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걸음, 산티아고 가는길-6]

전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아요
2008년 5월 14일 레온Leon2

▲이른 아침, 성당 앞에 멈춰선 부자


지금 내 오른쪽에서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다. 옷이 얇아 나는 조금 춥다. 마이클 아저씨랑 나는 레온에 며칠 더 있기로 했는데 알베르게 청소 시간에는 침대를 비켜주어야 해서 어슬렁어슬렁 성당 앞 광장으로 나왔다.

어제 프로미스타에서 함께 온 독일 아주머니들은 버스를 타고 다음 도시로 이동했다. 아주머니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안아주셨다. 아픈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까지 걸어와서 얻었을 성취와는 또 다르게, 아파서 걷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느낀 연민의 정도 내가 이 길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이다.

오들오들 떨면서 기다리다가 성당 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스테인드글라스는 너무도 아름다워 잠시 소름이 돋았다. 레온 대성당은 부르고스 대성당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짜임새 있고 우아했다. 화려한 실내 장식이 없어도 기품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햇살이 들어오고 있는 동쪽 창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너무 예뻐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어쩐지 또르르 눈물이 났다. 갑자기 내가 너무 많은 잘못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동시에, 그 모든 잘못을 다 용서받은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참 이상한 평화였다.

▲때로는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 같다.

마이클 아저씨랑 같이 미사를 드리고 나서 함께 겨울옷을 사러 갔다. 5월 중순에 겨울옷을 사다니, 내 머리는 말도 안된다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내 몸은 겨울옷을 입혀달라고 시위하고 있었다. 마침 겨울옷이 이월되는 시기여서 헐값에 등산복 티셔츠를 한 벌 구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체리도 한 줌 샀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벌써부터 줄을 서있다. 여러 날 전 다른 마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나보다 늦게 도착해 침대를 얻으려고 줄 서있는 것을 보면 어쩐지 미안한 마음에 울적해진다. 사실 이건 잘못이 아닌데 말이다. 낯익은 아줌마가 와서 키스를 하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아게스에서 같이 저녁 먹은 힐요 아줌마다. 아줌마는 내일 기차로 산티아고에 간다고 하셨다. 내년에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실 예정이라고. 또, 일본에서 오신 노부요 아줌마도 만났다. 환갑이 훌쩍 넘은 반백의 아줌마가 4개국어를 하셔서 놀라웠다. 아줌마도 나만큼이나 느려 여기까지 오는 데 한 달 가까이 걸렸다고 하셨다. 너무 고생스러워서 두 번 다신 오기 싫은데 어쩐지 자꾸 '다음에 오면'이란 말을 하게 된다. 다음엔 자전거 순례를 해봐야지! 다음엔 꼭 스페인어를 공부해서 와야지! 다음엔 누구랑 같이 와야지!

오늘 새로 온 호스피탈레로 조르디는 김기덕 감독의 매니아였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내게 김기덕 감독의 근황을 물어와 당황스러웠다. 바르셀로나에서 세 시간 정도 떨어진 어촌에 사는 조르디는 김기덕 감독의 신작이 개봉되면 바르셀로나까지 차를 타고 와서 영화를 보고 가는 열성팬이었다. 까딸루니아 어촌 마을 청년까지 사랑하는 감독이라니…. 난생 처음으로 김기덕 감독이 부러워졌다.

시에스타 시간에는 침대에 누워 주변에서 들리는 언어들을 가만히 들어보았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저 말들을 다 알아듣지 못하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이 모든 말이 음악처럼 들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용을 판단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여서 내는 소리가 새들 지저귀는 소리처럼 들린다. 아름답다.

만일 오늘까지만 살고 내일 죽는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할까? 음…, 우선 지금 내 배낭 속에 든 물건들을 필요한 분들에게 고루 나누어 드려야겠다. 먹을 것, 옷, 비상약, 가진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나눠드린다고 생각하니 뭐가 많다. 그 다음엔, 기차를 타고 산티아고에 가서 광장에 앉아 사람들에게 엽서를 쓸 것이다. 식당에 가서 마지막으로 순례자 메뉴와 타파스를 먹고 그동안 못마신 와인과 카페콘레체도 실컷 마시고, 오카리나를 불 것이다. '참 아름다워라' 쯤 불다가 죽어도 좋겠다. 아, 하지만 나는 내일도 살아있을 것 같고 발목은 아직 부어있으며 반대쪽 무릎도 쑤신다. 무거운 배낭과 아픈 몸과 풀죽은 마음, 이 모든 걸 훌훌 털어낼 수 있다면 굳이 산티아고까지 갈 필요도 없을 텐데. 에라, 어차피 지고가야 할 것이라면 기꺼이, 즐겁게, 감수해 보리라.

