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동물ㅣ로버트 라이트ㅣ사이언스북스(2003년)

미(美)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들

비너스 조각상을 보면 머리의 길이와 어깨~배꼽의 길이 비율이 1대 1.618입니다. 또 상반신(머리~배꼽)과 하반신(배꼽~발끝)의 비율, 하반신에서 무릎을 기준으로 한 양쪽 비율도 같은 수치죠. 바로 이 비율(1대 1.618)이 인간이 어떤 대상을 가장 아름답게 느끼는 비율, 즉 '황금비'입니다.

수학적으로 보면 이 황금비는 2차방정식 ‘x²+x-1=0’의 근에 해당하는 무리수(약 1.618)죠. 파르테논 신전, 석굴암 본존불, 밀로의 비너스,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 세계적 문화유산들은 제작 시기나 제작자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황금비'(1대1.618, 또는 5대8)’ 구조를 가진다고 합니다.

성형외과 의사들도 문명과 인종에 관계없이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황금비를 따른다고 주장합니다. 왼쪽뺨 끝에서 오른쪽 뺨 끝까지의 거리를 A라고 하고 턱끝에서 머리끝까지의 비율을 B라고 할 때 A와 B의 비율이 1대 1.618이라는 거죠.

단순하게 말하자면, 어떤 대상이 이 황금비를 구현하고 있다면 그 대상은 인종과 지역을 초월해서 아름답다는 인상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객관주의적 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느끼는 자’의 취향 때문이 아니라 대상이 갖는 객관적 성질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황금비를 구현하고 있는 소위 ‘팔등신’ 미녀만을 좋아할까요? 인기가 있는 할리우드 톱스타들도 상반신과 하반신의 비율이 1대 1.618일까요?

세상에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아름다움을 보는 기준도 각양각색입니다. 풍만함이 미의 기준이던 시대도 있었죠. 17~18세기 유럽의 바로크시대나 백제 시대의 경우 말입니다. 그 시대에는 늘씬한 여성들은 미인의 축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물론 현대의 여성들은 바로크 시대의 미인의 몸매를 선사하겠다면 "No Thanks"라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의 모든 여성들이 ‘롱다리’에 ‘삐쩍 마른’ 체형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만큼 미묘한 개인차를 보여주는 것도 없습니다. 미인대회나 광고 속의 여성들이 미인의 표준이 될 수는 없다는 거죠.

진화심리학자들이 바라보는 미(美)

그러나 진화심리학자들은 인종ㆍ세대ㆍ지리ㆍ문화적 차이와 관계없이 우리의 행동과 심리를 유사하게 만드는 본성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진화심리학은 사람의 마음도 몸처럼 진화의 산물이라고 간주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인류의 조상이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수십 만 년 전의 시절부터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선택된 기능들이 모여서 형성되었다고 보는 거죠.

진화론의 핵심개념인 ‘적응’ 개념은 쉽게 말하면, ‘다 있을 만하니까 있는 것’이라는 점이죠. 가령 ‘아름다움’도 ‘다 있을 만하니까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 쉬운 설명이 필요하다면 다음의 예를 살펴볼까요.
텍사스 대학의 데벤드라 싱 교수에 따르면 골반에 대한 허리둘레의 비례(WHR= Waist Hip Ratio 허리/엉덩이 비)는 자식을 낳아 돌볼 능력과 질병 저항력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성들에게는 WHR이 0.7 정도인 여성이 남성들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거죠. WHR이 매우 크거나 작은 여성들은 짝짓기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비적응적’이지만, WHR이 0.7의 경우는 짝짓기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적응적’이라는 것입니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이 0.7인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번식과 진화에 유리하기 때문에 인간은 WHR이 0.7인 여성을 아름답다고 느끼도록 진화했다는 것이 ‘미’에 대한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남자가 젊고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까닭은 여성의 미를 다산성(多産性)의 척도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비너스와 같이 아름다운 여자일수록 종족 보존 능력이 뛰어나므로 짝짓기에서 유리하다는 뜻이죠.

마음도 진화의 산물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사람의 마음도 몸처럼 진화의 산물, 즉 적응의 산물로 간주합니다. 사람의 마음도 인류의 조상이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선택된 기능들이 모여서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죠. 가령 스트레스를 더 잘 받는 사람이 생존경쟁에 더 잘 대처해서 우리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자들의 추정입니다. 초기 인류 시대에 하나의 열매를 두고 이 열매가 먹어도 될 열매인지 먹지 말아야 할 열매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이 경우 의심이 많고, 공포를 잘 느끼고, 새로운 상황에 스트레스를 더 잘 받는 동물, 즉 ‘겁 많은 동물’이 ‘겁 없는 동물’보다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공포를 더 잘 느끼는 유전자를 가진 동물들이 그렇지 않은 동물들보다 자연선택될 가능성이 높았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유리는 인간의 공포심은 적응적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지요.

진화심리학자들은 인류가 오랜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직면한 여러 유형의 적응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설계된 마음을 가진 개체가 진화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로버트 라이트의 책, 『도덕적 동물』역시 이런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저자는 인간의 언어에서 짝짓기에서부터 가족과 정치, 그리고 도덕과 종교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현대 진화생물학의 기본 원리에 의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심리는 ‘자연선택’의 무수한 누적에 의해 디자인되었다는 것입니다.

