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어느날 이웃 후배가 물어왔습니다. 부제가 할 수 있는 일, 즉 부제의 역할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입니다. 저는 참고 자료를 뒤져보기에 앞서, 경험적으로 제가 부제 때 무엇을 해보았는지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미사 중에 복음을 낭독해 보았고, 강론을 해봤으며, 성체를 분배하였습니다. 또, 엘루아라는 아기에게 세례를 준 적이 있습니다. 부제로 있었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 제가 실제로 경험한 것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부제는 제가 경험했던 일들에 덧붙여 더 많은 일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본당을 운영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며, 사제를 보좌하는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본당 사제의 위임을 받아 혼배성사를 집전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부제가 그 역할을 잘 드러내 보이는 때는 뭐니뭐니 해도 미사 전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본당에서 부제는 달마티카(dalmatica)라는 멋진 전례복장을 하고(하지만 달마티카를 꼭 입는 것은 아닙니다. 없을 때는, 약식 제의인 영대를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 쪽으로 걸칩니다.) 미사 중에 앞서 말씀드린 여러 역할을 수행합니다.

아마도 역할 중에 가장 떨리면서도 멋진 것은 부활성야 미사에서 부활 찬송 "용약하라"(Exsultet)를 부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부제로 지낸 기간이 짧았기에 부활 찬송은 못 불러봤습니다. 나중에 사제품을 받고 공동체에서 해본 적이 있는데, 형제들이 저 때문에 웃음을 참느라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시다시피, 부제는 부제품을 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과거에 차부제(次副祭)가 있던 시절에는 사제와 차부제 사이에 위치했습니다. 차부제가 없어진 오늘날은 보통, 사제품을 받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기교회에서는, 부제가 교회공동체의 실제적인 일을 담당하는 중요한 보조자였습니다. 부제는 사도들(오늘날의 주교들)이 기도와 말씀의 봉사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공동체의 식탁 봉사를 하도록 뽑힌 이들이었습니다(사도 6,1-7 참조). 사도들은 일곱 명의 봉사자를 뽑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하여 부제로 임명하였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교회 초기에는 부제가 주교 아래서 다양하고 광범위한 일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 최초의 순교자 성 스테파노도 부제였다. '성 스테파노', 조토 디본도네, 1320-1325. (이미지 출처 = wikiart.org)
말씀의 전례 중 서간과 복음서를 읽고, 신도의 봉헌 예물을 거두며, 기증자의 이름을 판에 적어 미사 중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주교를 도와 성체를 나누고, 성체를 병자의 집에 전달하며, 기도를 선창하고, 주교의 허가를 받아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도들이 처음에 부제를 일곱 명 뽑았듯이, 그 뒤에도 부제의 수는 교구마다 일곱 명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전통의 흔적은 로마에 남아 있는데, 로마에는 일곱 명의 부추기경이 있습니다. 중세를 거치면서, 부제의 역할이 초기교회에 비해 미미해졌으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사제직을 준비하는 일시적 부제뿐 아니라 초대 교회의 임무를 염두에 둔 종신부제 제도가 마련되었습니다(가톨릭 대사전 참조).

교회사에서 빛나는 부제들은, 최초의 순교자 스테파노가 있고,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했던 라우렌시오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제의 역할이 축소되었던 중세시기에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도 부제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부제였다는 사실이 더 의미 있어 보이는 것은, 사제품을 받기 위한 일시적인 부제들만 있었던 당시에 봉사자 역할을 평생 수행한 종신부제의 성격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제직을 준비하는 일시적 부제가 아닌 종신부제는 독신일 수도 기혼일 수도 있습니다. 종신부제 제도는 아직 우리나라 교회에서 생소합니다. 그러나 미국교회 내에서 종신부제들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만큼 두드러진 것은 아니지만, 저는 프랑스 파리에서 신학 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전례학을 종신부제에게서 배운 적이 있습니다.

부제, 특히 종신부제들은 사제가 파견되지 못한 지역에서 다양한 사목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들을 교육하고 파견할 수 있는 실제적 책임자인 교구장이 어떤 정책을 펴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사제성소가 많아서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해도, 보좌신부는 없고 사목적으로 돌봐야 할 신자들이 많은 본당에 종신부제를 파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비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수 있으며, 세례성사도 줄 수 있습니다. 혼인예식도 거행할 수 있고, 장례 절차의 여러 예식을 주도할 수도 있습니다. 공동체와 관련해서 축복예식도 할 수 있으며, 봉성체와 성체 강복 등도 할 수 있습니다. 즉, 부제는 본당에서 훌륭한 보좌역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질문과 관련해서 덧붙이자면, 최근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여성 부제를 검토해 보시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교황, "여성 부제 검토하겠다""(2016.5.13. 기사) 참조). 여성 부제의 성격이 사제품을 준비하는 한시적 부제로 갈런지 종신부제의 직무를 부여받는 방향으로 갈런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만, 가톨릭 교회에 불어올 새로운 바람이 기대됩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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