이 야기하는 큰 힘듦 바로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작은 참새보다 우리가 귀하고,(물론 참새도 소중합니다 ^^)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주님의 말씀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장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바로 사랑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성 앵배르센터, 십자가의 길. 10처 조각상) ©이주형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느님

“너희 가운데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르 10,35)

이번 주 복음의 이 말씀은 서로 섬기고 돌봄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또한 그런 섬김이 올바른 신앙생활이자 하느님을 드러내는 방법이면서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위한 노력으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욕심과 이기심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돌보는 사회가 된다면 현실의 많은 어려움도 상쇄될 겁니다. 그리고 저는 이 말씀을 통해, 저를 위해 일하시는 하느님을 묵상했습니다. 소화데레사 성녀께서 ‘자녀가 다쳤을 때 달려가 약을 발라주는 아버지도 좋은 아버지이나, 자녀가 다칠까 봐 마당의 돌조각들을 미리 치워두는 아버지가 더 좋은 아버지다’라고 말씀하신 그런 맥락입니다.("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중)

사랑과 은총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실제적입니다. 물론 이를 감지하고 인식하는 것은 개인의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함을 말씀드립니다. 제가 사제여서가 아니라 저도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이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누군가를 보내시기도 하고, 어떤 표징을 보여 주시기도 하며, 늘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등 끊임없이 일하시고 계십니다. 그 사랑 때문에 힘들어도 삽니다. 또 우리를 살게 합니다. 우리 같이 용기를 냅시다. 그 사랑을 믿으며 희망하면서.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
약속해 주신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히브 10,23)

 

이주형 신부(요한)

서울대교구 성서 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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