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 신학생들의 농촌 체험기

“아버님, 어머님들이 작물들을 정말 자식처럼 대하시더라고요. 저도 그 마음이 무엇인지 느껴 보고 싶어요.”

긴 폭염으로 달궈진 논. 해는 점점 머리 위로 솟아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비 오듯 하는 오전 11시, 신학생들이 논 주변 풀을 매느라 낫질을 하며 구슬땀을 흘린다. “힘들지 않느냐”는 우문에 한 신학생이 “농부의 마음을 느껴 보고 싶다”고 답한다.

부산교구 소속 신학생 38명이 ‘생태농촌체험’을 시작한 지 3일째인 19일, 이들이 일하고 있는 부산교구 가톨릭농민회 언양분회의 풍경이다.

부산교구 신학생들은 개강을 일주일 앞두고 부산교구 가톨릭농민회 언양과 밀양분회로 농촌활동을 떠났다. 지난해부터 여름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이론과 학문보다는 실천적인 체험 위주의 연수를 시작했고, 이번 농활은 ‘삶의 현장’으로 내딛은 첫발이다.

학기 중에 어디로 체험을 갈 것인지 재학생들에게 물었고, 백남기 농민 사건이나 농촌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신학생들은 농촌활동을 하자는 의견을 냈다. 준비와 기획은 오로지 학생들의 몫. 그러나 동아리 차원에서 몇몇 신학생이 농활을 다녀온 것도 어언 20여 년 전이고 전 학년이 농활을 해 본 경험도 없었다. 막막했지만 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와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아 17일, 38명의 신학생은 언양과 밀양분회로 나뉘어져 생전 처음 겪는 일들을 시작했다.

▲ "농부의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언양분회 논에서 풀매기에 여념이 없는 신학생들. ⓒ정현진 기자

“오뉴월은 농부요 칠팔월은 신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농촌의 7월, 8월은 농부들도 일하기 어려운 시기다. 그럼에도 신학생들은 언양에서는 풀매기와 마을일손돕기, 밀양에서는 감, 사과밭, 두엄만들기 등을 하면서 땅을 향해 몸을 굽히며, ‘생명’은 무엇인가, ‘농촌’이란 무엇인가, 농민의 일과 삶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절박하게 찾았다.

이들이 논밭에서 일만 한 것은 아니다. 고된 노동을 마친 저녁에는 머리를 맞대고 만든 자료집을 들고 학습과 토론을 이어갔다. 이들은 “농민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이른바 먹방과 쿡방 속에 묻혀 버린 농민과 먹을거리의 진실, 오늘날 농촌과 농민의 의미는 무엇인가, 소득격차를 비롯한 농촌의 현 상황, 함께 살아간다는 것과 농촌의 미래” 등에 대해 읽고 나눴다. 그러는 사이, 이들은 “미래 사제로서 나는 농촌과 농민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에도 깊이 빠져들었다.

생활도 철저히 관리했다. 생활용품도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고 음식은 절대로 버리지 않으며,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고 예의를 잃지 않으며 즐겁게 일한다는 몇 가지 수칙도 정했다. 기도와 미사 때는 ‘농민을 위한 기도’를 빼놓지 않는다.

“본당사목만 생각했는데, ‘사목’의 대상과 현장이 얼마나 넓어질 수 있는지 알았어요.”

3박4일. 농민과 농촌을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이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화두,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찾아낸 기쁨을 나눴다. 이들은 농촌 체험을 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던 사목의 방향과 대상이 얼마나 좁은 시야에 갇혀 있었는지 알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교구 신학생 대표로 농활을 기획한 이동헌 신학생(대학원 2학년)은 “특히 고령화된 농촌 현실에 대해서 사목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했다”면서, “다른 사목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전에는 본당사목이 전부였는데, 농촌에도 사제의 역할이 필요하고 그 부분을 채울 수 있고,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농활을 통해서 아주 조금 감을 잡았다면, 이전에는 글이나 말로 접했던 ‘가난한 이들’의 구체적인 삶이 어떠한지 느꼈고, 어떻게 만나야 할지 느끼게 된 것”이라면서, “특히 농촌 고령화, 도시 실업 문제와 관련해 어떻게 하면 농촌에서도 도시와 같은 희망을 일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잠깐의 휴식시간, 웃음이 환하다. ⓒ정현진 기자

