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목줄 조이는 농수산물유통공사 행태... 수입쌀 홍보 앞장

▲ 낑낑거리며 홀로 손모내기 하던 도중에 헛김 빠지는 몰상식한 소리들이 들려 왔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느려 터진 반거충이 농사꾼, 홀로 온갖 궁상 다 떨어가며 손모내기한 후유증으로 이틀 내내 "어이구 아이구" 소리를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앉았다가 일어나기라도 할라치면 엉덩이가 욱신거리고 허리가 뻐근했습니다.

호남고속철도 착공 예정일인 9월에 쫓겨 당장 새 터를 잡아야 하는데, 터 잡는 일들이 꼬이고 뒤틀어져 모내기 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거니와 짬도 나지 않았습니다. 하여 매년 해왔던 손모내기를 농기계에 의존하기로 했습니다.

턱없이 비싼 농기계 사용료... 그 이유는?

그런데 그놈의 농기계만 팍팍 믿고 전남 여수며 순천이며 고흥 땅을 휘휘 싸돌아다니고 왔더니 논바닥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농기계 모는 사람에게 2만 원 정도의 웃돈까지 얹어 미리 품삯을 챙겨주고 신신당부해 놓았는데 논두렁을 바리캉 치켜든 몹쓸 선생이 학생들 머리통 왕창 밀어놓듯 파헤쳐 놓았습니다. 삽과 쇠스랑으로 죽어라 정리 정돈 해놓았는데 성의 없는 써레질로 탱크 지나간 자국처럼 푹푹 파헤쳐져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반도 채 안 심어 놓은 벼논. 벼 또한 제대로 심어 놓지도 않았습니다. 듬성듬성 이빨 빠진 자리처럼 드러나 있었고 그나마 논바닥에 꽂혀 있는 벼들은 저 녀석이 제대로 살아날까 싶을 정도로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보통 네댓 포기씩 꽂혀 있어야 할 벼인데 한 포기만 대강대강 심겨져 있는 부분들이 눈에 띌 정도로 많았습니다.

"웃돈까지 챙겨 줬는디, 모를 개판으로 심어놓고 연락 한마디 없구…. 기계 가졌다구 위세 떠는 거여 뭐여."

논두렁에 주저앉아 구시렁 거리며 담배 연기만 연신 내뿜고 있다가 집에 돌아와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째 다 심어 놓지 않았네유?"
"그거 심는다구 얼마나 힘들었는디 그류. 이앙기가 논에 푹푹 빠지고…."
"애초에 어렵다고 말하지 그랬슈, 그람 그냥 예년처럼 손모내기를 했을 틴디…. 나머지 심지 못한 거 어떻게 허쥬."
"그 논 모심기 어려워유, 그거 기계로 못 허는디." 

손바닥만한 다랭이논(경사진 산비탈을 개간하여 층층이 만든 계단식 논)을 오락가락해가며 농기계를 운행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야속하고 화딱지나 나서 '이걸 확 내질러 버려' 하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그류, 어쩔 거유, 헐 수 없지, 그냥 내가 손으로 심어야지 어쩌겠슈."

나야 뭐 가족들 먹을거리만큼만 논농사 짓는, 생활비의 절반 이상을 도시에서 충당하는 반거충이지만 그는 농사가 전부입니다. 그는 농기계 끌고 다니며 100마지기 넘게 벼농사 짓는 소작농이기도 합니다. 소작농으로서의 힘겨운 농사일을 나보다 몇 수십 배나 더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나 같은 소작농들은 농기계 사용료가 턱없이 비싸다 여기고 있고 농협 빚내 농기계 구입한 그는 품삯이 많지 않다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끼리 싸워야 일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확 내질러야 할' 상대는 따로 있었습니다. 노동자들끼리, 농민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든 말든 지들 알속 다 챙겨가며 노동자, 농민 등골 빼먹는 인간들입니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수입쌀을 판촉 한다고?

