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평화가 깃든 밥상> 저자, 문성희

▲문성희 씨. "가장 맛있는 요리는 본래의 생명력과 색깔과 모양을 망가뜨리지 않고 먹는 것이고, 그런 음식을 찾기 위해서는 시장이 아니라 밭으로 가면 된다"
최근에 <평화가 깃든 밥상>이라는 책을 샨티출판사에서 펴낸 문성희 씨(요세피나, 60세)를 만나 보았다. 30여 년전 탐독하던 잡지 <뿌리깊은 나무>를 보다가 "요즘 잘 나간다는 요리 연구가들의 음식을 보면 먹는 걸 가지고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라는 내용의 칼럼을 읽고 극심한 자괴감에 빠졌다는 문성희 씨. 그녀는 당시 여성잡지에 화려한 요리화보를 쓰는 요리선생이었다. 그녀가 "에티오피아 아이들은 굶어 죽는다는데 음식을 가지고 이렇게 사치를 부려도 되나" "생명을 살리는 음식은 대체 뭘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지금처럼 '평화가 깃든' '지구를 위한' 밥상차리기를 할 수 있었다.

문성희 씨의 아버지인 문태곤(바오로) 씨는 예수회 진성만 신부의 영향으로 가톨릭에 입교했는데, 평생 기도하기를, 소화데레사의 집안처럼 네 명의 딸이 모두 수녀가 되어 성녀에 이르기를 바랬다. 아버지는 부산에서 가톨릭계 학교인 대양공고를 세우기도 했는데, 문성희 씨는 이런 분위기에서 1950년 부산 광복동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서울에 살았다. 

그녀는 계성여고 출신으로, 학창시절엔 도무지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대학시험은 아예 응시하지도 않았다. 유일한 낙이라곤 책읽기였는데, 전혜린, 타고르, 헤르만 헷세, 루이제 린저를 맛들였다. 

어머니가 쉰살이 넘어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에가마 요리학원에서 요리를 배우고 와서 요리학원을 차렸을 때, 그녀는 27살의 나이에 사랑하던 사람을 직장암으로 잃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다. 남편은 한날 한시에 죽자고 했지만 그 고통을 충분히 나눌 수는 없었다. 문성희 씨는 지금도 "고통은 철저히 혼자만의 것이다. 기쁨은 나눌 수 있지만 고통은 나누어 지지 않는다"고 안타까운 고백한다.

음식 가지고 장난하는가

그녀가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배우고, 1986년 그 요리학원을 인수해 20년 동안 요리학원 원장으로 멋지고 화려한 음식만들기에 몰두해 왔다. 그러나 한 잡지에 실린 칼럼을 통해 문제의식을 느낀 뒤로는 요리에 대한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책방을 뒤지며 일본의 니시 선생이나 안현필 박사의 현미식 등을 읽었으나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 소작운동을 한 사회주의자였던 할아버지의 핏줄을 받아서인지, 좀더 근본적인 데로 천착해 들어갔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소암 스님에게 사찰요리를 배웠고, 장일순 선생과 한살림을 만나고, <녹색평론>을 보면서 '먹는 것이 곧 생명'이라는 세계관이 자리잡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은 더욱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학원을 남산동 외곽으로 옮기고 생식을 하면서 몸이 변화되는 것을 느꼈다. 이때 배운 것이 '명상수련'이었으며, 몸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문성희 씨는 "몸이란 그릇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참 생명으로 가고 참 기도를 하고 참 영혼으로 깨어나려면 먼저 몸을 맑고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를 읽는 내내 헬레나가 넘나든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함께 넘으며 라다크 땅과 사람들을 직접 보고 싶은 열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다" 

가톨릭교회, 몸에 대한 생각 바뀌어야

"예전에 가톨릭에서 몸을 낮추어 보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영혼의 빛이 되려면 몸이 투명해야 한다"고 말하는 문성희 씨는 그후로 몸세포가 변해서 고기나 생선을 일체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생명의 파동을 느끼게 되면 채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가 부산에서 자주 만났던 박근배 신부(포교성베네딕도수도원)는 "수녀나 신부들이 병이 많은 것은 몸에 대한 그릇된 편견"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문성희 씨는 사제들에게 "본인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신자들에게 대접하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말한다. 그래서 한때는 부산교구 가톨릭대 신학생들이 사목실습 과정에서 문성희 씨에게 요리를 배우는 프로그램을 거치기도 했다고 한다. 부산에 있는 각 수녀원에서도 요리를 배우러 왔다. "가톨릭교회의 수도원에서는 주방 수녀들을 홀대하는데,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허드렛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나쁜 습성이 있다. 정말 '빵'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주방일은 생명을 다루는 일이다. 가톨릭교회에 '먹는 것의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산속에서 거칠고 소박한 음식으로

▲"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며 살고 싶다는 것이고, 자연에서 빌려온 이 몸을 자연에 깨끗이 되돌려 주고 싶어서예요"
이내 문성희 씨는 학원 그만두었다. 굳이 요리를 해먹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스콧 니어링의 책을 읽으며, "좋긴 한데 이 건 땅이 넓은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네"하고, 데이빗 소로의 <월든>을 읽고 부산의 철마산 골짜기에 자리를 잡고 2-3년 동안 텃밭을 가꾸며 곡류와 채소로 생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거기서 일년에 한번씩 '행복한 식탁이 있는 산속 음악회'도 열고 겨울이면 뜨겁게 달군 돌멩이를 끼고 앉아 손바느질로 옷을 지어입었다. 단순소박한 삶, 행복했다.  

