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모니터링 자료는 없다. 8월 9일자 신문은 모두 여름휴가로 휴간이다.

일 년에 한번 씩 맞이하는 여름휴가는 직장인들에게는 사뭇 기다려지는 일정이다. 프랑스사람처럼 철저한(?) 휴가를 즐기지는 못하지만, 또 때로는 아이들이나 주위의 등살에 마지못해 떠나는 일정도 있지만 휴가는 아무튼 스스로 한가로워지려는 것일 게다. 휴(休)라는 말이 나무에 기대어 쉬는 사람을 형상한 글자라고 말하듯 휴가는 사람을 재충전하기에 좋은 기회임은 틀림없다. 교계신문이 휴가를 다녀오듯 필자도 3박 4일의 휴가를 다녀왔다.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려 <여름살기>란 이름으로 길을 나섰다. 먼 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가능하다면 튼튼한 두 다리를 이용해 걷기로 했다. 서울 청량리를 출발점으로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묘지, 56번 도로 심미선· 신효순양 추모비, 임진강, 평택 쌍용자동차와 서울 용산4구역을 더운 날씨가 힘겨웠지만 의미 있게 걷고 걸었다. 우리가 구세주라 고백하는 예수께서 지금 이곳에 있다면 ‘측은히’ 여길 사람과 장소가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일정 중 광화문에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나갔던 길에 하필이면 모종의 사건을 목격했다. 마침 정부에서 말하는 ‘광화문광장’이 개방된 다음날이었고, 그 자리에서 몇몇 시민단체가 광장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어김없이 공권력은 그들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을 적용하여 연행하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그 자리에서 함께 지켜보며 다양한 반응을 내었다. 그 때 필자 곁에 앉아 그것을 보던 어린(열 살도 안 된 것이 틀림없는)소녀와 할머니의 대화가 귀를 찔렀다.

소녀: 할머니, 왜 잡아가?           할머니: 데모해서 그런 거야.
소녀: 말만 했잖아?                   할머니: 말해도 데모한 거야.
소녀: 아무 일도 안했잖아?       할머니: 모르면 가만있어! 아저씨가 너도 잡아간다.
소녀: 피, 경** 아저씨 나쁘다. 할머니도 나쁘다. 으앙~


세상일에 구성원이 어두운 듯하지만,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바른 일이며 무엇이 바르지 않는 일인지는 교육이나 체험의 문제가 아니라 하늘이 인간을 지으면서 넣어준 기운이 있기에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종교인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더욱이 신앙인은 그 부르심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이해하고, 어렵지만 그 길로 가겠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을 기독교적인 용어로는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고 하는 것이다.

2000년 전 유대아 땅에서 예수께서 골고타 산에 오르던 정황을 당시에도 교회의 언론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어둠의 시기로 불리는 중세교회의 타락을 교회의 언론이 곁에 있었다면 어떻게 보도했을 것인가? 일제의 압제가 핍박을 더해가던 시기에 교회의 언론이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보도했을 것인가? 광복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언론은 수많은 시대의 징표를 어떤 눈과 귀로 기록하고 있다고 자평하는가?

사건을 기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일들 속에 어른거리는 이른바 종교인과 신앙인들을 자처하는 높은 지위의 사람들과 함께, 우리 자신의 그림자이다.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시대의 어둠이 깊을수록 언론의 등불이 밝아야 한다. 그래서 펜이 무서운 것이며 강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언론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나는 아직도 천주교회와 천주교회 신문의 역할을 믿으려 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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