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덕진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

2010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가 내린 사형제도 합헌 결정은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 또 다시 치욕스러운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헌법재판관 9명중 5명이 합헌, 4명이 위헌의 의견을 내어 사형제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가 합헌의 근거로 든 헌법 110조 4항의 단서 조항의 조문은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에 불과하다. 총 130조로 되어 있는 대한민국 헌법에서 “사형”이라는 단어는 110조 4항, 그것도 단서 조항에 딱 한번 나온다. 비상계엄 하에는 재판을 한번만하고 죄를 확정 지을 수 있는데 사형을 선고 했을 경우는 재판을 한번만 해서는 안된다는 설명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 짧은 단서 조항을 예로 들며 “헌법은 이미 사형을 긍정하고 있으므로 합헌이다”라고 선고하는 것을 과연 헌법재판소의 준엄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고 세상이 거꾸로 돌아갈 일이 아닐 수 없다.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이 이렇게 간단하게 부정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절망을 넘어 공포감 마저 들게한다.

2월 24일부터 26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전 세계 100여개국에서 온 1,000여명의 인권활동가들이 모여 네 번째 사형폐지 세계총회 (4th World Congress Against Death Penalty)를 개최하고 있다. 스페인의 자파테로(Zapatero) 총리의 개회사로 시작된 이번 총회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관심은 한국 헌법 재판소의 결정이었다. 지난 몇 번의 국제회의에서 만난 다른 국가의 활동가들은 한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바로 내일이냐고 물으며 한국의 활동가들이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으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격려의 말들을 아끼지 않았다. 나 역시 특별히 아직도 사형제도가 대부분의 국가에서 존치되어 있고 수백명이 사형집행되는 아시아 국가들의 활동가들에게 한국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엄청난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늘의 결정을 기다렸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김희진 사무국장,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이영우 신부 등과 오랜만에 한국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인권과 생명의 원칙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을 나누고 숙소에 들었다. 이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발표할 여러 입장의 성명서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한국에서 헌재의 선고 직후 발표할 세가지 입장(합헌일 경우, 위헌일 경우, 헌법불합치일 경우)의 성명서가 준비되어 있었고 제네바에서 사형반대아시아태평양네트워크(ADPAN)가 발표할 영문 성명서 역시 합헌과 위헌 두 가지 버전으로 작성해 두고 있었다.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겠다던 생각과는 달리 밤새 한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십년 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음 구속되어 선고를 기다리던 날의 밤에도 이렇게 심장이 쿵쾅거리지는 않았다. 감당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와 이제 끝나는 것인가 하는 커다란 기대가 1분 간격으로 반복되며 잠을 잘 수 없게 했다.

제네바 시간으로 오전 6시 8분, 로밍 해 둔 휴대전화에 도착한 ‘합헌임’이라는 짧은 문자를 본 순간 난 아무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지난 8년간 사형폐지 활동의 실무자로서 진행 해 온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그 길고도 지루했던 길을 함께 걸어 왔던 사람들의 실망한 표정이 떠올랐다. 사형집행 중단 10년을 기리며 김대중 대통령과 종교계, 정치계, 시민사회의 원로들과 지도자들이 프레스 센터 국제회의장을 가득 메우고 대한민국이 사형폐지국임을 선포했던 날, 국회의사당앞에서 비둘기 60마리를 하늘로 날리며 이제 대한민국은 영원한 사형폐지국이라고 전세계 만방에 선언했던 일, 이해인 수녀님과 정희성 시인, 공지영 작가와 배우 박철민, 정수영, 권해효, 가수 한동준, 피아니스트 이희아 등이 모여 함께 마음을 모았던 사형폐지 콘서트, 전국의 영화학도들이 모여 잔치를 벌인 사형폐지영화제, 시사만화가들과 함께 했던 사형폐지 만화 전시회,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한 주교들과 사제, 수도자 들이 500석 극장을 매진시켰던 영화 집행자 시사회, 4대 종단 지도자들이 발표한 공동성명, 두 차례에 걸친 10만인 사형폐지입법청원, 명동성당과 가톨릭회관 벽면을 고가의 조명기로 “NO DEATH PENALTY", ”사형폐지 생명사랑“이라고 아름답게 수놓고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던 날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사형폐지 활동의 실무자로 일하며 대표들을 모시고 세 명의 국회의장을 만났고, 여섯 명의 법무부 장관을 면담했으며 16대 국회부터 300명이 넘는 국회의원들을 만나서 사형폐지를 호소했다. 추운 겨울날 거리에 늘어서서 수십만명의 서명을 받았고 수천장의 엽서를 국회에 보냈고 서대문 구치소 터 사형장 앞에서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데드맨 워킹(Deadman Walking)의 주인공 헬렌 프리진 수녀와 함께 전국을 돌며 사람들을 만났고 미국과 일본, 대만에서 온 이들과 피해자 가족들을 만났고, 수백명이 함께 문명국가로 나가자며 현수막을 펼치고 거리를 걷기고 했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외톨이가 된 사형수들을 만나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세상에 대한 원망을 평화와 성찰로 바꾸는 일을 해 온 사람들이 누구인가? 세상을 향한 문을 닫고 한과 눈물의 세월을 살고 있던 살인사건 피해자 가족들을 찾아가 수십 번의 문전박대 당하고 나서야 그들과 차 한잔 마실 수 있을 만큼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수십 번이 몇 번을 더 해져야 그들은 누군가를 부둥켜 안고 통곡할 수 있으며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피해자 인권’이라 쉽게 떠드는 이들이 과연 알기나 하는가 말이다.