그런데 잘 나가던 요리학원 원장이 산속에 산다하니 방송국에서 찾아오고, 그러면서 "나는 그대로 행복했으나 한편 세상을 기만하는 듯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의문도 들었다. "자연 속에서 살면 행복한데 저자로 내려가면 불행하다니... 어디 있으나 똑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결국 산을 내려왔다.  

문성희 씨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하는 성경구절과 "예수가 "너희에게 내 평화를 주고 간다"던 말씀을 떠올리며, "진정한 평화가 그리스도교 진리의 요체일 텐데, 다른 생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평화가 가능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다"던 장일순 선생의 말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녀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대로 사신 분이 예수"라면서 "가톨릭 영성이 진화하지 못하는 것은 '먹는 것'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더 물화(物化)되고, 더 육화(肉化)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성희 씨는 "환경운동을 한다면서 육식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채식을 중심으로 하는 밥상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화석연료는 물론 물과 세제의 사용도 현저히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쓸데 없는 일손과 조리하는 시간도 줄여 부엌일을 즐겁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소유도 줄이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그녀는 일산에 공간을 내어 '문성희의 자연식 밥상' 요리강좌를 하고 있는데, 이사할 때 짐이라고 해야 그녀가 타고 다니는 '모닝'이란 차로 두번만 움직이면 된다.

▲비트의 단면, 아름답다

가톨릭 신앙으 바탕 위에, 가톨릭 신앙을 넘어서

문성희 씨가 나름의 길을 걸어오는데 가톨릭신앙은 바탕이 되어 주었고, 그 길을 넘어 또다른 지평으로 건너 갈 수 있었다. 집안이 모두 가톨릭이고, 요리학원을 하면서 예수성심전교수녀회와 사랑의 고리 등 교회 안에 깊이 간여해 왔으나, 그는 그 또한 넘어서야 했다. 박근배 신부를 통해 에크하르트를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분노와 슬픔, 고뇌의 강을 건너 불교의 선(禪)에 접근하고, 브라마 쿠마리스의 '라자요가'도 접했다. 

그녀에게 가장 큰 결정적 체험을 주었던 것은 <오래된 미래>를 읽고 찾아간 라다크 여행이었다. 잔스카르 사막의 풍경에 압도되고, 황량한 땅을 지나서 도착한 카르빌에서는 생명체라곤 없는 곳에서도 사람과 짐승이 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양을 끌고 오는 목동을 바라보는데, 하느님이 "봐라, 이게 내 작품이다"하는 음성이 들리는듯 했다. 그후 세상에 대한 관심이 꺼지고, 그동안 붕붕 떠다니던 생각이 고요해지면서 "이걸로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부엌 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너희들이 요가 상태에 머무르면서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면 많은 사람들이 유익을 얻을 것이다. 너희들의 음식과 음료는 순수하고 소박하며 기품이 있어야 한다. 침묵 속에서 신의 사랑으로 만든 음식이 곧 마음을 만든다"
그녀는 화두가 떠오르면 곧바로 행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니코스카잔차키스가 소설에서 표현하듯, 뇌리에 하느님의 소명이 파고들 때, 마치 새들이 머리를 쪼아먹는 것처럼 고심했다"고 말한 것을 이해한다. 그녀는 마음공부를 하면서 예수 역시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예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선교회나 사랑의 고리, 대구 결핵요양원에서 밥 해주며 지내던 시절도 있었지만, 예수를 정말 사랑하는 방법은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예수처럼 내 사랑이 넘쳐 흔적도 없이 슬픔도 없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께 거지처럼 언제나 뭘 달라고 애원하고 협박하고 거래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 속내와 필요를 아시는 분 아닌가?"

결국 문성희 씨는 명상과 기도 안에서 음식을 만들고 내 몸을 주듯이 밥상을 내어주는 요리를 해볼 참이다. 그렇게 평화로운 밥상을 이루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예전처럼 거친 음식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만들기 쉽고 차리기 쉬운 것들이요, 소박하고 간결하지만 완전한 영양과 생명 기운을 담고 맛과 멋이 조화를 이루고, 그래서 어른 아이 모두가 건강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평화가 깃든 밥상> 문성희 선생 독자와의 만남( 안내)
오는 8월 22일(토) 오후 4시에 교보문고 잠실점에서
문성희 선생님이 '독자와의 만남'을 갖습니다.
참석을 원하는 분은 샨티출판사에 전화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02-3143-6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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