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 핵시설 문제.... 궁극적 탈핵 운동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오는 7월 핵재처리실험(파이로프로세싱)을 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핵시설 밀집지역인 대전 유성구와 세종시, 충남북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안전성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고준위 핵폐기물)를 건식으로 처리하는 기술로, 사용후핵연료에서 고방사능 물질인 세슘과 스트론튬, 초우라늄 물질인 플루토늄 등을 분리해 고속로에서 태워 에너지를 얻는 방법이다. 정부나 원자력연구원은 이 방법이 기존의 습식 재처리 기술에 비해 효율적이고 안전하며, 핵폐기물의 부피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검증된 바가 없다.

한국은 미국과의 원자력협정으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가 금지돼 있었는데 지난 2015년 협정을 개정하면서 건식재처리 방식을 한미가 공동연구하는 방식으로 재처리의 길을 부분적으로 확보했다.

무엇보다 분리한 세슘과 스트론튬은 ‘죽음의 재’로 불리는데 이를 보관하는 문제도 쉽지 않다. 또 정부와 원자력연구원은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에 필요한 고속로까지 구축하는 비용을 약 3조 6000억 원으로 예상하지만, 재미 핵물리학자 강정민 박사에 따르면 일본, 프랑스 등을 보면, 실 건설 비용만 3조 원 대를 훨씬 넘을 것이며, 이는 시설 유지관리비, 폐쇄와 제염 해체비 등은 고려하지도 않은 것이라고 지적한다.

▲ 핵발전/시설 지역별 방사성폐기물 저장량. 발생량과 마찬가지로 대전 지역이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자료 출처 =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지역민들의 요구가 높아지자 대전시와 유성구, 원자력연구원은 5월 22일, ‘원자력 안전 협약’을 체결하고 “원자력연구원 활동에 대한 정보 제공, 안전대책 사전 협의, 원자력안전대책위원회 구성”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주민과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차갑다.

대전과 세종시, 충남북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인 ‘핵재처리실험저지 30킬로미터연대’ 이경자 집행위원장은 24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이번 협약은 “때늦은 요식행위로 여론이 악화되니 뭐라도 하자는 의미밖에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요구는 일본처럼 지역에 핵시설이 들어올 때, 주민들이 반대하는 경우 지자체장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현재 상황에서 대전시나 유성구가 요구해야 할 것은, “핵재처리 실험의 명백한 중단과 하나로 원자로 폐로, 그리고 이전에 있었던 의혹과 불법에 대한 전면적 감사 요구”라고 말했다.

▲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 공개된 핵발전/시설 지역 방사성폐기물 발생량. 핵시설 규모와 용량과 관계 없이 대전 지역이 두 번째로 높다. (자료 출처 =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자력연구원, 은폐와 사실 왜곡 등 핵발전 문제의 총체
대전 유성구는 사실상 핵발전 지역에 준하는 도시

대전 유성구는 사실상 핵시설 밀집 지역이다. 하나로 원자로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을 비롯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방사성폐기물을 관리하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핵연료봉을 생산하는 한전원자력연료,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등이 몰려 있다. 또 현재 중저준위 핵폐기물 2만 9900드럼과 사용후 핵연료 4.2톤 등 전국에서 방사성 핵폐기물이 두 번째로 많이 보관돼 있다.

수시로 중저준위 핵폐기물이 유성구 내로 들어오고 있지만 원자력연구원 등은 반입 내용도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에서야 26년간 고준위 방사성 핵폐기물 3.4톤이 몰래 반입됐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올해 2월 대전시는 원자력연구원이 같은 달 월성핵발전소에서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83드럼을 두 차례에 걸쳐 반입했다고 밝혔다.

핵시설 건물 안전성 문제도 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과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원자력연구원 내진 대상 건물 52개 가운데 28개에 내진 설계가 적용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사실이 드러난 것도 20년 만에 처음이다.

하나로 원자로 내진 설계 또한 기준치인 6.5리히터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하나로 원자로는 2000년 이후 10여 건의 사고가 났으며, 2011년에는 방사능 누출 1급인 백색 경보도 발령됐다.