마이클 아저씨랑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크리스티앙 할아버질 만났다. 토산토스에서 헤어지곤 처음이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얼싸안고 양볼에 입을 맞추며 기뻐했다. 할아버진 여전히 부어있는 내 발목을 보고서 '운 뽀꼬, 운 뽀꼬', 조금씩 한 걸음씩 가면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마이클 아저씨는 내일 기차로 폰페라다에 가서 남은 200km를 마저 걷겠다고 하셨다. 아저씨는 전 구간을 완주하지 못하게 된 것을 못내 슬퍼하셨다. 아저씨와 함께 찾아낸 '라 포사다'란 식당에선 정직한 가격에 정직한 음식들이 나왔다. 렌틸 수프 안에 돼지보쌈 같은 것이 들어있었는데 그게 레온에서 유명한 '꼬시도'라는 요리인 것 같았다. 돼지고기 알레르기를 감수하고 먹었는데 지금껏 먹어본 수프 중에 최고였다. 후식으로 나온 레몬크림도 아주 특별했다.

밥 먹는 내내 아저씨가 우울해 보여 맘이 아팠다. 건강하게 완주했던 5년 전과 다르게 체력이 부치고 몸이 아파져 메세타를 건너뛰었다는 게 아저씨에겐 큰 충격이었다. "나는 이제 늙어가고 있어." 아저씨는 당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말씀을 되풀이하셨다. 올해 쉰다섯이 된 아저씨에겐 이제 다섯 살, 여덟 살 된 두 딸이 있었다. 늙어간다는 사실 자체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이렇게 빨리 늙어버려서 사랑하는 딸들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아빠가 되는 건 아닐까, 상심하고 걱정하셨다.

딸들 이야기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아저씨를 보며 나도 이런 사랑을 참 많이 그리워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다 자라 남들 눈에 어른이 되었는데도 나는 아직 부모의 사랑을 원하고 동시에 나를 사랑해주지 않은 그분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마이클 아저씨가 말했다.
"사랑이란, 내가 너에게 속해 있고 너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것, 너를 해롭게 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주는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지금껏 내 가족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은 대가로 나 또한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항상 가족들에게 언제라도 내가 그들을 떠날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말은 너무 뼈가 아파서 더 이상 듣는 게 힘들었다. 나는 정직하게 말했다.
"저는 아직 제 가족을 사랑할 준비가 안된 것 같아요."
그러자 아저씨는 말씀하셨다.
"그건 가슴이 하는 일이야. 때가 되면 네 가슴이 말해줄 거야."
그 때는 언제일까. 내게도 그 때가 오기는 올까.

▲성당 앞 광장

다 똑같이 아름답다
2008년 5월 15일 레온Leon3

아침 일찍 역으로 가는 마이클 아저씨를 배웅해드렸다.
"아저씨, 너무 속상해 마세요. 머잖아 아저씨 딸들이 자라면 여기 함께 오시게 될 거에요. 그땐 지금보다 훨씬 좋을 거고요."
아저씨는 나를 끌어안고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셨다. 아저씨의 눈물은 참 마음 아팠다. 멀어지는 아저씨 뒷모습을 보면서 남은 길을 무사히 잘 걸으시기를, 그 길에서 또다른 기쁨을 발견하시게 되길 빌었다.

어제 오신 노부요 아줌마도 레온에 하루 더 머물기로 하셔서 우리는 함께 빗길을 걸어 성당으로 갔다. 때마침 미사 시간이었다. 성당엔 어제하곤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친근한 평화로움이랄까? 등산복 차림의 순례자들이 기도실의 피에타상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지금 저 사람들은 무엇을 기도하고 있을까.

미사가 끝나고 노부요 아줌마와 나는 까페에서 차를 마셨다. 반백의 아주머니가 여러 나라 말을 하는 것이 참 멋있게 보였다. 아주머니는 멋쩍게 웃으시며 "나는 오래 살았잖아." 하신다. 독일 문학을 전공한 아주머니는 스위스에서 유학을 하셨고 까미노에 오려고 스페인어도 따로 공부하셨단다.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늘 머뭇대다 지레 포기하던 나는 환갑이 훌쩍 지나고서도 주저 없이 원하는 것을 향해 떠나는 아줌마가 대단해 보였다. 아줌마는 빙그레 웃으셨다.
“달라이 라마가 그러셨지. 어떤 종교를 믿든지 상관없이, 모두에겐 신께 다가가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고. 단지 저마다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뿐이지 늦고 이른 것은 없단다.”

