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특공대 연기 요청도 묵살, 청와대는 "살인사건 이용하라"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5일 용산참사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진상조사위는 용산참사 사건과 관련, 당시 용산 4구역 철거업체 직원의 폭력에 대한 경찰 대처의 적정성, 2009년 1월 20일 경찰의 공권력 남용 여부와 특공대 투입의 적정성, 진압 과정의 안전조치 의무 불이행 여부, 경찰 지휘책임자 확인, 사건 뒤 희생자 부검 과정과 검거 및 조사 과정의 인권 침해 여부, 유가족 사찰 여부, 사건 뒤 경찰 대응의 적정성 등을 조사했다.

진상조사위는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구 남일당 빌딩 옥상 망루에서 철거민 이주대책을 요구하던 32명에 대한 강제 진압과 이 과정에서 경찰 1명과 철거민 5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은 “경찰이 안전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진압을 강행한 결과”라고 판단했다.

또 경찰이 희생자에 대한 부검 사실과 결과를 유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은 것과 유가족을 사찰한 것은 인권침해라고 봤으며, 사건 뒤 경찰조직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하고 정부기관, 검찰, 언론 등에 접촉한 정황도 확인했다.

경찰의 이같은 조직적 여론 조작은 경찰법 위반은 물론,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강요죄가 성립될 수 있다.

진상조사위는 이같은 조사 결과에 따라 순직한 경찰특공대원과 철거민에 사과할 것과 유사사건 재발 방지 및 인권증진을 위한 제도 및 정책 개선 등을 경찰에 권고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찰은 먼저 철거 과정에서 철거업체 직원들이 방화행위를 하고 출동한 소방관을 위협하는 상황에도 이를 묵인해 소방관이 화재 진압을 하지 못했으며, 남일당 건물 반대편 옥상에서 농성자들에게 물포를 쏘는 것 또한 협조했다,

또 경찰은 철거민들이 협상을 요구했음에도 망루농성을 시작한 지 25시간 만인 1월 20일 오전 6시 30분쯤 진압 작전을 시작했다.

조기 진압 계획은 사실상 전날인 1월 19일 오후 12시 30분쯤 경찰 지휘부 현장대책회의에서결정됐다. 경찰 지휘부는 당시 이미 남일당 빌딩 망루에서는 화염병 투척이 중지됐으며 주변 한강대로 교통도 정상이었고, 주변 상가 13곳이 정상 영업을 하고 있음에도 조기 진압과 경찰특공대 투입을 결정했다.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는 19일 오후 1시 30분쯤 현장을 방문했고, 김수정 당시 서울청 차장은 특공대 투입을 통한 조기 진압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19일 오후 7시 기능별대책보고회의에서 김석기는 다음날 오전 6시 30분 특공대 진압작전을 결정했으며, 밤 11시쯤 김수정 서울청 차장이 결재하고, 김석기 전 청장이 최종 승인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 ⓒ지금여기 자료사진

경찰은 농성자들의 분신, 투신, 자해 등이 우려된다는 명분으로 기중기와 컨테이너를 사용해 경찰특공대가 공중에서 옥상으로 진입해 망루를 해체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당시 망루에는 신나, 화염병 등의 위험물이 있었지만 경찰은 망루 진입 방법이나 망루 구조 분석, 화재 발생시 대책은 없었다.

진상조사위는 구체적인 작전 계획과 사고 대책이 없었음에도 경찰은 작전계획과 달리 100톤 크레인 1대만 동원했고, 추락에 대비한 에어매트도 설치하지 않았으며, 고가사다리차 및 화학 소방차도 현장에 투입하지 않는 등 안전 대비책이 매우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경찰특공대 제대장은 당시 이러한 상황에서 “작전이 불가능하다.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서울청 경비계장은 “겁 먹어서 못 올라가는가. 밑에서 물포로 쏘라”며 거절했다.

이에 따라 경찰특공대는 1차 진입 당시 화염병 투척으로 불이 나고 경찰 컨테이너가 망루와 충돌해 망루 내부가 무너지자 철수했다. 당시 특공대 제대장은 건물 내부의 휘발성 물질과 유류물로 경찰과 농성자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보고했지만 이 또한 묵살당한 채 2차 진입했다. 2차 진입 뒤 두 번 째 화재가 발생했고, 이때 농성자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사 과정에서 당시 투입된 경찰특공대원들은 “2차 진입 당시 건물 안에 시너 등 휘발성 유증기가 가득해 특공대원들 상당수가 술에 취한 듯 몽롱한 상태가 되었다”거나, “두 번째 들어갈 때는 이미 숨을 못 쉴 정도로 냄새가 너무 독해 어지러운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진상조사위는 이미 경찰특공대도 진압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고, 이를 지휘부에 보고했지만 묵살당한 것은 경찰이 농성자는 물론 경찰 자체의 생명과 안전도 무시했다고 판단했다.