평생을 사형수들을 만나며 기꺼이 그들의 ‘엄마’가 되어 살아오셨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실제 주인공 조성애 수녀의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저 깊은 곳에서 눈물이 왈칵 솟아오른다. 팔십에 가까운 노구를 이끌고 전국의 사형수들과 살인피해 가족들을 만나며 아이들의 새 학기 학용품까지 챙기는 자상한 할머니, 사형수들이 교도소에서 사고라도 치는 날에는 차라리 내 종아리를 때리고 내 아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는 엄한 어미. 사형제도를 없애는 일을 하늘이 준 사명으로 알고 살아오신 노 수녀의 절망을 짐작하기만 하는 것으로도 마음이 아파 더 이상 글을 이어 갈 수가 없다. 57명의 아들들이 실망할 것을 생각하며 누구하나 잘못된 마음을 먹지라도 않을까 오늘밤도 잠들지 못하고 묵주기도를 바치실 것이 분명하다.

사형폐지 세계총회가 열리고 있는 제네바의 컨벤션센터에 도착한 직후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다른 국가의 활동가들이 나와 김희진 사무국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고 가볍게 포옹하며 따뜻하게 위로한다. 주 스위스 스페인 대사도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인사를 건네자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사를 잊지 않았다. 전 세계 참가자들에게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이렇게 비겁하고 못난 결정을 내렸다고 폭로하고 한국의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하는 성명서에 동의해달라고 짧은 영어로 제안해야 하는 이 심정을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헌재의 결정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사형제도에 대해 위헌 의견을 낸 김희옥 헌법재판관이 제출한 헌법 제110조 제4항 단서조항에 대한 의견을 보면, “이 단서조항은 도입 배경이나 규정의 맥락으로 보아 법률상 존재하는 사형의 선고를 억제하여 최소한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한 규정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제10조에 비추어 보아도 간접적으로나마 헌법상 사형제도를 인정한 근거규정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에서는 간첩죄 등에 대해 단 한번의 재판만으로 형을 확정할 수 있지만 사형은 일반의 경우처럼 3번의 재판을 거쳐 형이 확정되어야 한다는 조문은 비록 비상계엄 하에 있을지라도 국민의 인권과 생명은 철저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보호조항’이지 않은가? 이러한 조항을 억지로 해석하여 헌법이 사형을 긍정하고 있다고 판단한 다섯 명의 재판관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진실로 그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이 헌법을 연구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법관으로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법리적 판단으로만 결정했는지 묻고 싶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전하는 공보관이 공식적으로 밝힌 입장에도 헌법재판소는 법리적 판단만 한 것이지 사형제도의 존폐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입법이라고 했다. 14년전 에는 7명이 합헌의견을 냈고 오늘은 5명이 합헌의견을 냈으니 이것을 변화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을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한 10년쯤 지나면 또 두명이 늘어 위헌이 6명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또,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 중 둘은 합헌이지만 위헌적인 요소도 있어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며 양다리를 걸치기도 했다. 이만큼 재판관들 자신들도 확신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차라리 입법부의 몫으로 남기고 자신들은 도저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고 포기 양심선언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미 헌재는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관습헌법 이론을 세상에 전파했고, 미디어법의 처리과정이 불법은 아니지만 유효하다는 것도 아니라는 애매모호한 결론을 내 놓은 적이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법원을 존중하고 신뢰하고자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살아간다. 법원마저 믿을 수 없게 되고, 법원마저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면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일이 너무 슬프고 억울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렇다.

나는 사형제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고 싶다. 법원의 결정으로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나보다 헌법을 훨씬 더 잘 아는 헌법재판관의 다수가 사형제도가 합헌이라고 하니 그런 줄 알겠다. 그러나 난 앞으로도 계속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그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다. 국제사회와 더욱 끈끈하게 연대를 하여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사형집행 재개 움직임을 원천적으로 막아내는 일에 모든 것을 걸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국회가, 여론이, 우리에게 아직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아직도 너희들 사형폐지론자들이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 기대에 부흥해 주겠다는 뜻이다. 지난 10여년 간 사형폐지를 위해 한국에서 해보지 않은 일들이 없다. 그 일들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다시 거리로 나가 서명을 받고 지나가는 이들을 향해 우리의 생각을 외칠 것이다. 다시 노래하고, 기도하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책을 내 놓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은 사형폐지운동의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사형폐지운동의 시작이라고 단언한다. 생명과 인권을 위한 일은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오늘 저녁에는 당장 한국식당을 찾아 한국보다 열배나 비싼 3만원짜리 소주라도 마시고 신세한탄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내일부터 사형폐지를 위한 이 땅 행동하는 양심들의 발걸음은 다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있었다고 13년 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변한 것은 없다. 대한민국은 영원히 사형폐지국이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덧붙임
프랑스 사형폐지운동연합 Ensemble contre la peine de mort(ECPM)가 주최하고 사형제도폐지 세계연합(World Coalition Against The Death Penalty)이 함께하는 하는 제 4회 사형제도 반대 세계총회(4th World Congress Against The Death Penalty)는 유럽연합(EU)이 모든 재정을 후원하고 스위스 정부가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2010년 2월 24일부터 26일까지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 앞에 위치한 CICG에서 개최되고 있다. 전 세계 70여 개국의 1,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함께한 이번 회의에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김희진 사무국장,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이영우 신부,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노건우 신부, 18대 국회에 가장 먼저 사형폐지특별법을 제출한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실의 김선영 보좌관 등이 필자와 함께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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