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정평위, 제9회 사회교리 주간 기념 세미나

제9회 사회교리 주간을 맞아 ‘한국 사회 100년 역사 안의 교회’를 주제로 기념 세미나가 열렸다.

14일까지 지내는 사회교리 주간 첫날인 12월 8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진행한 세미나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하고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주관했다.

이날 세미나는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1919년 4월 11일) 100주년을 기념하며, 100년의 근대사 안에서 교회가 무엇을 고백하고, 3.1운동의 정신인 ‘평화’와 ‘해방’을 위한 교회의 사명은 무엇인지 짚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를 위해 강우일 주교는 기조강연을 맡았으며, 이어진 발제에서는 100년 뒤에도 끝나지 않은 착취와 물신 지배, 인간 소외, 폭력의 문제와 교회의 사명을 살폈다.

“이스라엘의 외침을 듣고 모세를 파견해 종살이에서 구한 하느님은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여 고통 받아온 우리 선조들도 줄곧 지켜보시고 곁에서 함께 걸어 주셨습니다.”

먼저 강우일 주교는 ‘3.1운동 정신과 교회의 사명’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우리 모두는 시간과 역사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며, 우리 신앙이 ‘탈출기’라는 역사에서 시작되고 현재도 여전히 신앙의 선조들과 살아가고 있다면서, “역사는 우리 신앙과 존재의 뿌리”라고 말했다.

강 주교는 “우리는 과거의 역사, 선조들의 역사를 존재의 뿌리에 담고 사는 사람들이며, 우리의 현실은 역사의 여정 위에 축적되고 덧붙여진 삶”이라며, “우리가 직면하는 지금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떠한 내일로 연결할지 가능하려면, 과거의 줄거리와 맥을 짚어 통찰해야 한다”고 역사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 주교는 동학농민전쟁, 항일의병무장투쟁, 일제강점기의 무단 통치 등의 역사에서 우리 선조들은 유랑민이 되고, 싸우며 죽어 가고, 종살이를 견뎌야 했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고국의 독립과 해방을 준비하는 못자리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결국 이 모든 시간은 1919년 3월 1일의 만세운동으로 점화되었고 이 운동의 주역은 종교계와 학생들이었다고 말했다.

강우일 주교는 기조강연을 통해, 역사적 맥락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역사적 과오에 대한 사과, 민중들의 현실과 연대는 교회 사명과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3.1운동 불참으로 (일본) 정부에 대한 충성에 모범을 보였다.” (당시 서울교구장 뮈텔 주교)
“일본정부는 합법 정부이므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말씀을 지켜 신자들의 만세운동 참여를 막았다.”(당시 대구교구장 드망즈 주교)

그러나 집단 활동에 비교적 자유로웠던 종교계가 주역이 된 당시 상황에서도 천주교는 만세운동을 막거나, 참여한 이들을 교회에서 배제했음을 지적하고, “3.1절 기념일을 맞이할 때마다 이런 우리 교회의 과거 입장과 행동에 가책과 부끄러움을 느껴 왔다. 그러나 평신도들 중에는 전국 여러 곳에서 독립운동과 항일운동에 앞장서고 적극 동참했던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당시 성직자들이 세상과 철저히 유리되어 살았던 것은 당시 신학과 교회의 흐름에도 반성해야 하지만 곳곳에서 항일운동에 앞장선 평신도들의 삶과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며, 제주인 가운데 3.1운동에 앞장 선 3명의 여성, “강평국 아가타, 고수선 엘리사벳, 최정숙 베아트리체”를 언급하고, “성직자들의 한계와 부족을 평신도들이 메꾸어 주었다”고 평가했다.

강 주교는 박해의 기억과 민족적 한계에도 교회가 백성 대다수가 걷는 광야의 여정, 민중이 직면한 고통과 환난을 외면했고, 힘없는 이들과의 연대와 협력을 거부했음은 부인할 길이 없다면서, “이제라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세가 마땅하다. 지상에서 힘든 걸음을 이어가는 백성들의 현실을 외면하거나 연대를 거부한다면 교회의 사명과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 사물에 대한 열중 역시 무신론의 한 형태”
“현대의 우상숭배는 돈, 이데올로기, 계급, 기술공학에 대한 우상숭배”

이어진 발제에서 이동화 신부(부산가톨릭대)는 “끝나지 않은 착취, 물신지배와 교회의 사명”이라는 주제를 통해, “물신숭배는 단순히 원시적 종교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우상에 투사한 것이며, 이는 인간의 노동을 소외시키며 상품과 화폐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는 우상화, 나아가 생태계와 생명의 의미 조작, 왜곡, 폭력으로 나아가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이 신부는 탈출기에 등장하는 ‘금송아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억압과 착취의 땅 이집트에서는 탈출했지만, 자신들의 내면에 있는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을 실현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의 상징인 금송아지로부터는 탈출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물질적 풍요에 대한 인간의 깊은 욕망은 금송아지와 같은 상징을 통해 드러나고,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뿌리”라고 말했다.

