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상적인 심장박동과 혈압 유지..뇌손상 정도가 회복의 관건
-면회 자제와 한마음으로 기도 부탁

▲시국미사에서 묵상에 잠긴 문규현 신부
문규현 신부가 여의도 성모병원 4층 중환자실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채 의식불명인 채로 누워있다. 병원 응급진료센터 앞에서 만난 문규현 신부의 형인 문정현 신부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망연해 있었다. 문 신부의 가족들이 급히 달려오고,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병원에 찾아 왔으며, 매일같이 남일당 건물 앞에서 미사에 참석하던 신자들과 시민들이 찾아 왔지만 문규현 신부는 여전히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전종훈 , 나승구 신부와 용산참사 현장 천막기도처에서 10일째 단식을 강행하던 문규현 신부가 22일 새벽 5시 15분 경에 화장실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졌다. 변연식 위원장(천주교인권위원회)에 따르면, 하루 전날 밤까지도 문규현 신부는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하루 전인 21일 오후 2시에는 용산참사로 구속된 9명의 철거민들에 대한 결심공판이 있었다. 이날 검찰은 피고인 철거민 9명에게 징역 8년에서 5년을 구형했으며 재판정에서 유족들의 억울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이들에 대한 변호를 맡은 김형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헌법을 위반한 법을 만든 국가에 있고, 그로부터 이익만을 추구한 자본에 있고, 그것을 그대로 둔 국가 권력에 있으며, 그 권력에 잘 보이려는 경찰청장에 있다”고 규정하는 등 최후변론을 하다가 잠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자 일시에 방청석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결심공판을 마치고 용산으로 돌아온 유가족들과 범대위를 비롯해 모두가 침울한 분위기에 젖어있자 문규현 신부는 유족들이며 범대위 활동가들을 위로하느라 애써 웃으며 "괜찮다, 아직도 판결이 남아 있다"며 다독거렸다. 이틀째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장난을 치면서 분위기를 편안하게 이끌려고 문규현 신부는 애를 썼다고 한다. 이날 저녁에 생명평화 미사를 마치고, 열흘 째 단식을 하던 전종훈 신부와 나승구, 문규현 신부는 날씨도 춥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하루 편히 쉬기로 하고 밤 10시경에 나승구 신부가 주임신부로 있는 신월동 성당 사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사제들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천막이 침탈되었던 경험 때문에 이들은 새벽 5시경에 일어나 용산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것도 다행인지 모르지만, 문신부가 화장실에서 '억!' 소리를 내며 쓰러지자, 깨어있던 다른 두 신부가 달려와 긴급하게 응급조치를 할 수 있었다. 119구급차가 오고, 이대 목동병원을 거쳐 여의도 성모병원에 도착한 것은 8시 50분경이었다.    

이십여 명의 의료진이 문규현 신부의 상태를 회복시키려고 애를 썼다. 의료진에 따르면, 급선무는 문 신부의 심장박동과 혈압을 정상화시키는 것이었다. 의료진은 오전 10시경부터 체온을 내려서 몸을 안정시키는 '경도 저체온' 요법을 써서 문 신부를 수면상태로 있게 했다. 현재 문 신부는 체온을 34도로 유지하고 있는데, 11시경에 심장박동도 호전되고 약물을 통해 혈압을 높혀서 피를 원활하게 돌리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의료진은 이 저체온 요법을 24시간 진행시킨 후 23일 오전 10경 부터는 35.5도 정상체온으로 올리면서 문 신부의 경과를 지켜 볼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에 따라 오후 쯤에 깨어날 수 있는데, 문제는 22일 새벽 심장이 멈추어 뇌에 산소와 혈액이 공급되지 못한 10여 분 동안에 얼마나 뇌손상을 입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현재 정상적으로 소변을 받아내고 있어서 이 부분을 관장하는 뇌에는 손상이 없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으며, 뇌출혈이 없었기 때문에 회복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2일 밤 열 시경 이강서 신부와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등이 병원을 방문하여 밤이 늦도록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방문객들과 만나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병원에 계속 많은 분들이 모이고 면회하는 것은 환자를 위해 좋지 않은 것 같다. 안타까와하는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좀 조절을 해야 할 줄로 안다. 우리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한 마음으로 문 신부님을 위해 기도하는 것 뿐"이라고 곡진하게 뜻을 전했다. 한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전종훈, 나승구 신부에게 단식을 중단해 줄것을 청했다. 

▲김미 씨는 용산에서 평소 존경하던 문규현 신부를 만난 뒤 매일 용산미사에 나왔다고 한다.
한편 문규현 신부에 대한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보고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는 김미(바실리사) 씨는 하루 종일 병원에 머물면서 1989년에 임수경과 휴전선을 넘어오던 문 신부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고 한다. 김미 씨는 "병원에 와서도 면회하는 걸 망설였다"며 "호흡기를 달고 있는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될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핏기도 없고 차가운 발을 만져보고 묵주로 성호를 그으며 기도했다는 김미 씨는 "악한 사람들은 저들끼리 똘똘 뭉쳐서 더 강해지는데, 그 험한 군부독재에도 쓰러지지 않고 맞서 싸우고 견뎠던 신부님이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된다"며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바랐다.

이어 "아직 할일도 많은데, 나라의 큰별들이 연이어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문 신부님까지 쓰러지시니 화도 나고 억울하고 분하기도 하고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면서 "기적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다는 게 가슴 아프다"며 안타까와 했다.     

▲밤 11시가 넘도록 방문객들은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왔으나, 저녁 늦은 시간에 온 분들은 면회가 허용되지 않아서 안타까운 심경으로 내내 서성거렸다. 문정현 신부 역시 늦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다.

▲병원 복도에 앉아 상황과 대책을 의논하고 있는 이강서 신부와 나승구 신부. 이들은 신자들에게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며 안타까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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