▲ 노동자끼리 다투고, 농기계 사용료며 논일 처리 때문에 농민들끼리 서로 다투기도 한다. 넓게 만?싸워야 할 상대는 따로 있다. 사진은 모내기 하기 전에 써레질한 논 평탄 작업.

손모내기를 마무리 할 무렵 헛김 빠지는 요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수입쌀 홍보에 앞장섰다는 보도였습니다. 쌀 재고량 급등과 쌀 소비감소로 우리 쌀 판매를 늘리고 소비 촉진시키는 데 앞장 서야 할 농수산물유통공사가 밥쌀용 수입쌀을 판촉하기 위해 기본계획까지 수립하고, 전략적으로 활동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국회 농식품위 소속 민주당 김우남 의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농수산물유통공사는 밥쌀용 수입쌀이 소비자 외면으로 판매가 부진하자, '2009년 밥쌀용 수입쌀 판매 활성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전국 11개 지사에 홍보·판매 실적을 보고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밥쌀용 수입쌀 판매에 경쟁을 붙였다는 것이지요.

특히 공매업체가 아닌 요식업체를 대상으로 홍보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요식업체 중에서도 원산지표시 의무가 없는 업체들을 노렸다고 합니다. 단속의 사각지대에 있는 100㎡ 미만 요식업체를 대상으로 홍보한 것은 공사 설립 목적을 전면으로 위배한 것이라고 합니다.

농기계조차 푹푹 빠지는 수렁논에서 손모내기에 시달리던 근육들이 놀라 자빠질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농토 빌려 근근이 생계유지해 가는 소작농들, 가뜩이나 수입쌀 때문에 쌀농사를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는 소작농들의 목줄을 조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도대체 농수산물유통공사라는 게 누구를 위한 유통공사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농·축·수산물의 저장·처리 및 가공기술을 개발, 육성함으로써 농어민의 소득을 증진시키기 위해 설립된 정부투자기관'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수입산 밥쌀을 팔아먹는 것이 농민들을 위하는 일이라 믿고 있는 모양입니다. 곧 죽어도 광우병이 우려되는 미국 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이 국민들을 위하는 길이라 믿고 있는 이명박 정부처럼 말입니다.

수입산 밥쌀을 팔아먹게 되면 그만큼 농민들이 고통 받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 농민들이 자신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었나 봅니다. 모양만 농민들을 위한 정부투자기관으로 행세해 왔던 것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농기계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농민들을 위한다는 농기계가 오히려 농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가고 있으니까요.

농민 안중에 없고 자신들 배 불리기만

우리 동네 논 한 마지기, 200평을 기준으로 농기계 사용료를 계산해 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봄에 논 갈아엎는데 5만 원, 모내기하기 전 써레질 하는데 5만 원. 모심는데 3만 원~4만 원 벼 베는데 5만 원. 이를 합산해 보면 20만 원 정도가 들어갑니다.

한 마지기의 벼농사를 짓게 되면 보통 세 가마니하고 반 가마니 정도가 나옵니다. 여기서 소작료 한가마니를 빼면 두 가마니 반 정도의 소득을 올리는 셈이지요.

80㎏ 한 가마니 가격을 15만 원 정도 잡으면 한 마지기에 대략 37만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리게 됩니다. 앞서 말했듯이 여기서 농기계 사용료 20만 원 정도를 빼고 쌀 직불금 4만 원 정도(쌀값 15만 원을 기준으로 가마당 1만1천 원 정도)를 합치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21만 원 정도. 열 마지기 농사를 지었다 하면 대략 210만 원(농약이나 비료를 기본적으로 정부에서 제공했을 경우). 결론적으로 열 마지기, 2천 평을 소작하여 올리는 소득은 210만 원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결국 소작농들의 소득 대부분을 농기계가 다 잡아 먹는 셈입니다. 마지기당 37만 원 정도의 소득에 농기계 사용료가 20만 원이나 들어가니까요. 수입 밥쌀을 팔아먹겠다고 열을 올렸던 농수산물유통공사처럼 결국 농민들을 위한 농기계가 농민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꼴인 것이지요. 농기계가 있으니까 힘들이지 않고 농사지을 수 있지 않나? 농기계의 고마움을 알라? 아마 '2MB'라면 그런 식으로 말할지도 모릅니다.

