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기원미사....전국 2만여 명 참여, 문재인 대통령 축사

“오늘 전국 각 교구로부터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에 참석한 우리는 서로에게 총칼을 겨눈 이 아픔의 역사를 반성하고 우리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짚어 보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김희중 대주교)

천주교 주교회의가 25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전국 규모의 ‘한반도 평화기원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는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와 염수정 추기경, 이병호 주교 등 전, 현직 주교단 18명, 전국 교구 사제 200여 명이 공동집전했으며, 신자와 수도자 등 2만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미사에는 문희상 국회의장(바오로), 김용삼 문광부 제1차관, 최종환 파주시장 등도 참석했다.

주교회의 민화위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역할을 일깨우고, 남북이 대화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향해 함께 나아가며, 교황청과 외국교회 등 보편교회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연대할 것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으로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미사”라고 지향을 밝혔다.

이날 미사를 공동집전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외 18명의 주교단이 평화의 모후 '파티마 성모상'과 함께 입장했다. ⓒ김수나 기자

김희중 대주교, “분열을 조장하며 평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어”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강론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귀양살이에서 풀려났듯, 한국전쟁 70년을 맞는 2020년이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분단의 아픔에서 벗어나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을 체결해 새로운 일치와 평화의 시대를 여는 은총의 원년이 되길 기도하자”고 당부했다.

김 대주교는 남북이 자존심이나 정치적 명분이 아니라 화해와 번영을 위한 목표에 주력해 달라고 다시 한번 호소하며, 6월 한미 정상 간 만남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좋은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그는 외세에 의존한 평화 정착은 불안정하고 일시적 평화로 전락할 것이므로, 우리 민족 스스로 평화를 실현시킬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말고 서로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대화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예가 조성주 씨가 대형 붓을 이용해 먹글씨로 '평화'라고 썼다. 이 글자는 미사 중 애드벌룬에 매달아 하늘에 띄웠다. ⓒ김수나 기자

이기헌 주교, “조속한 남북대화 재개”, “민간교류, 인도적 지원 계속되길”

이날 미사 중에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 이기헌 주교가 ‘2019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 주교는 최근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대화로 한반도에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남북화해와 움직임이 더욱 진전되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남북 정부 관계자, 국제사회, 국민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는 남북정부관계자들에게 “남북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는데 국제사회가 먼저 나서줄 리 없다. 우리 문제는 우리가 먼저 나서서 풀어야 한다”며 “남북 정상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조속한 시일 내에 무조건 대화를 재개할 것”과 “민간교류와 인도적 지원도 계속될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또 한반도 주변 국가와 국제사회에는 “국제사회가 자국만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를 세력 균형의 완충지대로 생각해 분단구조를 고착시키려 한다면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큰 실망을 줄 것”이라며, “주변국과 평화롭게 공존하며 동북아 평화 실현에 모범이 되도록 노력함으로써 한반도는 평화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에게는 69년 전 체험했던 공멸의 시간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며, 편을 가른 갈등과 대립, 증오와 적의에 가득한 말을 당장 멈추기를 촉구하고, 신자들에게는 진정한 평화를 위한 용서와 화해, 끊임없는 기도를 요청했다.

전국 남녀 수도회 및 장상 단체도 이날 미사에 함께했다. ⓒ김수나 기자

문재인 대통령, “한국 천주교회는 한반도 평화의 길잡이”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보내온 축사를 김용삼 문광부 제1차관이 대독했다.

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한국 천주교회는 한반도 평화의 길잡이이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평화기원미사를 통해 마음속 분단을 녹여 주었다”며, 이러한 교회의 노력은 교황의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과 지지로 이어졌으며, 지난 10월 교황은 우리 겨레 모두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인사를 전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한 날이 꼭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한반도 평화가 완성되는 날까지 국민들과 함께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만나고, 대화하겠다. 천주교회 신자들이 늘 함께해 줄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알프레드 슈에레브 주한교황대사도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이날 미사에 대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굳건히 하고자 하는 일에 깊이 헌신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 주는 확실한 표지”라며 “오늘날 전쟁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참사를 무기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과제는 전쟁의 비극을 겪었던 이들의 마음이 우리의 염원인 평화로 따뜻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며 “흩어진 가족이 다시 하나되고, 증오와 원망의 장벽이 허물어지며, 평화의 임금님께서 순교자의 피로 축복된 이 땅에서 드러나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이로 인한 참사를 걱정하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고 비탄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며 아픈 이들을 낫게 할 수 있고, 불목하는 이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예수의 새 계명은 바로 오늘을 위한 것이며, 이 세상과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형제애와 지속적 평화의 시대를 우한 새 계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는 전국 16개 교구 신자들과 교구 및 수도회 사제단, 여러 신심단체 등 모두 2만여 명이 참석했다. ⓒ김수나 기자

이날 미산 전에는 참석자들의 기도와 다양한 문화 행사도 펼쳐졌다.

수원가톨릭소년소녀합창단이 ‘고향의 봄’ 등을 록그룹 부활이 ‘새벽’, ‘네버엔딩스토리’ 등을 불렀으며, 참가자들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친 뒤에는 대붓 서예 퍼포먼스로 미사 시작을 알렸다.

북장단에 맞춰 서예가 조성주 씨가 대형 붓으로 ‘평화’라고 쓴 뒤, 평화를 위한 기도를 상징하는 파티마 성모상을 앞세우고 주교단이 입장했다.

봉헌예절에서는 평화의 상징물로서 제작한 대형 한반도기를 8개 교구 신자들이 들고 나와 제단에 걸고, 참가자들이 ‘우리의 소원’을 부르는 동안, ‘평화’라고 쓴 붓글씨를 대형 풍선에 띄웠다.

미사 봉헌금은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쓰인다.

낮 최고 기온이 32도, 체감온도가 34도까지 올라간 이날, 전국에서 모인 신자들은 땡볕 더위 속에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통일을 기도했다. ⓒ김수나 기자

한편 6월 25일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전국 성당에서 남북통일 기원 미사가 봉헌된다. 미사 전 9일 동안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9일 기도를 바친다.

한국 교회는 1965년부터 매년 6월 25일에 즈음한 주일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다 1992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그 이름을 바꿨고, 2005년부터는 이날을 6월 25일이나 그 전 주일에 지내다 2017년부터는 6월 25일에 지낸다.

분단 70년이었던 지난 2015년부터 매일 밤 9시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 주모경(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바치고 있다. 이는 민화위의 제안으로 2015년 6월 12월까지 진행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운동’에서 시작됐다.

전국 규모의 평화기원 미사는 지난 2000년, 2003년, 2011년에 이어 이번이 4번째다. 2003년과 2011년에는 이날처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봉헌됐으며 당시 각각 2만여 명이 참여한 바 있다.

이날 미사 중 봉헌예절에서는 평화의 상징으로 제작된 한반도기를 제단에 걸고, 대붓으로 쓴 먹글씨 '평화'를 하늘에 띄웠다.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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