유상우 부제는 “다양한 현장에서 살아가는 현장과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안다는 것”에 대해서,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 특히 실천신학은 관찰과 판단, 실천의 흐름이 필요하다. 관찰과 판단의 준거인 신학과 교의를 배웠다면 실천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번 농활로 사목에 대한 고민의 지평을 넓혔다는 것과 그 첫 현장으로 농촌을 선택했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유 부제는 "구체적인 사제의 삶을 준비하면서 많은 선배들의 조언을 듣는다. 그중에 많은 선배들이 생소한 특수사목 분야에 갔을 때 막막함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그것은 그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우리가 이 농활을 하면서 적어도 특수사목의 현장에 왔을 때, 모른다고 하지 않고, 그곳에 사는 이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겠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계시"라는 구절을 들면서,  "농촌을 살리는 것은 하느님 창조사업에 협력하고 선하심을 드러내는 일이며, 우리가 보고 배운 것을 실천하고 세상을 더욱 선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농민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신학생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형재애를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부제반이 맡은 일은 후배들과 같이 일하면서도 아침과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이동할 때, 운전을 하는 일이었다. 그는, 틀이 정해진 신학교 생활을 벗어나, 함께 땀흘리고, 기쁨과 슬픔을 같이 느끼고 고민하면서, 서로를 채워주고 공감할 수 있었다면서, “농민과 맺는 관계와 더불어 신학생들이 공감하고 예비 사제로서 신원의식을 다지는 것도 큰 소득”이라고 했다.

▲ 흙 묻은 옷차림 그대로 바치는 기도에는 어떤 바람이 담겨 있을까. ⓒ정현진 기자

“‘밀과 가라지의 비유’가 이제야 생생합니다”

농활이 끝나기 전날인 19일 저녁은 그동안 애쓴 모든 농활대원과 마을 주민, 우리농 관계자들이 함께 마을 잔치를 벌였다. 이들은 지난 3일간 마음속에 품었던 내용들을 동료, 선후배들과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한 신학생은 앞으로 농촌의 현실을 더 알기 위해서 어떤 책을 더 봐야 하냐며 묻기도 하고, 또 어떤 신학생은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 모두 귀농을 할 수도 없는데, 도시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실컷 몸으로 체험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겪은 생명농업이 농촌 현실의 다가 아니다. 농사 이후에 농산물이 유통되는 과정도 고민해야 한다”는 선배 부제의 말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4학년 김태웅 신학생은 멀리서 보면 아름다웠던 풍경 안으로 들어오자, 간단하고 작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논의 벼와 피를 구분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는데, 그 작업을 통해서 밀과 가라지의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보다 정확하게 알게 됐다”면서 웃었다.

그는, “우리는 예수님을 예수님일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이고, 타인과 가까우면서도 상처 주지 않아야 한다. 그런 탤런트를 살아갈 수 있는 자리가 무엇인지 알았다”면서, “앞으로 이 경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가 당연시했던 미사, 쌀, 먹거리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 하느님에게서 왔고, 모두 생명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 언양, 밀양분회 농민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정현진 기자

“너 정말 농민을 사랑했느냐” 라는 하느님의 물음

“우리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많은 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농민을 위한 기도를 드리기도 했지요. 농촌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이곳에서 느끼는 것은 그 사랑이 얼마나 추상적이었는가 입니다. 이번 농활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있다면,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할 이가 있는 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구체적이고, 농활 후에 우리는 우리가 만난 농민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구체적으로 머리에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김인한 신부 미사 강론)

부산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장 김인한 신부는 신학생들이 스스로 농활을 생각하고 준비한 것이 무척 대견하다면서, 선배 사제들도 본받아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농활이 “농활 한번 해 봤다는 알리바이”가 되지 않기를, 농민과 농촌을 위하자는 구호에 머무는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가난한 이들, 농촌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자기 문제로 만들어야 한다. 이 경험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보다 예민하고 구체적인 성찰을 시작하는 작은 트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농활을 시작하면서 농민들에게 되도록 많은 일거리를 달라고 부탁했다는 김 신부는, 어느 부제가 농민주일 강론을 하게 됐는데, 나조차도 모르는 농촌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신학생들은 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폐쇄적이고 학문적, 이론적 차원에 머물기 쉽다. 그러나 이 농활을 통해 ‘나에게 농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만들고 쉽게 지나칠 수 없는 현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농촌 체험과 같은 활동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함께 농활을 진행한 언양분회 방우일 회장(프란치스코)은 “그 어느 농활대보다 성실하게 일해 줬다”고 고마워하면서, “생명농업은 지금까지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어렵게 이어오고 있지만, 농활에 참여한 신학생들은 최소한 유기농을 폄하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모쪼록 생명농과 농업에 대해 잘 알고, 신자들에게도 잘 알려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특강 강사로 초대된 마산교구 가농 열매지기분회 김은실 씨는 신학생들에게 “농업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되, 그 화두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면서, “농활을 통해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앞으로 무엇을 봐야 할지 생각했다면, 충분히 변할 것이다. 사제가 될 여러분은 열매인 동시에 씨앗”이라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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