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봉헌된 '불의한 정권의 회개와 민중을 위로하는 시국미사'에서 발표된 성명서 전문이다. 이 미사는 군종교구를 제외한 한국 천주교 전체라 할 수 있는 15개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구현사제단, 한국가톨릭농민회,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가 함께 준비했다.
▲ 10월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봉헌된 시국미사 말미에 서북원 신부(수원교구 가톨릭농민회 담당)가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강한 기자

“회개하여라. 너희의 모든 죄악에서 돌아서라.”(에제키엘 18,30)
- 국민을 죽이고 진실을 은폐하는 대통령은 물러남이 옳습니다.

우리는 작년 11월 14일, 쌀값 21만 원 보장하겠다는 대통령 공약을 지켜 달라고, 식용 쌀 수입하면 농민 다 죽고, 농민과 노동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정부의 대답은 경찰의 물대포 직사였습니다. 우리 농민 백남기 임마누엘 님이 쓰러졌습니다. 우리도 같이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9월 25일, 쓰러졌던 우리 농민 백남기 임마누엘 님은 하느님 품으로 떠나셨습니다. 그때 우리도 같이 죽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317일. 그의 고통은 끝났지만 유족과 우리 사회의 참혹한 현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경찰력으로 국민을 죽였습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청문회에서조차 반성은커녕 국민을 비웃었습니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서 장례도 치르지 못하는데 시신마저 빼앗으려 합니다. 살인을 저지른 이들이 사인규명 운운하며 부검을 하겠다고 우리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모욕하는 패륜입니다.

우리 농민 백남기 님의 죽음을 지켜보며 세월호 참사를 떠올립니다. 비참하게도 두 죽음은 서로 닮아 있습니다. 세월호의 희생자들은 국가가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고, 백남기 농민은 국가가 해서는 안 될 짓을 했기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세월호 선체에는 아직도 9명의 찾지 못한 미수습자들이 있고, 304명을 수장한 침몰의 비밀이 있는데 900여일이 넘는 형극의 시간만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침몰의 진실’을 밝힐 선체인양은 계속 미뤄지고, 특조위의 조사활동은 정부와 새누리당의 집요한 방해와 거부로 강제 종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 활동은 중단될 수는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 3년 8개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질식하였습니다. 99퍼센트의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습니다. 집회, 결사, 시위, 표현의 자유 등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기본권은 말살되었습니다. 선거 개입과 국민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국정원, 스폰서검사 등이 보여 주는 견제 받지 않는 검찰, 국민을 적으로 삼고 살해하는 경찰 등 절제를 잃은 국가 공권력의 폭력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이는 공권력을 정권의 사병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국민 위에 군림하는 박근혜식 공포정치, 독재정치라고 규정합니다.

1대 99의 신분제 사회에서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절망이 우리들의 가슴을 짓누릅니다. 가난은 대물림되고, 무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은 흙 수저와 금 수저로 갈라졌습니다. 저임금과 비정규직은 풀 수 없는 족쇄가 되어 버렸습니다. 무도한 불법 노동개악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물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오직 재벌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비리,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라고 의심하는 최순실과 청와대 권력이 개입된 미르.K재단 사태가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약화되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긴장과 대립을 격화시키고 있습니다. 민족을 멸망으로 이끌 전쟁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주님께서 선택하고 축성한 왕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약한 이들을 보호하고 백성을 위한 정의의 보증인이 되라고 말합니다. 정치권력이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예언자들이 나타나 그릇된 정치권력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정치권력은 공권력을 통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불평등을 없애고 공동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권력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인간의 기본권을 무시하고, 복음의 가르침을 거스르며, 불의를 저지른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르침과 양심에 따라 그 권력에 저항할 의무가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을 죽이지 마십시오.

낙인찍고 편 가르는 혐오와 폭력의 정치를 멈추고 민주주의와 민중의 생존권을 유린하지 마십시오.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세월호 참사, 우병우, 최순실 권력형 비리, 일본군위안부 졸속 합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드배치,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 유전자조작 쌀 재배 시도 등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 하십시오. 그리고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십시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의 권력자들에게 죄를 알려 주고 회개를 권고하는 이유는 ‘악인들도 악에서 돌아서면 구원받는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악인들은 멸망한다.’는 진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의 이런 처절한 기도는 지옥으로 가는 그들을 붙잡는 마지막 노력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멈출 수 없습니다.

2016년 10월 10일
광화문 시국미사 참여자 일동

▲ 10월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봉헌된 시국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이 노래를 부르며 조명을 켠 스마트폰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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