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자 1027호 <평화신문>과 2656호 <가톨릭신문>

눈앞에 올 것이 온 것이 아니라 이미 수없이 우리 앞을 지나간 일들이다. 그것을 이번에 서울대교구 가좌동성당에서 제대로 ‘물꼬’를 튼 것이다. 아니 ‘물꼬’가 될 것인지의 여부는 교회언론과 교회 구성원들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거기에 따라서 이번 문제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지닐 것이며, 또한 앞으로 벌어질 유사한 문제에 있어서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차근차근 이야기를 전개하자. 가좌동성당에 관한 일이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남가좌1동 155-29에 위치한 가좌동성당은 1971년 9월 17일에 설립된 본당이다. 지금 이 본당이 속한 지역인 가재울 4구역은 ‘뉴타운’이란 이름을 붙인 재개발사업의 대상이다. 이른바 보다 편리하고 쾌적하게 살기위한 재개발이 아니라 누군가 땅 놓고 돈 먹는 대상의 재개발이 진행 중인 지역이다.

교계신문들은 이 사업과 관련된 가좌동성당의 ‘항전’소식을 보도했다. <평화신문>은 이번 주 1면과 5면을 할애하였고, ‘성당은 재개발에 포함할 수 없다’는 사설을 실어 본당의 의지에 대한 동의의사를 확실히 하였다. <가톨릭신문>은 이미 7월 5일자 5면에서 가좌동성당의 철거위기에 대한 보도를 한 바 있다.

두 교계신문에 보도된 당사자 및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한다면 “성당은 팔고 사는 물건이 아니다” “성당은 재개발 대상이 아니다” “종교시설이 지닌 특수성을 인정하라” “경제 제일주의식 개발논리로 성당을 파괴하면 안된다” “경제논리가 종교의 존엄한 가치를 훼손한다” “하느님 집 없애는 것이 뉴타운이 아니다” 등이라 했다. 또한 <평화신문>은 사설의 끝머리에서 “교회도 재개발 지역 본당차원이 아닌 전체 교회차원에서 성당이 재개발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데 좀 더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실 이 문제는 <평화신문>의 말처럼 단위본당들이 재개발 및 유사사례를 만났을 때마다 고민하고 각개전투를 할 일이 아니다. 전국 각 교구의 관리국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명확한 방침이 있어야 한다. 쉽게 획일화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단위본당이 지역과의 어울림 속에서 여러 모습의 판단을 해야겠지만 분명 이보다 더 중요한 원칙은 반드시 존재해야 할 것이다. 사실 지역의 재개발 혹은 본당의 재건축과 관련하여 본당들 안의 분란과 다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하게는 이런 유사한 일들 때문에 교회를 등지는 일과 성직자와 평신도간의 불목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 일과 관련하여 서울대교구의 교구장과 총대리 주교가 가좌동성당을 방문하여 본당 신자들을 위로 할 것으로 교계신문은 보도했다. 서울대교구의 확실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용산4구역에서 희생을 당한 분들과 지금도 철거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의 요구는 어떻게 보면 가재울 4구역 가좌동성당의 요구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교회가 말하는 특수성과 개인의 특수성은 다르지 않은 것이며, 경제제일 개발주의의 광풍이 교회에 불합리하듯이 사회적 약자에게도 여전한 불합리한 것이다. 서울대교구만 하더라도 행당동·장한평·이태원에 이어 가좌동성당이 이제 풍전등화 처지가 되어 ‘항복’을 요구받고 있다. 든든한 조직(?)을 가진 천주교회가 이런 무리한 요구를 받는 세태 안에,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옮겨야하는 수많은 세입자들의 처지가 21세기 초입에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가좌동성당과 서울대교구의 의지를 교계신문이 지속적으로 보도할 것을 기대한다. 행여 가좌동에 망루는 짓지 마시라. 망루 지으면 하루 만에 특공대가 콘테이너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김유철(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경남민언련 이사,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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