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여행하라>, 이매진피스 임영신, 이혜영 지음/소나무

지난 50년, 세계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는 동안 세계 관광인구는 36배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WTO(World Tourism Organization)에 의하면 1950년, 2천 5백만 명이었던 세계 관광인구는 2007년엔 9억 3백만 명을 넘어섰다. 관광산업은 세계 GDP의 10.3%를 차지하며, 세계 노동의 8.7%를 고용하는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해 있다.

▲사진/이매진피스
하지만 만약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여전히 세상을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은 단 14명뿐이다.
그중 8명은 유럽인이고, 2.8명은 아시아와 호주사람이고
나머지 2.2명은 북미(미국, 캐나다)인이며
마지막 남은 1명이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그리고 중동이라는 거대한 세 지역을 모두 합한 한 사람이다.
만약 한 대륙의 인구가 100명이라면
서유럽인 69명이 여행하는 동안
아프리카 사람은 1~2명이 여행하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지구촌을 살아가는 나머지 86명의 사람에게
여행이란 평생을 두고 갈망하는
이룰 수 없는 소원 같은 것이었다.

관광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득을 증대한다
그것이 평범한 여행자들이 관광산업에 관해 알고 있는 최소한의 상식이었다. 2007년 세계 관광인구는 9억 명을 돌파하며 세계 관광수입은 8천 5백 6십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발리의 아름다운 리조트 바깥에서 만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여전히 너무 가난했고, 보라카이의 아름다운 호텔 바깥을 나서 시내로 들어서면 구걸하는 아이들을 피할 길이 없었다.

그곳에 머무는 여행자들이 하루에 쓰는 돈은 그곳 사람들 한 달 월급에 달한다고 하건만, 그토록 많은 여행자들이 발리로, 보라카이로, 몰디브로 여행을 떠나건만, 왜 여전히 여행지에서 만나는 현지 사람들은 가난한 것일까? 우리가 여행을 하며 쓰는 그 어마어마한 돈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시작한 것이 ‘공정여행’이었다. 물음을 가지고 길을 떠나자 세상은 여행의 그늘을 너무 선명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가 쓰는 돈이 100만원이라면
그중 40만 원은 비행기에, 그 중 20만 원은 여행사에
나머지 20만 원은 우리가 머무는 호텔에서 먹고 마시고 쓰는
수입품을 들여오기 위해 다시 1세계로 흘러가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머무는 숙소가 다국적 호텔이나 리조트라면
우리의 여행이 떠나기 전 모든 비용을 여행사에 지불한 패키지여행이라면
현지에 남는 돈은 더욱 작고 미미해지는 것이다.
투어리즘 컨선은 우리가 아시아나 아프리카, 남미를 여행할 때
여행에서 쓰는 돈 중 70~85%는
외국인 소유 호텔이나 관광 관련 회사들에 의해 해외로 빠져나가고
현지의 공동체에 돌아가는 것은 단지 1~2% 뿐이라 했다.

▲ 2007 티벳장애인학교(사진/이매진피스)

한 사람의 여행자가 여행할 때
하루 평균 3.5킬로그램의 쓰레기를 남기고,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주민 30명이 쓰는 전기를 소비하고 있고, 고급 호텔의 객실 하나에서는 평균 1.5톤의 물이 사용된다. 골프장 하나에서는 무려 다섯 개 마을의 농사와 생활에 필요한 물이 사용되고 있다.

한 가족이 하루를 살기 위해 20리터의 물을 1킬로미터 이내에서 구할 수 없는 지역에서도 하루 한두 시간밖에 전기를 쓸 수 없는 지역에서도 우리는 수영을 하고 에어컨을 사용하고 골프를 친다. 저 높은 히말라야에선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여행자 한 사람의 더운물 샤워를 위해 세 그루의 나무가 사라져가고, 한 사람의 목마름을 적시기 위해 72개의 플라스틱 물병이 고스란히 쓰레기로 남겨진다.

때로 우리의 편안한 여행을 위해
아름다운 호텔 뒷켠 세탁실에선 점심시간 10분을 빼면 하루 종일 서서 침대 시트를 다림질을 해야 하는 여성들의 노동이 존재하고, 우리들의 편안한 트레킹을 위해 히말라야의 포터들은 하루 3~4달러의 일당을 받으며 자신의 몸무게를 넘어서는 짐을 지고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기도 하다.

때로 우리의 아름답고 고요한 바닷가를 위해
리조트들은 그 바다의 주인이었던 현지인의 출입을 금했고, 리조트에 마을을 내어준 가난한 어부들이 그들의 어장이었던 연안에서 고기를 잡다가 바다의 풍경을 어지럽히고 사유지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잡혀가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선 점점 늘어나는 사파리 관광객을 위해 초원의 주인이었던 소수부족들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사냥 터전과 마을, 우물을 모두 빼앗긴 채 강제이주를 당하는 일이 펼쳐지기도 했다.
관광개발업자들은 약속한 일자리의 창출과 소득의 증대를 위해 마을을, 밭을, 집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부족의 성스러운 제의를 호텔의 쇼로 올릴 기회를, 호텔의 청소부가 될 기회를, 어린 딸들을 관광객을 위해 일하게 할 기회들을 제공해 주곤 했다.

▲ 사진/이매진피스
2007년 12월, 공정여행축제란 이름으로
다른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 모여
길 위에서 마주했던 여행의 불편한 진실을
토로하던 저녁, 누군가 말했다.
만약, 우리가 깃든 호텔이
누군가의 집을 빼앗은 것이었다면
우리가 수영하는 수영장의 물이
누군가의 마실 물이었다면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숲이 파괴되고
동물이 학대당한다면
우리에겐 새로운 여행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그 말에 저마다 마음 속에 품고 있던 희망의
기억들을
하나 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필리핀 여성들과 웃고 노래하며
대안생리대 만드는 법을 나눈 만효,
쿠바에서 쿠바 사람의 눈으로 그들의 문화를 보고
누리는 법을 배운 활,
카스트와 성차별의 네팔 문화를 뚫고 여성들을 등반 가이드로 훈련시키는
쓰리 시스터즈의 가이드와 안나푸르나에 올랐던 완철과 양희창 선생님,
빈곤 속에서도 움트는 아시아의 희망을 찾아 길을 나섰던 이경과 세운,
평화의 배 피스보트를 타고 세계의 진실을 만나는 지구일주를 한 솔가,
제주에서 민다나오까지 아이들의 마음을 이어 평화도서관을 만들어 가는 포형,
필리핀, 중국, 티베트, 네팔… 국경을 넘고 경계를 넘는 긴 여행을 통해
저마다의 물음과 배움을 가지고 돌아온 제천간디학교 친구들.

그렇듯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새로운 여행자들은 길 위에서 만났던 희망의 그물코들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새로운 지도 한 장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커다란 지도 위에는 거기 모인 이들이 걸어왔던 새로운 길과 그 길 위에서 마주했던 희망의 풍경들이 하나 둘 나붙기 시작했다.

만약 당신이
여행은 ‘떠남’이 아니라 ‘만남’임을
‘어디로’가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임을
‘소비’가 아니라 ‘관계’임을 믿는다면 
<희망을 여행하라>, 이 책은 당신이 떠날
새로운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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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신(<희망을 여행하라>저자, 이매진피스 공동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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