“핵시설 위험으로부터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현재 비상구역 안에 살고 있는데, 알면 알수록 여기서 계속 사는 것이 맞는지 의문입니다. 핵시설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전문가이고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주민들에게 ‘오버하지 말라’는 태도에요.”(대전 유성구 주민 안옥례 씨)

▲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홈페이지에 전국 핵발전 시설과 관련된 자료를 공개한다. (이미지 출처 =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홈페이지)

더 큰 문제는 이같은 핵시설에 사고가 났을 때, 주민들을 보호할 대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원자력연구원 기준 반경 900미터 이내에는 7개의 초중고교와 아파트 단지가 있고 방사성 폐기물 보관지역 3킬로미터 안에도 초등학교와 주거지가 있다. 방사선 비상계획구역(EPZ)인 반경 1.5킬로미터 내 살고 있는 주민 수는 약 3만 5000명이다.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은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 2015년 5월 기존 8-10킬로미터에서 20-30킬로미터로 확대했다. 대전은 800미터에서 1.5킬로미터로 확대됐다. 그러나 그 뒤 구체적 방재 대책은 그대로여서 현재 대피소나 방재 시설 등은 여전히 800미터 지점에 있다.

주민들은 원자력연구원을 비롯한 핵시설은 내부에서 이뤄지고 있는 실험이나 방사능 물질 유입량 등을 지자체에조차 알리지 않고, 주민들이 자체 감시활동을 통해 알아낸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에서도 핵시설 관계자들은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비판한다.

일례로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핵연료 실험 과정에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위험은 전혀 없다고 주장해 왔지만, 2016년 10월 추혜선 의원에 따르면, 원자력연구원이 하나로 원자로 실험 과정과 시설 및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 등을 통해 유독한 방사성 물질인 크립톤과 세슘, 삼중수소와 같은 방사성 물질을 계속 방출시켰다.

원자력연구원은 특히 세슘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조사 내용에 따르면 2011년에서 2015년까지 5년간 하나로 원자로와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에서 방출된 세슘은 20만 베크렐이었다. 크립톤은 약 14조 베크렐, 삼중수소는 약 20조 베크렐이다.

방사능 물질은 감각으로 느낄 수 없고, 유해 여부를 직접 실험할 수도 없기 때문에 관련 기관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민들이 지금껏 확인한 것은 시설 운영, 사고 대책 모든 것이 허술하다는 사실이다. 핵시설 사고와 방사성 물질 유출에 대해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보관된 방사성 폐기물. 몇십 년간 발생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보관소에는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미지 출처 = 뉴스타파)

안옥례 씨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이 1.5킬로미터로 확대됐을 때도 핵시설 관계자들은 주민들 앞에서 “하나로 원자로 때문에 거리를 늘리는 것은 너무한 것이다. (용량과 규모에 비해)괜히 늘렸다”는 말을 했다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정보를 찾아보면, 방사능 배출량은 모두 기준치 이하로 나오지만, 대전은 하나로 원자로가 멈췄을 때도 배출치가 전국 2-3위를 할 때가 있다. 핵시설 규모와 용량만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합동/연합 방재 훈련에 참관했을 때 목격한 일도 설명했다. 주민들이 유성구청과 대전시청, 원자력안전기술원, 방재센터 등을 나눠 방문해 참관할 당시, 백색경보 설정에도 패스워드가 맞지 않아 시스템 접속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을 비롯해 심지어 자고 있는 직원도 있었다면서, “제대로 방재 훈련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실험 횟수, 핵연료 이동 등 사소한 것부터 사고와 같은 큰 일까지 한번도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방사능에 오염된 고철을 고물상에 팔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마당이다. 이런 상황에 파이로프로세싱을 한다니 1도 못하는 이들이 1000을 감당하겠다는 말이다. 목숨 걸고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핵재처리실험저지 30킬로미터연대’ 이경자 집행위원장은 대전은 핵발전소 지역에 준하는 규정이 필요한 도시고 그에 맞는 법적 제도적 정비와 지원, 민간의 안전 감시 활동, 감시 기구와 조례, 지자체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핵산업, 핵시설 관련법의 허점이 너무 많고 무엇보다 지자체의 권한이 없다며, “핵산업계의 전횡에 대한 지자체 권한과 거부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쉬운 방법은 핵발전을 멈추겠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회 전체가 ‘탈핵’을 결정하지 않는다면 핵시설은 대전을 떠난다고 해도 어디론가 갈 것이고 그것은 우리 운동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유성 핵문제는 대전이나 인근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이유로 대전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는 지역 문제를 공유하면서 동시에 탈핵을 위한 운동에 연대하고 있다”고 했다.

2015년 유성구 원자력안전조례제정 운동부터 현재 30킬로미터연대 활동까지 참여하고 있는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박상병 신부는 “조금만 더 상식적이기를 바란다. 핵을 둘러싼 카르텔이 여러 형태지만 그 가운데 윤리의식이 결여됐다는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며, “근본적으로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이들의 직업, 연구 윤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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