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10주기, 3000명 추모

16일 오후 2시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10주기 추모미사가 봉헌됐다.

3000명의 신자, 수도자, 사제가 대성당을 비롯한 소성당, 꼬스트홀, 대성당 뒤 성모동산까지 가득 찼다.

이날 미사에 참석한 송천동 성당의 민수연 씨(마리스텔라, 50)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나눔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있고, 그리워서 오게 됐다”며 “독재 때 침묵하지 않은 모습, 가난한 사람들이나 이주노동자 등 낮은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많이 쓰신 점에 대해 본받아야 한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며, 장기기증이든 뭐든 나누고 베푸는 자세는 사제가 아니어도 일반인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정동 성당의 김민우 씨(마태오, 20)는 김 추기경에 대해 “재단도 운영하고, 장기기증이라든가 용기가 많이 필요한데 먼저 나서서 하신 것이 대단하다”며 “장기기증은 저도 하고 싶다. 기증하면 누군가에게 소중한 것이 될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톨릭농민회 정한길 회장도 이날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올라왔다. 그는 “추기경님이 그리워서, 돌아가셨지만 보고 싶어서 왔다”며 “(김 추기경이)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였고, 민주주의의 파수꾼이었으며 농민을 매우 사랑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김 추기경이) 한국 농업이 어려울 때 시국 기도회를 열어 주셨고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을 위해 농촌살리기 운동본부를 출범하게끔 했다”며 1990년대 어려웠던 우리밀살리기 운동과 사업을 해결해 준 사람으로 김 추기경을 기억했다.

쌍문동 성당의 홍부기 씨(마리젤마노, 67)는 대학생 때 가톨릭 학생회를 하며 김 추기경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며 “항상 겸손하고 미소를 지으시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을 깨닫는 데 머리에서 가슴까지 오는 데 70년이 걸렸다"는 김 추기경의 말을 언급하며 “신자로서 사랑을 한다지만 그분처럼 할 수 있을까. 신자 생활을 하며 롤모델로, 인자하고 겸손하신 모습을 많이 닮아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16일 오후 2시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10주기 추모미사가 열렸다. (사진 출처 = 천주교 서울대교구)

미사 뒤 추모식에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는 김 추기경이 독재 정권 시기에 침묵하지 않음으로써 한국의 정치,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며 “김 추기경이 남긴 영적 유산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한국 교회의 사명을 밝혀 줄 것”이라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모사를 통해 “사람이 국가이지 국민이 국가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추기경님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추모사는 김용삼 문체부 차관이 대독했다.

그는 “추기경님이 한반도 문제도 믿고 사랑하는 관계를 만드는 평화의 문제라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김 추기경이 철거민, 외국인 노동자, 장애 어린이 등 약자들과 함께했고, 민족화해와 종교간 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등 “교회가 교회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사람과 사회를 위한 교회가 되길 몸소 실천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추기경에게 5.18은 “당신 생애에 가장 쓰라린 아픔을 준 비참한 역사의 사건”이었다며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모욕적이고 반역사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일부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추기경님은 어떤 심정이며, 그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실지 궁금하다”며 일부 극우 정치인들을 에둘러 비판했다.

이날 미사에는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신재용 기자

이날 미사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의 주례로 한국 천주교 주교단 및 사제단이 공동 집전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강론에서 김 추기경의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라는 메시지와 ‘너희와 모든 이들을 위하여’라는 사목 표어를 통해 김 추기경이 많은 사람을 사랑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오늘 이 자리는 그저 추억하는 자리가 아니”며 “각자 어려움과 도전이 있겠지만 추기경님의 사랑과 감사의 삶을 지금 여기에서 살아야 한다”며, “물질적인 유혹에서 벗어나 영원한 가치를 지향하는 모습”을 교회가 보여야 하고 “필요한 이웃에게 나의 것을 나눠 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 강조했다.

그는 “추기경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랑을 강조하셨다. 인간 삶에서 권력보다 더 중요한 가치, 사랑과 용서, 나눔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다”며 물질만능주의와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때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에 대한 배려를 되새기자고 했다.

1922년생인 김수환 추기경은 1951년 대구대교구 소속으로 사제품을 받았고 1966년 마산교구장이 되었다. 1968년 서울대교구장이 됐으며 1969년에는 당시 세계 최연소(46살)이자 한국 최초로 추기경이 됐다.

그는 또한 마산교구장이 되기 전 <가톨릭시보>(현 <가톨릭신문>) 사장으로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의 경과와 결과를 한국교회에 상세히 알렸던 언론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교회 안 활동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다.

김 추기경은 독재정권 시기에 서울대교구장을 지냈다. 1970년대 그는 유신체제에 맞섰고, 1980년대에는 당시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던 명동성당에서 민주화 운동가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등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힘이 됐다.

또 김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에 도시산업사목연구회(현 노동사목위원회), 도시빈민사목위원회(현 빈민사목위원회)를 만드는 등 사회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했으며, 1998년 은퇴 뒤로도 한국 사회의 원로로서 목소리를 내다 2009년 2월 16일 숨졌다.

한편 서울대교구는 김수환 추기경 10주기를 맞아 추모 사진전과 유품 전시회를 열고 있으며, 앞으로도 토크콘서트, 기념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 김 추기경을 기린다. 서울대교구는 또한 2010년에 김수환 추기경연구소를 한국가톨릭대 부설기관으로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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