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걸음, 산티아고 가는길-5]

▲슬리퍼와 양말이 매달린 순례자의 배낭

-2008년 5월 3일 부르고스Burgos1

어제 오카 산을 넘으면서 느낀 심각한 문제는, 내가 '쉴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혹스러웠지만 사실이었다. 항상 병원에만 가면 쉬라는 처방이 나왔다. 출퇴근도 안 하는 내가, 맨날 쉬는데 뭘 또 어떻게 쉬라는 말인지 의아했는데, 그렇다. 나는 언제 어떻게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남들 쉬면 나도 쉬고, 남들이 누워 쉬면 나는 앉아 쉬고, 남들이 쉬는 걸 봐야 쉬고, 남들이 일어나면 나도 일어났다. 이건 생각보다 심각했다. 어제같이 피곤한 날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긴장감에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오늘도 발등의 통증이 여전해 버스를 타기로 했다. 부르고스 가는 버스를 타려면 화살표 길을 벗어나 2km 남짓 떨어진 다른 마을로 가야 했다. 부르고스행 버스 여기저기서 순례자들이 눈에 띄었다.

부르고스에 내리니 아직 오전. 알베르게 문 열기까지는 시간이 남아 부르고스 성당 구경을 갔다. 부르고스 성당은 파리에 있는 노틀담 대성당처럼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인데 파리의 노틀담에서 사람의 욕망과 집착 같은 것이 느껴져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면 부르고스 성당은 훨씬 조화롭고 균형잡힌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부르고스 성당에는 고요한 영감이 넘쳐흘렀다. 건물이 간직한 기운이 이렇게도 맑고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꽃이다! 별인가?

부르고스 성당 안에서 뜻밖에 볼프함을 다시 만났다. 볼프함은 어제 아게스 이후의 모든 마을에 방이 없어 부르고스까지 50km를 걸었다고 했다. (너는 진정한 독일인이야 볼프함!) 볼프함은 나를 보자마자 안아주고 내 발을 보더니 잘 듣는 진통제라며 자기 먹던 것을 절반이나 뚝 떼어주었다. 하루 세 알 이상 먹으면 천국을 보게 된다는 농담까지 곁들여서! 우린 몇 번이나 서로 안아주며 "부엔 까미노!" 했다.

몸이 아픈 순례자들을 우선 받아준다는 알베르게로 가니 침대가 거의 찬 상태. 아직 침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굳은 얼굴로 호스피탈레로에게 사정하고 있었다. 줄 서있는 순례자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쌀쌀한 말투로 '나도 모른다'는 대답이 건너온다. 나는 언제나 그런 얼굴의 순례자들이 낯설다. 길에서 만나면 한없이 다정하기만 한 사람들인데 정작 먹을 것이나 잠잘 곳 앞에선 눈빛이 달라진다. 그때만큼은 다른 순례자들이 길동무가 아니라 경쟁자가 된다. 나는 거기 적응할 수 없었다. 그 틈에 끼어있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 대책도 없이 망연자실 길가에 나와 서 있으니 할머니 한 분이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신다. 침대를 얻지 못할 것 같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 중이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내게 어디 좀 앉아있으면 당신이 이 근처 호스텔에 빈 방이 있는지를 알아봐 주마고 하셨다. 주말인데다 관광객도 많아 빈 방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한 시간 쯤 지나서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역시 빈 방이 없었던 모양. 그렇지만 할머니는 관광안내소에 가서 더 알아보고 올 터이니 꼼짝 말고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다시 한 시간 쯤 더 지난 후에 할머니는 환한 얼굴로 돌아오셨다. 멀지 않은 호스텔에 빈 방이 하나 있어 예약해 놓고 오셨다며 거기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셨다.  

▲이 커플의 웨딩카가 떠난 자리에서 2 유로짜리 동전을 횡재했다

 어둡고 갈라진 건물에 삐걱대는 마루, 쥐오줌 냄새가 진동하는 호스텔에 오늘 내 몸을 누일 방이 있었다. 창문도 없고 볕도 한 줌 들지 않았지만 오늘 만큼은 나에게 어떤 호텔보다도 근사한 방이었다. 체크인 하기 위해 크레덴시알을 꺼내자 할머니는 내 크레덴시알에 찍힌 도장을 보고 휘둥그레지셨다. "여기까지 오는 데 한 달 가까이나 걸렸단 말이니?" 남들은 열흘이나 2 주면 넉넉한 거리를 이렇게 걸어왔다고 하니까 할머니는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툭툭 떨구셨다. 이 다리로 여기까지 걸어왔느냐고, 그리고 이 다리로 산티아고까지 걸어갈 거냐며 우셨다. 누군가 내 아픔을 이렇게까지 공감해주고 이해해 주다니,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이토록 절절하게. 얼떨떨하면서도 진심으로 위로가 되는 눈물이었다.

방까지 나를 데려다 주신 할머니는 이렇게 힘든 날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너무너무 미안하다며 달팽이가 그려져 있는 작은 핀을 하나 주셨다.
"아가, 너는 이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이렇게 느려도 끝까지 해낼 거야."
할머니는 나를 안아주고 입맞춰 주었다. 
난 그저 고맙다는 말씀 밖에는 드릴 것이 없었다.
"아니다 얘야. 언젠가 나도 이 길에서 받은 것을 갚는 것뿐이야. 우린 다들 순례자니까 서로 돕는 게 당연해.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않니." 

▲ 아가, 넌 이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끝까지 해낼 거야.

할머니는 내 국적도 나이도 이름도 묻지 않았다. 나 역시 할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산티아고에서 돌아오고 계시다는 것, 26년 전에도 이 길을 걸었다는 것 뿐이었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계단을 오르기 힘든 내게 아래층 방을 양보하고 위층으로 올라간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문 앞에 서있는 사람은 바로 산드라였다! 이 넓은 부르고스 하고 많은 호스텔 중에, 그것도 이 방에 산드라가 와있었다니! 오늘 내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이 기적이라고 느꼈다. 방은 춥고 습하고 창문도 없었지만 오늘 만큼은 내게 궁궐 같았다. 이건 기적이다. 내 기적이 서서히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할머니가 떠나고 나서야 그 분 이름조차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또 한 분의 천사가 오늘도 내게 다녀가셨구나. 언젠가 나도 어느 길 위에서 나같은 아이를 만나면 할머니처럼 얘기해줄 수 있을까. "언제나 너 자신에게 친절해야 해."

하느님, 저는 저한테 친절하지도 않고 어떻게 해야 쉴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제 알려주세요.
어떻게 해야 저를 쉬게 할 수 있나요?

김순진 (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쓰며, 어린이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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