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 마지막날의 분향소의 풍경

국장의 마지막 날인 어젯밤 저는 TV로 계속해서 중계되는 영결식의 모습과 고인을 추모하는 프로 등을 보고난 후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도 않고 해서 고인의 분향소가 차려진 대구 2.28기념 중앙공원으로 한번 나가봤습니다.

거의 12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예상대로 그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남아 마지막 가는 고인의 모습을 추모하면서 국장의 마지막날밤을 아쉬워하고 있더군요. 비록 한나라당의 아성이자 보수의 성지(?)와도 같은 이곳 대구라지만 그래도 이곳에서도 고인이 말한 그 ‘양심’들은 있어서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역주행하는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필자가 찾아간 늦은 시간에도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의 마지막 분향이 이어졌고, 이어 분향의 제례의식을 마치는 간단한 철상의식을 치루면서 이승을 떠나는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남은 사람들은 둘러앉아 음복주를 함께 마시면서 고인의 마지막을 이렇게 추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뭔가 아쉬운 것은 비단 이곳 대구가 극보수의 도시라서 고인을 추모하는 발걸음이 그리 많기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예견했던 일이라 별로 아쉬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은 다른 편에서 오는 듯했습니다. 그것은 고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진보진영의 차가운 그리고 ‘까칠한’ 시선들 때문에 생겨나는 것 같았습니다.

‘진보’의 차가운 그리고 ‘까칠한’ 시선들에 대한 염려

이 밤늦은 시간까지 그래도 분향소를 지키고 남은 사람들은 역시 민주당 쪽 사람들뿐이고, 그간 각종 집회 현장에서 자주 보였던, DJ가 말한 그 ‘행동하는 양심들’인, 소위 말하는 진보진영 쪽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분향 기간 내내 이곳을 지켜본, 동석한 한 선배 말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래도 대구에서 DJ를 추모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나마 민주주의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진보성향의 사람들인데, 어떻게 정당운동, 대중운동을 한다는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이 순수하고 깨어있는 시민들을 그들의 지지기반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면서 진보진영의 DJ를 향한 그 차갑고 ‘까칠한’ 시선들을 비판하더군요. 그는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이른바 조문정국에서, 지난 노무현의 비극 때도 마찬가지지만, 왜 이곳 대구의 ‘진보’는 고인들의 공과 중에서 그 ‘과’에만 집착을 해서 마치 그들의 ‘공’을 찬양하면 진보가 아닌 양 하는지 도대체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하면서 “이런 현장에 나와서 대중의 정서와 호흡을 하면서 대중운동의 나아갈 길도 좀 헤아리고, 그들과 소통하려 하는 시도를 하지 않고 무슨 운동을 할 것이냐”면서 개탄을 하더군요. 두 번에 걸친 그 이른바 ‘조문정국’을 집중적으로 참여했던 이 선배의 말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DJ도 비판받을 점이 분명 없진 않습니다. IMF를 구실로 그의 대중경제론의 구상과는 전혀 맞지 않는 FTA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며, 민주화인사가 정권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국가폭력이라든가, 시민단체의 관변화가 진행되었다던가, 진보진영의 분화가 일어났다던가 하는 등등의 것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화해와 용서 그리고 통합의 정치를 배워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이 사야 할 공 또한 많습니다. 무엇보다 그를 추모하는 국민들은 화해와 용서의 통합의 정치를 펼 수 있었던 그의 인품을 높이 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그의 신앙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그는 ‘무엇인가를 봐 버린’ 사람처럼, 그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정적들을 용서했고, 그리고 반백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로를 원수로 여기던 북한과의 화해를 시도한 놀라운 인물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미 널리 알려진 이런 공과를 구체적으로 더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테니 그만하구요, 하여간 진보진영은 좀 더 대중과 다가가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원하는 세상으로의 변화는 더욱 요원한 것일 수 있겠단 우려를 지울 수가 없는 밤이었습니다. 결국은 아무리 이상적인 정책일지라도 대중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분명 화해와 소통을 폭넓게 시도한 정치인 김대중은 그런 면에서 우리사회의 큰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디 노 정치인의 이런 소통의 정치를 본받아, 여야가 서로 소통하고, 남과 북이 소통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속히 찾아오길 고인과 함께 희망해 봤습니다.

대구에서 마지막 고인이 가시는 그 걸음의 끝자락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깊어가는 가을밤을 이렇게 지새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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