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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과 문정현, 비정규노동자 보금자리 위해 나서‘꿀잠’ 건립 위한 “두 어른” 전시회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을 짓기 위해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과 문정현 신부가 나섰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쉼터, ‘꿀잠’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이자 사회적 약자를 위한 투쟁 현장에 평생을 바친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84)과 문정현 신부(75)가 각각 붓글씨와 나무판에 글을 새긴 작품을 내놨다. 7월 5일부터 열리는 “두 어른” 전시회를 앞두고 28일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집 짓는 데 보태자 해서 나서긴 했는데, 좀 멋쩍다.” (백기완 소장)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돈 주고 판다는 건 상상도 안 했다. 시간을 죽이기 위한 내 일거리다.” (문정현 신부)

백기완 소장과 문정현 신부는 자신의 작품을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도 부끄럽고, 전시회를 여는 게 멋쩍지만, 도와 달라는 이들의 부탁을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 백기완 소장은 한 달 동안 붓글씨에 매달렸고, 문정현 신부는 10여 년간 꾸준히 나무에 글씨를 새긴 작품을 비정규 노동자를 위해 내놓았다.

   
▲ 치욕, 문정현 - 강정에서 경찰과 대치한 뒤 한 움큼 뽑힌 자신의 수염을 보고 판에 새겼다. (사진 제공 = '꿀잠' 건립추진위원회)

백 소장의 작품 중에는 함축적 의미가 담긴 글귀가 많다. 그는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로 “역사 진보 그 예술에 취할 줄 모르는 놈들아 술잔을 놓아라”를 꼽았다.

두 사람 공동 작품도 3점 있다. 백기완 소장의 붓글씨를 문정현 신부가 고스란히 나무판에 옮겼다. 문 신부는 “재밌었다. 칼이 들어갈 곳이 많았다. 세밀하게 파려니 힘이 들면서도 글귀를 생각하게 됐다”고 백 소장의 작품을 판에 새긴 소감을 말했다.

“천년을 실패한 도둑”도 공동 작품 중 하나다. 이 글귀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문 신부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백 선생님이 양반 계급과 일본인들에게 빌붙어 산 놈들을 디게 싫어한다. 그래서 이들의 후예가 떠올랐다. 지금도 그런 도둑놈이 많다. 어쨌든 이들은 도둑놈이니 결국 실패한 도적이 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며 “시구는 읽는 사람 마음대로 이해하는 게 아니냐”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 천년을 실패한 도둑, 백기완 (사진 제공 = '꿀잠' 건립추진위원회)

문정현 신부가 새김판(서각- 백기완 소장과 문정현 신부는 서각이라는 한자말을 쓰지 말고 한글 새김판을 써 달라고 기자들에게 요청했다)을 시작한 것은 투쟁의 현장에서 느낀 분노, 슬픔과 관련이 깊다. 그는 대추리 주민들이 터전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고 속이 상해 견딜 수 없었고, 용산참사를 보고 분을 참을 참지 못해 지리산 자락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새김판 재주꾼을 만나 4박5일간 배웠고, “그 연습을 하는 동안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버렸다.”

문 신부는 전쟁 통에 태어나 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해 붓글씨를 배워본 적이 없어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10번 쓰면 10번 다 내 글씨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더라.”

제주도 강정에서 5년 넘게 지내 온 문 신부의 새김판 작업장은 해군기지 건설 공사장 앞 천막이다. 투쟁의 한복판에서 그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붓을 들고 판에 올려서 파고 팠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것이 일상인 사제는 주로 성경 구절을 많이 팠다. 그래서 더욱 돈을 받고 팔 수 없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얼마냐고 묻는 이에게 “하느님 말씀을 어떻게 돈을 주고 파냐”고 되묻고는 욕심내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곤 했다.

   
▲ 새김판을 하다가 손가락이 잘린 일을 설명하는 문정현 신부 ⓒ배선영 기자

문 신부는 작업 중에 손가락이 잘리기도 했다. 그는 잘린 손가락이 “팔딱팔딱 뛰더라”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접합해 손가락은 제자리에 있다. 그는 “지금은 파는 데 선수다. 작품을 구상하는 것은 잘 못하지만, 열성적으로 팠다”며 “새김판의 전문가가 되고픈 마음은 없지만 앞으로도 마음에 닿는 글귀를 계속 파겠다”고 말했다.

기자간담회에 함께한 꿀잠 집행위원이자 기륭전자 분회장인 유흥희 씨는 비정규노동자의 집이 왜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10년간의 기륭전자 투쟁을 돌아봤다. 그는 고공, 천막, 오체투지, 삼보일배 등 안 해 본 방식이 없는데, 이런 일은 특히 중소영세사업장에서 늘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흥희 분회장은 이렇게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투쟁 중에 잠시라도 쉴 수 있고, 옷도 빨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실제로 꿀잠을 지으려고 진행하다 보니 엄청난 돈이 필요해 “부끄럽지만 두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 서로의 작품을 들고있는 백기완 소장과 문정현 신부 ⓒ배선영 기자

백기완 소장은 1964년 한일협정반대운동에 함께 했고, 1976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1979년 계엄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다. 그의 시 “묏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의 일부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부분은 님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가 됐다.

문정현 신부는 1976년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3.1구국선언으로 감옥에 갇혔다. 대추리, 용산, 강정 등 고통의 현장과 함께 하고 있다.

“두 어른” 전시회는 7월 5일부터 7월 17일까지 서울 종로에 있는 ‘사진위주 류가헌’ 갤러리에서 진행되며, 백기완 소장의 붓글씨 36점과 문정현 신부의 새김판 77점이 선보인다.

꿀잠은 오는 8월 중에 서울 중심가에 20인까지 머물 수 있는 단독주택을 사는 것을 목표로 기금을 마련 중이다. 예수회 조현철 신부도 이사와 공동운영위원장으로 참여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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