아줌마의 삶은 참 드라마틱했다. 세 살 때 성당에서 운영하던 유치원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우연히 계속 가톨릭 중고등학교와 가톨릭 재단의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가톨릭이 극소수인 나라에서 공교롭게도 계속 가톨릭과 인연이 닿은 것은 바로 신의 계획이었던 것 같다고 아주머니는 생각하셨다. 또 그녀는 세 번의 결혼으로 네 아이를 얻었는데, 두 번의 사별과 한 번의 이혼 끝에 지금은 세 아들과 함께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십여 년 전 딸의 자살을 계기로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아이를 둔 부모들과 스터디나 상담을 하고 계시기도 했다. 아줌마는 쉽지 않은 인생 이야기를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들려주셨다. 강인한 성품을 지니신 데다 세월이 모든 것에 초연하도록 훈련시켜주었지만 딸의 죽음만큼은 여전히 아주머니에게 깊은 상처였다. 아주머니는 당신이 딸을 죽인 것 같다며, 당신 사랑이 모자라 딸을 죽게 했다며 흐느끼셨다.

나도 아주머니에게 조심조심 내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길러주신 부모님과 함께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 나 역시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신의 계획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줌마는 내가 안쓰러워서 울고 나는 아주머니가 마음 아파 울었다. 이른 아침 까페에서 동양인 여자 둘은 그렇게 한참을 엉엉 울고 있었다. 이 길은 참 희한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자꾸만 자기 상처를 토해내게 만들었다. 아주머니는 우리가 여기서 만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죽은 딸이 나를 보내준 게 틀림없다며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는 내 어머니 손길과 닮은 것 같다고 느꼈다.

우리는 자연이 다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는 퍼머컬쳐 방식으로 가꾸고 계신 아주머니 텃밭 이야기부터 미야자와 겐지 그룹의 자연음악 이야기, 새로운 삶의 방식을 택하고 있는 젊은이들 이야기를 나누면서 세상이 점점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아가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행복하고 즐겁고, 희망이 가득한 대화였다.

오늘도 알베르게에서 하루 더 신세를 지기로 했다. 다행히 여긴 침대가 많긴 하지만 부디 나 하나 때문에 침대를 얻지 못하는 순례자가 없기를. 여러 날 전에 만났다가 헤어진 한국인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알베르게에 들었다. 반가운 마음이 컸지만 한편 내가 얼마나 먼 거리를 건너뛰었는지 실감하니 다시 마음이 좀 어두워진다. 노부요 아줌마 말씀대로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고 나 자신을 믿어주는 일이다. 제발 이 길의 끝에 섰을 때엔 조금 더 가볍고 행복한 내가 되길.

발등의 통증은 좀 덜하지만 발목은 여전히 부어있다. 내일 하루 더 쉬어야 하는 건지 걸어도 되는 건지 가늠이 안된다. 사람들이 하나 둘 방으로 들어와 침대를 맡는데 미안한 마음에 자꾸 움츠러든다. 나는 미안한 일 한 게 아닌데, 그저 아픈 것뿐인데. 아픈 건 자랑도 아니지만 미안해서 쩔쩔 맬 일도 아니다. 느린 게 자랑도 부끄러움도 아닌 것처럼. 그건 그냥 다른 것, 차이일 뿐이다.

모두들 어디론가 달리고 있는데 나만 함께 달리지 못하는 것 같아 때로는 그 다름이 두렵다고, 그래서 내가 외계인 같다고 하니 노부요 아줌마는 말했다. "좋아! 너는 계속 외계인으로 살아나가는 거야! 두려워할 것 없어!" 그래. 나는 에일리언이다. 그러니 생긴 대로 살자. 외계인은 외계인 방식대로 살면 되는 거다.

오늘 내 옆 침대에는 다른 마을에서도 몇 번 만난 적 있는 트랜스젠더 할머니가 드셨다. 누가 보아도 한눈에 남자인 그녀에겐 유방이 있고 풍만한 엉덩이도 있었다. 뽀얀 살결에 립스틱, 앙증맞게 달랑이는 귀걸이, 유난히 작은 배낭을 메고 사뿐사뿐 걷는 그녀가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다. 그녀의 '차이'는 너무도 눈에 잘 띄었기에 속옷 위로 유방과 페니스가 동시에 드러난 그녀가 여자 숙소를 드나들었을 때 몇몇 사람들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내 눈에는 저 사람이 예뻐 보인다! 예쁜 정도가 아니라 빛이 났다! 남자이면서 동시에 여자인, 아주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아침마다 맨 먼저 일어나 곱게 화장을 하는 모습도, 무엇 하나라도 다칠 새라 조심스러운 손짓과 말투도,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나는 그분에게 가서 "당신 참 아름다와요!" 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쩐지 조심스러웠다. 그래, 그녀도 나도 그저 다를 뿐이다. 우리는 똑같이 그분의 작품이다. 우리는 다 똑같이 아름답다.


김순진 (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쓰며, 어린이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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