5일 진상조사위원회가 용산참사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유가족과 생존자는 경찰청 앞에서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정현진 기자

사건 뒤 희생자들에 대한 부검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도 확인됐다.

진상조사위는 경찰이 사건 현장에서 사망자를 발견하고도 16시간 이상 지난 뒤에야 가족들에게 확인을 해 줬을 뿐, 가족들에게 사망자 관련 정보나 부검 필요성, 부검 경과에 대해 통지하지 않았으며, 생존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도 이들에 대한 폭행, 구타 등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 경찰이 서울청 등 지방청 정보과의 지휘로 ‘이동상황조’ 등을 편성해 유가족과 단체 활동가에 대한 동향을 파악하고 미행한 사실도 인정했다.

청와대와 경찰은 사건 뒤 여론 조작과 조성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경찰은 조직을 동원해 여론 조작은 물론 검찰 수사 과정에도 개입하려고 했다.

1월 25일 당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지시로 작성된 ‘용산 철거현장 화재사고 관련 조치 및 향후 대응방안’ 문건에 따르면, 경찰의 입장을 홍보하기 위해 사이버수사요원 900명을 동원한 여론 분석과 여론조사 참여, 글 게재 등은 물론 “언론계 인사 및 지인 등을 통한 경찰 입장 홍보”를 지시했다.

또 경찰 과잉 진압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도 개입하려고 시도했다. 1월 23일 문건에는 “검찰 수사본부와 유기적 연락체계 구축을 통한 수사방향 및 경과 등을 파악하라”는 지시가 있으,며, “수사검사 및 지휘 라인을 대상으로 객관적 수사가 나올 수 있도록 경찰의 입장을 전달하라”는 방침도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경찰이 동원한 전국 사이버수사요원 900명은 용산참사 관련 각종 여론조사 투표에 참여했으며, 일선 경찰들은 이에 대한 일일추진사항을 작성, 보고, 관리했다.

이들은 사건 관련 게시글에 1일 5건 이상의 반박글을 올리고, 각종 여론조사에도 참여했으며, 내부문건을 통해 2009년 1월 24일까지 인터넷 글과 댓글 740여 건, 여론조사와 투표 참여 약 590건이 확인됐다.

청와대도 여론 조작을 지시했다. 2009년 2월 11일,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용산참사의 파장을 막기 위해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내용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당시 담당관 퇴직 등의 사유로 지시 이행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이메일 공문에서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수사내용을 더 적극적을 홍보하기 바란다”며, “연쇄살인 사건 담당 형사 인터뷰, 증거물 사진 등 추가정보 공개, 드라마와 경찰청 과학수사팀의 비교, 사건 해결에 동원된 경찰관, 전경 연인원 공개, 수사와 수색에 동원된 전의경 수기”등을 이용하라고 구체적으로 요청했다.

“살려고 올라간 망루다. 하루 만에 죽여야 했던 이유를 묻고 싶다”
“이 원통함과 억울함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죄가 있다고 하지 않나, 처벌해 달라”
“진압이 아니라 구조했다면...”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에 따라 용산참사 유가족과 대책위는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책임자 처벌, 경찰의 권고 이행, 김석기와 이명박 처벌” 등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들은 당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지시로 용산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김석기 등 지휘 책임자들은 조사위원회의 조사에 불응하며 끝까지 책임을 회피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10년 전 검찰이 이 정도의 조사만 했다면, 10년 동안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누명, 테러리스트라는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경찰에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와 권고를 받아들여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용산참사 진상규명은 이제 시작이며, 작은 물꼬가 트였을 뿐 아직 밝혀야 할 것이 많다”며, “국가폭력에 의해 하루아침에 여섯 명의 국민이 사망한 참사에 대해 공소시효 등을 빌미로 책임자조차 처벌하지 못한다면 재발방지 대책은 공허할 뿐이다. 반드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박순희 공동대표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살겠다고 올라간 이들에게 살인진압을 하고 사실을 은폐했다. 이 한을 다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그러나 현재도 철거민이 계속 나오고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삶의 기본인 주거 문제다. 이제 진실을 밝히려는 시작을 했으니 모두 각성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 신부는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간 지 단 하루 만에 대화 시도조차 없이 강제로 진압했다. 개발도 요건이 되지 않으면 해선 안 된다. 요건의 충족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들의 처지를 돌보는 것”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여건이 안 되는데도 어떻게든 무리하게 하는 게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였다.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해야 되니까, 명령이 떨어졌으니까 해야 되고 그 명령이 무리한지 아닌지에 대한 검토조차 없고 자기의 명령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르는 아주 무리한 짓들에서 나온 결과”라며, “지금도 사람과 형편을 돌보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도 책임자들이 얼마 만큼 잘못했는가가 명명백백히 밝혀지고 거기에 합당한 처벌 또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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