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10주기,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아,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숨진 농성자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 씨와 경찰 김남훈 씨를 추모하고, 연대자와 유가족을 기억하는 미사가 봉헌됐다.

20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국가폭력에 공소시효란 있을 수 없다”를 지향으로 봉헌된 이 미사에서, 200여 명의 참석자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촉구했다.

이 미사는 용산참사 당시 현장을 지켰던 문규현, 나승구, 이강서 신부 등을 비롯한 사제 17명이 공동 집전했다.

미사를 주례한 이강서 신부는 참사 1년 뒤인 2010년 남일당 앞에서 봉헌된 마지막 미사 날, 날씨가 너무 추워 미사 때 쓰일 물이 얼마 안 돼 얼어버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신부는 “그 얼음이 참사가 있던 당시 우리 사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과 사랑조차도 다 얼어버린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희생자와 유가족,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10년을 살아 낸 연대자들을 기억하자고 말했다.

20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봉헌된 용산참사 10주기 추모미사는 문규현 신부를 비롯 사제 17명이 공동집전했다. ⓒ김수나 기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 신부는 “우리가 용산참사역이라고 불렀던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주변은 그대로인 것이 하나도 없다”며 강론을 시작했다.

그는 “명절 때 설빔을 마련했던 양품점도, 동네 사람들의 적적함을 달래주고 아이들 성장도 도왔던 책방도, 저녁나절 맑은 탕에 소주 한잔 했던 복집도, 하루를 정리하고 이웃과 동료들이 정담을 나누던 호프집도, 그렇게 사람들이 만나며 일상을 누렸던 2009년 1월 10일 이전의 용산은 이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섯 분의 희생자와, 공권력의 집행이라는 이름으로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국가 폭력의 도구가 되었던 고 김남훈과 그 유가족들, 아직도 10년 전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 집터와 일터를 빼앗긴 철거민들이 잃어버린 것들은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 신부는 “국민을 지켜야 할 공권력을 함부로 사용해 국가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렸던 사람이 요직을 거쳐 지금은 국회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는 오늘, 아직 아픔은 멈추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용산참사 당시 김석기 서울 지방경찰청장은 현재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이날 미사에는 용산참사 유가족과 연대자 및 신자 등 200여 명이 함께했다. ⓒ김수나 기자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는, 아니 오히려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 무정한 세월과 세상은 오늘도 그렇게 흘러간다.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이제 세월이 지났으니 상처와 아픔은 봉인한 채 살아가라고 하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나 신부는 많은 연대자들이 지난 10년 동안 “이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한다는 숙제까지 끌어안고 세상의 아픈 사람들과 함께했다”고 격려하며, “쌍용차, 강정, 밀양, 세월호에도 용산이 있었다. 의미 없는 세월만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빈 독에 물을 채우는 10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은 돈 때문에 사람이 사는 터전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도록, 가족과 이웃을 저버리지 않도록 선하고 맑은 물을 빈 독에 채우자”고 말했다.

이어 오늘은 “아름답고 착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을 끌어안고 따뜻한 기운을 펼치며 살아갈 그날을 위해 물독에 헌신과 연대, 사랑의 물을 채우며 함께 꿈을 꾸는 날이자 다시 한 걸음씩 내딛는 날로, 용산이 용산이게 한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고 전했다.

이날 미사에는 양회성,  윤용현, 이상림, 이성수 씨 유가족 4명과 망루에 함께 올라갔다 붙잡혀 구속됐던 연대자들도 함께했다.

먼저 유가족들은 그렇게 힘들었던 순간 함께해 주고 용산을 잊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유가족과 함께 길거리에서 쓰러지고 넘어지고 옷이 뜯겨 가며 싸운 신부님들과 신자들의 마음”에 감사를 전했다.

이어 “국가폭력은 공소시효가 없다. 우리가 테러범이나 떼쟁이라는 누명을 벗고, 진상이 규명되고 책임자가 처벌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해 달라”고 말했다.

이상림 씨의 아들이자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이던 이충연 씨를 비롯해 상도동, 사당동, 단대동 등 다른 지역 철거민으로 용산 망루 농성에 함께했던 연대자 7명은 용산참사 이후의 생활과 용산참사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설명하며 남은 싸움을 힘차게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용산참사 희생자인 양회성,  윤용현, 이상림, 이성수 씨의 유가족들. ⓒ김수나 기자

한편, 지난 2018년 9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2009년 1월 20일에 발생한 용산참사에 대해 경찰이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에도 경찰 특공대를 투입해 진압을 강행한 결과라고 발표한 바 있다.

진상조사위는 경찰 특공대 투입을 통한 조기 진압을 김석기 전 청장이 최종 승인했으며, 사망자 부검과정, 유가족 사찰, 생존자 검거 과정에서의 폭행 등 인권침해도 인정했다. 또한 당시 청와대와 경찰은 용산참사에 대한 여론 조작도 펼쳤다고 밝혔다.

또 진상조사위는 경찰에 순직한 경찰특공대원과 철거민에 사과할 것과 유사사건 재발 방지 및 인권증진을 위한 제도 및 정책 개선 등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21일 경찰 관계자는 “(진상조사위의) 제도개선 권고를 엄중하게 여기며, 권고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과제를 검토하고 이행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제도개선 성과가 나오면 알릴 계획”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1월 14일 기자간담회에서 민갑룡 경찰청장이 경찰의 물리력 행사와 관련해 기준표를 마련해 인권영향평가를 진행 중에 있다면서 결과가 어느 정도 나오면 적절한 시점에 사과하겠다고 한 취지도 변함없다고 밝혔다.

유가족과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정확한 진상규명과 김석기 등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