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 언급부터 사제 뒷조사 지시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공개되면서, 청와대가 종교계까지 사찰한 정황이 밝혀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전국언론노조,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은 12월 8일 이같은 내용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광범위한 불법 사찰, 압력과 길들이기에 대해 비판했다.

비망록은 2014년 6월부터 이듬해 2015년 1월까지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 근무 당시 작성한 회의록으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내용이 주로 적혀 있다.

이 가운데 종교계 관련 내용은 주로 천주교와 불교에 대한 것이며, 사제 사찰 지시, 염수정 추기경과 2014년 교황 방한에 대한 언급 등이 있다.

7월 23일,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선처 탄원 – 염수정, 자승, 김희중 대주교, 김영주 목사”
8월 7일, “신부-뒷조사”
8월 27일, “염 추기경 발언, 같은 자세를 타 종교지도자도 취하도록 노력”
9월 14일, “신부, 전교조 원칙대로 처리 – 뚜벅뚜벅 조용히”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2014년 8월 7일 내용 가운데 “신부-뒷조사. 경찰, 국정원 팀 구성 -> 6국 국장급”이라는 메모다.

▲ "신부-뒷조사"라고 쓰인 비망록 일부. 민변과 인권단체 등은 청와대가 '뒷조사'라고 쓴 것에 대해 위법적 사찰이라는 점을 인식한 것이며 충격적이라고 했다. (자료 제공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변 측은 청와대가 천주교 사제에 대한 ‘뒷조사’를 경찰과 국정원 팀에 지시한 것으로 추정한다며, “청와대가 ‘뒷조사’라는 표현을 쓴 것은 충격적이며, 스스로도 위법적인 사찰이라는 점을 인식한 것은 직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또 “범죄 혐의가 있다면 수사기관이 수사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는 개인의 약점을 수집해 겁박하려는 시도로 보인다”며, “청와대는 뒷조사를 한 사제가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고 했다.

또 “6급 국장급”에 유의해야 한다며, 다른 메모와 비교해 흐름을 볼 때, 6국 국장은 국정원 추모 국장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며, 추 국장은 국내 정보 수집 담당으로 특히 최순실 관련 정보를 안봉근과 우병우에게 비선 보고했다는 의혹을 받는 당사자라고 설명했다.

비망록에는 작성 시기가 세월호참사 직후인 만큼, 관련 여론에 대한 조작과 단속 움직임이 주로 포착되며, 종교계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김영한 전 수석의 8월 27일 메모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이라는 글자 아래, “염추기경 발언, 같은 자세를 타 종교지도자도 취하도록 노력”이라고 적혀 있다. 

비망록에서 말하는 “염 추기경 발언”은 전날인 8월 26일 염수정 추기경이 기자회견에서 세월호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염 추기경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용하면 안 된다. 정의를 이루는 것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며, (세월호)가족들이 생각하는 대로 이뤄지면 좋겠지만 어느 선에서는 양보해야 서로 뜻이 합쳐진다”고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 2014년 6월에 작성된 국정원 문서에도 가톨릭 교회에 대한 국정 제안이 담겨 있다. (자료 제공 = jtbc)

정부는 교황방한 지원을 통해서도 가톨릭교회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7월 23일 메모에서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관련해 각 종단이 탄원서를 낸 것에 대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선처 탄원 – 염수정, 자승, 김희중 대주교, 김영주 목사”라고 쓴 뒤, “국가전복 기도세력에 대한 선처 탄원은 곤란. 교황 관련 각종 지원에도 불구, 기록으로 남겨야”라고 적혀 있다.

한편, 정부가 교황 방한을 유리하게 이용하고, 여론 조작의 기회로 삼으려고 한 정황은 다른 문건에서도 발견된다.

문건은 지난 11월 16일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으로 2014년 6월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국정원의 대통령 보고서에서 국정원은 “(교황 방한으로)국정 순기능이 기대되나 비판세력 준동이 우려된다”며, “천주교 내 국정협력 분위기 확산 효과 기대되지만 정구사(정의구현전국사제단), 가톨릭행동 등 종교계 비판 세력들이 교황의 제주, 안산 방문 및 쌍용차 해고자 면담 청원활동 전개등 국정 흠집내기에 악용할 것을 기도한다”고 썼다.

또 (이런 세력들이) “교황의 약자 보호, 정치참여 사목지침을 왜곡, 교황 방한을 천주교 비판세력 활동에 정당성 부여 및 염수정 추기경 등 건전인사 위상 약화 기회로 변질 시도한다”고 쓰고, “정구사 등 비판 사제들이 국내 인권문제에 집착하면서 정작 북 주민 인권은 외면하는 행태 부각으로 문제의식 환기 병행한다”는 지침을 마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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