진화적 관점에서 번식력이 떨어지는 짝을 고른 남성은 번식 가치가 높은 여성과 짝짓기를 한 남성에 비해 틀림없이 번식 성공도에서 뒤쳐졌을 것입니다. 또 자신과 그 자식들에게 자원을 투자할 수 없거나 투자하려는 의지가 적은 남성을 선택했던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번식 측면에서 덜 성공했겠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의 번식 가치를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여성의 젊음과 외모가 남성들에게는 중요한 선택요인이 되었을 것이며, 여성에겐 남성의 자원, 야망, 재산, 헌신이 짝짓기에서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진회심리학자들은 성과 결혼의 문제를 이해합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말한 균형과 대칭의 미학도 진화심리학자들은 색다르게 설명합니다. 몸이 대칭적인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유전자는 그 사람의 우수한 저항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즉 진화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사람은 자신의 짝을 고를 때 얼굴과 몸이 얼마나 대칭적인가를 무의식적으로 계산하며 약간의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이 심리학자들의 연구실에서 밝혀진 바 있습니다. 미국 뉴멕시코대 심리학자인 갠지스테드와 생물학자인 손힐은 매력과 대칭성의 정도가 밀접한 상관관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습니다.

왜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배우자의 외모를 따지지 않고, 배우자의 사회적 지위와 자산을 따지는 경향이 있을까요. 진회심리학자들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수컷은 무수히 많은 정자를 만들어내고, 자손을 돌보는 데 거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므로 가능한 한 많은 짝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암컷은 극소수의 난자를 만듭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뱃속에 태아를 담고 다녀야 하고, 출산 후에도 새끼를 돌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있어서 가급적이면 수컷에게 많은 투자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수컷이 자신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해줄 수 있는 수컷인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수컷은 자식 양육에 덜 투자하므로 짝의 양에 관심을 갖는 반면에 암컷은 자식 양육에 더 투자하므로 짝의 질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죠.

진화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이타성의 기원

사람들은 생면부지인 타인을 위해 헌혈하고,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돕고 배려하는 마음, 즉 이타심의 진화론적 기원은 무엇일까요?

『도덕적 동물』에서 저자는 생물의 이타적 행동을 ‘혈연선택’과 상호 이타주의 이론으로 설명합니다. 혈연선택 이론에 따르면 혈연으로 맺어진 개체들은 구성원들이 공유한 유전자를 영속시키기 위해 가까운 친척에게 이타적인 혜택을 베풉니다. 혈연선택 가설은 생물학자인 윌리엄 해밀턴이 1963년 제기한 이론으로 혈연을 돕는 것이 내 유전자의 번성을 돕는다는 관점으로 이타적 행위를 설명하죠.

혈연선택이론의 가장 큰 약점은 이타적 행동이 굳이 혈연관계에 있는 개체들 사이에서만 국한되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생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이타적인 행동을 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이 이론을 가족의 테두리를 넘어서 존재하는 이타적 행동을 설명하는 데까지 확장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릅니다.

그렇다면 왜 생물은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경우에도 이타적 행위를 하는 것일까요. 이를 설명하는 것이 상호 이타주의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개체 사이에서 이타적 행동이 나타나는 이유는 “내가 도움을 주면 나도 너에게 도움을 준다.”는 식의 호혜적 행동 때문입니다.

그러나 호혜주의는 당신이 어떤 이에게 도움을 받았어도 그에게 은혜를 갚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 팃포탯(Tit-for-Tat) 전략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for-tat)’로 설명되는 팃포탯은 “처음에는 협력한다.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이 그전에 행동한 대로 따라서 한다”는 두 개의 규칙으로 구성됩니다. 팃포탯은 인정 많음(먼저 배반자가 되지 않음), 분개(상대방이 배반하면 따라서 배반함으로써 즉시 응징함), 관대(상대방이 배반한 적이 있더라도 다시 협력하면 따라 협력함으로써 협조 분위기를 복원시킴)의 특성을 갖고 있죠. 한마디로 당근과 채찍을 합쳐 놓은 전략이죠. 결론적으로 팃포탯은 상호 호혜주의에 의해 이기적인 개체들로부터 협력 관계가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진화론이 인간의 심리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도덕적 동물』의 저자는 과연 일부일처제는 남자에게 유리한가, 아니면 여자에게 유리한가를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일부일처제는 인간 본성에 역행하는 것이요, 남성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합니다.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154개의 사회 가운데 980곳에서 한명의 남성이 여러 여성을 거느리도록 허용해 왔다고 합니다. 일부일처제 아래에서는 남자는 다른 남성과 심한 경쟁을 할 필요가 없고, 일부다처제에서 여러 명의 여성들이 능력 있는 한 남성에게 높은 수준의 생활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부일처제는 능력이 없어 짝을 찾지 못할 위험이 있는 남성들을 위한 제도이며, 남녀 간의 평등이 아니라 남자들 간의 평등을 위한 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유전자가 인간 심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을 고집스럽게 말하고 있는 책은 아닙니다. 저자는 “문화적 다양성은 동일한 인간 본성이 매우 다양한 환경에 반응한 결과다.” 라고 말합니다.

현대의 진화론이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진화론이 기존의 세계관과 학문에 어떤 충격을 던지고 있는지를 알고 싶은 궁금증이 있다면 이 책은 꼭 읽어봐야 할 고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1994년 뉴욕타임스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것도 이 책이 바로 그런 궁금증에 적절하게 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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