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정의행동, 탈핵 법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10주기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 점검과 탈핵 사회를 위한 법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에너지정의행동은 24일 ‘탈핵 사회를 위한 법 제도 개선 방안’을 주제로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토론회를 열고, 그 내용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했다.

2017년 출범 당시 문재인 정부는 핵발전소 신규 건설 및 수명 연장 금지를 골자로 하는 ‘탈핵 정책’을 선언했지만, 신한울 3, 4호기 공사계획 인가 기간 연장, 고리 2호기 수명 연장, 핵발전소 건설 계속 등 탈핵으로부터 뒷걸음질 쳤다. 최근까지도 핵발전소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정치적 공방과 가짜뉴스, 탈핵을 저지하려는 언론과 핵산업계의 공세는 거세진 상태다.

이날 토론회를 진행한 양기석 신부(천주교창조보전연대 대표)는 “탈핵 사회를 위한 여러 법제도가 정비되지 못해 논란이 지속되고 사회 갈등이 조장된 실정”이라면서 “한국 사회가 진정한 탈핵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탈핵 법제화를 고민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토론회에서는 <탈핵신문> 김현우 편집위원장이 ‘문재인 정부 핵에너지 정책 평가’,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정책위원이 ‘탈핵 정책 법제화의 정책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했고, 안재훈 국장(환경운동연합), 홍덕화 교수(충북대), 선정수 기자(<뉴스톱>)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24일 에너지정의행동이 '탈핵 사회를 위한 법 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제공 = 에너지정의행동)
24일 에너지정의행동이 '탈핵 사회를 위한 법 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제공 = 에너지정의행동)

선언으로 그친 탈핵, “핵발전소, 이 정부 끝나면 다시 짓겠지....”
관련 법제도 미비, 책임 없는 “땜질 행정”
해외 원전 수주, 핵발전소 건설 지속 등 반대 행보

참가자들은 먼저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 미비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탈핵이 대선 공약이나 정부 여당이 책임진 정책이 아닌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에서 시작됐음에도 법제도적 보완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점, 탈핵을 표방하면서 동시에 핵발전소 해외 수주에는 적극 나서는 등 비일관적 행보, 탄소 중립, 에너지 전환 정책과 연계하지 않는 점 등이다.

이에 대해 김현우 편집위원장은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했으나, 근본 시각과 가치관은 바뀌지 않아서 괴리 현상이 계속 일어난다”면서 “지금 사회 일각에서는 이 정부가 끝나면 다시 핵발전소를 지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비판했다.

탈핵의 가치와 근거, 장기 전략, 법제도 보완, 탈핵으로 전환 돼 발생하는 피해 구제책, 국민 설득의 과정이 빠진 채 “땜질식 행정”에 그쳤다는 것이다.

그는 역대 정권과 달리 문재인 정부가 탈핵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신고리 3, 4호기, 신울진 5, 6호기 등 핵발전소가 오히려 늘었”고, “무엇 하나 책임지지 않으려는 여권의 태도와 법안 발의 미진 등 국회의 방기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사이 탈핵은 정쟁 대상이 되고, 핵폐기물 대책 수립은 멀어졌으며, ‘스마트 원자력발전소’ 등 핵기술에 대한 투자는 계속되고 있다.

안재훈 국장(환경운동연합)도 “탈핵으로 방향은 바뀌었지만 안전 규제 측면에서는 이전 정부를 답습하고 고준위핵폐기물 재공론화도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왼쪽부터) 선정수 기자(뉴스톱), 안재훈 국장(환경운동연합), 이헌석 정책위원(에너지정의행동).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왼쪽부터) 선정수 기자(뉴스톱), 안재훈 국장(환경운동연합), 이헌석 정책위원(에너지정의행동).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안정적 추진 위해 탈핵 법제화 필수
탈핵 시점 사회적 합의 선행
탈핵 전환으로 인한 피해 지원 방안 조속 마련 

탈핵 사회로 가려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 참가자들은 먼저 탈핵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관련법을 새로 만들거나 에너지 기본 계획, 탄소 중립 이행 방안 같은 기존 법제도에 탈핵을 포함하는 방법 등 다양하게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탈핵의 법률적 정의와 완전한 탈핵이 이뤄지는 시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안재훈 국장은 “탈핵사회로 간다는 기본 전제 아래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및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금지, 핵발전소 수출 금지, 핵폐기물의 안전성 문제에 대한 기본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시민 사회 공론화도 가능하지만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가 많은 논란과 제한점을 보여 준 만큼 안정적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관련 법제화가 필수”라고 말했다.

홍덕화 교수는 “법률 보완에서는 고준위 핵폐기물과 노후 핵발전소 폐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탈핵을 실질적으로 추진하려면 시민 참여뿐 아니라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독립성과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도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전력 및 에너지 산업 개편, 핵산업의 변화와도 맞물려 탈핵 운동을 고려해야 하고, 이러한 노동, 산업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전환, 잠재적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 대안이 준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헌석 정책위원은 탈핵을 추진한 이웃 나라의 사례를 참고하자고 제안했다.

탈핵과 에너지 전환 법안을 묶은 ‘에너지 패키지 법안’으로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한 독일, 2025년까지 핵발전소 운영 정지를 명시한 문구를 ‘전기사업법’에 넣었다가 국민 투표로 법 조항이 삭제됐음에도 강한 탈핵 의지로 행정절차를 계속 진행하는 대만, 국민투표 결과가 정책 결정과 실행까지 이어지는 스위스와 이탈리아 등이다.

(왼쪽부터) 양기석 신부(천주교창조보전연대 대표), '탈핵신문' 김현우 편집위원장, 홍덕화 교수(충북대).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왼쪽부터) 양기석 신부(천주교창조보전연대 대표), '탈핵신문' 김현우 편집위원장, 홍덕화 교수(충북대).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한편 핵발전과 관련한 허위 정보에 대응하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선정수 기자는 “이미 사실 확인된 내용인데도 경제지와 보수지 중심으로 끊임없이 허위정보가 쏟아지고 있어 반드시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보수언론과 보수정치권에서 왜곡된 정보를 퍼뜨리며 공세를 펼치고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관련 업계 종사자, 주주, 학자 등은 탈핵에 대한 진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탈핵이 정쟁과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집권세력에 대한 반대와 보수층의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 핵산업을 둘러싼 경제적 이해관계와 핵기술에 대한 학자들의 신념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선정수 기자는 정부의 일관된 탈핵 정책,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의 정합성 등 현 정부의 탈핵 정책이 지닌 약한 고리들이 법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탈핵 사회를 위해 올해 중점을 둬야 할 내용이 제안됐다.

“탈핵에 대한 관심 및 의제화 부각”, “기후 및 에너지 이슈와 탈핵 논의 적극 결합”, “관련 산업 종사자와 피해자 지원 방안 마련”, “탈핵 완료 시점을 앞당기는 문제” 등이다.

이에 대해 이헌석 정책위원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탈핵의 정도가 매우 다양하다. 이를테면 핵발전소 중단이란 목표는 같지만 구체화되는 과정은 다양하다”면서 “그 다양한 생각을 모아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요구사항으로 만들고 구현할 것인가가 올해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한편 탈핵에 대해 한국 가톨릭 교회는 “핵과 평화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입장을 지켜왔다. 일본 가톨릭교회와 함께 핵발전의 위험성을 신학적으로 주목하고, 탈핵 운동의 방향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각종 핵발전소 관련 사고들에 대한 깊은 우려를 밝히고 핵기술이 인류와 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위협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최근에도 한국 가톨릭교회는 월성 핵발전소 삼중수소 누출사고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적극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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