이렇게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우상숭배는 산업사회에서 인간의 노동의 상실로 이어진다. 즉, 인간에게 필요한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인간의 노동력이지만, 교환 과정에서 상품을 만들어 낸 노동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하고, 상품 그 자체가 가치를 지닌 것처럼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 신부는 이것이 금송아지 자리를 대체한 상품의 물신성, 물신숭배라며, 이러한 물신적 성격은 화폐, 자본 그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며, 모든 가치에 앞서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물신화는 사물과 인간 가치의 자리를 뒤바꾸며 인간 존재의 증명 방식도 바꾼다. 이 신부는 “인간의 의미와 가치는 사물에 의해 판단됨으로써 인간의 소외는 갈수록 심화된다”며, “노동자는 해체되고 파편화되며,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이가 소비자로 변한다. 소비자의 일상생활은 소비를 중심으로 재조직되고 소수의 생산자에 의해 일상 자체가 통제되고 착취된다. 나아가 생태계의 파괴, 생태계의 의미 조작과 해체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물신화, 우상숭배에 대해서 교회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노동하는 인간'은 이같은 물신론은 “하느님께로의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무신론의 한 형태”라고 지적하며, “인간 노동이 자본과 사물에 대해 우위성을 갖는다”고 밝힌다. 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회적 관심”은 “현대 사회의 우상숭배는 돈, 이데올로기, 계급, 기술공학에 대한 우상숭배”라며, “이는 가장 근본적으로 이득을 위해 무엇이든 소모하는 인간의 욕망, 권력에 대한 욕망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소비주의와 생태파괴 배후에는 경제와 기술의 공모, 즉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동화 신부는 “이는 기술의 힘, 인간의 힘으로 제약 없는 성장과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이며, 이는 시장이 요구하는 삶의 방식과 욕망적 인간을 만들어 낸다”며, “이런 의미에서 생태적 회개는 정치적 변화를 동반하는 공동체적 회개와 동시에 새로운 삶의 방식과 영성을 포함하는 개인적 회개도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념 세미나는 (왼쪽부터) 이대훈 교수, 김선실 대표, 이동화 신부의 주제 발제로 진행됐다. ⓒ정현진 기자

각 교구별 여성사목 전담기구 설치 시급

이어 김선실 상임대표(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는 인간 소외와 교회의 사명에 대해 특히 여성 인권과 소외에 초점을 맞췄다.

김 대표는 3.1운동의 정신, 세계인권선언과 대한민국 헌법,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모두 인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의무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특히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서한 '여성의 존엄'에도 여성의 존엄한 인격은 창조 때부터 부여된 것으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1980년대부터 본격 시작된 여성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여러 운동과 입법 활동 등에도 2017년의 이른바 ‘미투운동’은 여전히 여성의 권리가 실제로 실현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면서, “지난 촛불광장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했지만 그동안 민주주의 가치 안에 여성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대표는 지난 30년 동안 여성인권을 위한 활동은 많은 성과를 가져왔고 제도와 법이 마련됐지만 정작 의식의 향상은 뒤따르지 못했다면서, “법 제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의식 변화를 위한 지속적 교육이며,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참된 이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여성 인권 의식 향상을 위해 가톨릭 교회가 마련해야 할 제도나 교육 내용을 제시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인간과 여성의 존엄성을 누차 강조하고 있으며, 하느님나라의 구현은 지금 여기에 인간 존엄함을 실현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1년부터 주교회의에 여성소위원회가 설치됐지만 교구별 여성위원회가 없어 실행단위가 없는 셈이라고 지적하고, 2003년 서울대교구도 시노드 결과 여성 관련 부서 설치를 결정했다며, “교구별 여성사목 전담기구 설치”를 요청했다.

또 “교회 내 모든 교육 과정과 교재에 남녀평등의식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한편, 근원적인 의식 전환을 위한 교구별 사회교리 교육의 확산, 그리고 군종교구에서 젊은 군인을 대상으로 양성평등 교육 실시” 등을 제안하며, “세상의 정의평화, 생태환경 관련 현안에 응답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폭력과 평화”를 화두로 발제한 이대훈 교수(성공회대 평화학)는 과거 전쟁과 식민이라는 폭력은 분단이라는 상황에서도 사회 곳곳과 개개인의 삶 안에 내재된 형태로 이어 오고 있다고 지적하고, “폭력을 끝내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구체적으로 바라보는 전복적 사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평화로울 때가 위험한 때”라는 구호에 갇힌 평화
“우리-그들, 선배-후배, 남성-여성, 서울-지방, 서구 백인문명-기타문명” 등 이분법적 폭력

일상적인 군대 문화, 차별, 신체적 또는 구조적 폭력, 서열화와 선악 구조의 이분화, 다양성에 대한 억압, 인종주의, 무기 사용 등의 다양한 폭력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이는 한국전쟁의 상처와 기억, 오랜 분단 체제가 만들어 낸 당연시되는 폭력이며, 이러한 일상을 세세하게 포착함으로써 분단 체제를 더욱 분석적으로 접근하고 ‘분단폭력’의 실체를 알아야 평화를 구체적으로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폭력은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폭력과 간접적이지만 포괄적이고 근원적으로 작용하는 구조적, 문화적 폭력으로 나뉘며, 평화 역시 전쟁이 없는 상태인 소극적 평화와 전쟁이나 폭력 자체를 제거하는 적극적 평화로 나뉜다고 설명하고, “폭력의 요인을 제거하는 적극적 평화, 즉 평화 유지를 넘은 평화 세우기를 위해서는 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이 무엇인지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화 세우기의 관점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처럼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싸우지 않기로 약속한다고 평화가 자동적으로 도래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핵심 신조처럼 강조한다”며, “평화를 실천한다는 것은 일상에서의 폭력에 대한 세심한 이해와 감수성, 지속적 평화와 발전에 대한 생각과 가치의 확산, 시스템의 변화 등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는 전쟁 준비나 분단 체제를 끝내는 것, 그리고 기본적으로 평화 감수성 교육을 확산시키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념세미나 뒤에는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장 주례로 기념 미사가 봉헌됐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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