농민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것이 어디 농수산물유통공사공사뿐이겠습니까? 며칠 전 KBS 탐사 보도 프로그램 <쌈>을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수신고 280조의 그늘, 1부 무전무협(無錢無協)'이라 제목으로 지난달 30일에 방영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농사 짓느라 빌린 농협 빚 6백만 원을 갚지 못해 농지 9백 평을 모두 팔아넘기고 그것도 부족해 2백만 원에 못 미치는 잔금을 갚지 못해 끝내 집까지 경매로 넘겨야 했던 농민. 결국 그 농민은 집까지 잃고 공공근로 사업으로 하루 일당 4만5천 원을 벌어가며 자녀 대학 등록금 걱정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배 불리기에 급급한 농협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래도 '몰상식'은 대통령을 따라잡지 못한다

농협이나 농수산물유통공사의 몰상식한 작태는 이명박 대통령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내 머리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벌여오고 있으니까요. 소작농들의 등골 빼 먹는 '쌀 직불금 부정 수령 사건' 당시 그 이름이 오르내렸던 천성관을 검찰총장에 앉히려 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 이유가 참으로 가관입니다. 검찰이 얼마나 철면피인지, 얼마나 파렴치 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던 '용산 참사'와 MBC <PD수첩> 사건을 잘 처리했다는 이유 때문이랍니다.

지난 6월 30일자 YTN <돌발영상> '살기 좋은 세상'편에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재래시장을 둘러보던 그는 대형 마트가 재래시장의 물건 가격보다 더 싸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고 장사 안 돼 힘들어 죽겠다며 하소연하는 영세 상인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면 장사 잘 될 것이라고 목에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예전에는 장사 잘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끽소리도 못하고 망했다. 지금은 이렇게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으니 세상 좋아지지 않았냐"고 선심 쓰듯 내뱉고 있습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 수준이 이처럼 몰상식한데,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수입 밥쌀 팔아먹기에 열을 올리고 농협이 농민들 챙기기보다는 제 살 찌우는 데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몰상식한 것이 이들에게는 상식이니까요.

말이 통하지 않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몰상식한 세상,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모든 분야가 몰상식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 뒷골목 양아치들보다도 더 추잡하게 '생각 있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세상, 극단적인 현실은 비극적인 역사로 치닫기 마련입니다. 종국에 가서는 피의 역사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근대사의 큰 흐름이 그래왔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1919년 3․1운동. 1950년 민족전쟁.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랬습니다.

외세와 독재의 탄압 속에서의 항쟁과 비극은 대략 30년 주기로 찾아오고 있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비극적인 역사 앞에는 늘 숨통 막히는 현실이 있어 왔습니다. 평화로운 촛불은 탄압 당하고, 가스총 들고 설쳐대는 똥오줌조차 가리지 못하는 막가파들은 자금 지원까지 받고 있는 현실, 돈과 권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파시즘이 대가리를 쳐들고 있는 이 숨 막히는 2009년 현재의 대한민국. 우리는 1980년, 그 30년 후인 2010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피의 역사는 더 이상 반복 되서는 안 될 것입니다.

땡볕을 피해 아침저녁으로 허리 굽혀 손모내기를 다 끝냈습니다. 한 마지기도 채 안 되는 면적이었지만 혼자서 하려니 힘이 곱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흘 걸린 모내기에 두 사람, 세 사람의 일손이 보태졌다면 반나절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게 되면 큰 힘들이지 않고 빨리 끝낼 수 있었습니다. 숨통 막히는 현실도 마찬가지겠지요.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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