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수녀의 이콘응시]

En Cristo
소중한 두 사람이 지금 각각 다른 병원에 있다.
그 중 한 분은 나의 아버지시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생각하면 먼저 아버지를 떠 올릴 만큼 아버진 딸들이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넘치는지를 아시고 각자에게 맞는 사랑과 훈계를 주셨던 분이시다. 어떠한 것에도 당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옹고집이 있지만 딸들의 말에는 슬그머니 져 주시던 분이 지금 죽음의 문턱에 계신다. 두려우신가 보다.

다른 한 분은 멕시코 선교를 위해 함께 떠났던 선배 수녀님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선교지에서의 희망을 읽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사심없는 선교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고, 할 수 있게 용기를 주었으며, 자신이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드러나지 않게 어디에선가 하고 있는 그런 분이다.
사고로 인해 이제 겨우 차도가 보인다는 소식 정도를 끝자락으로 접했다.

삶의 마지막 문턱에 서 계시는 아버지와 새로운 생명의 문턱으로 다시 들어온 수녀님. 아버지가 고통없이 선종하시기를 바라는 기도와 아직도 많은 선교가 남아 있는데 그렇게 누워 있으면 안되니 씩씩이 수녀님답게 빨리 일어ぐ?해달라는 기도를 하느님께 떼를 쓰듯 바치다 갑자기 이콘 하나가 바라보고 싶어졌다.

▲ La Vergine della Tenerezza di Jaroslavl' 자비로운 동정녀 또는 자비의 성모


자! 이콘을 바라보자.
자비의 성모(La Vergine della Tenerezza di Jaroslavl')다.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의 모습이 그럴 수 없이 다정해 보인다. 얼굴을 매만지는 아들의 손길과 성모님의 옷자락을 쥐고 있는 조그만 손의 힘을 느끼듯 성모님은 두 손으로 아기 예수님을 사랑 가득한 손길로 안으시고 내면의 시선으로 바라보신다.
그 모습은 제목이 말해 주듯 모자가 서로의 사랑과 신뢰를 알 수 있는 가까움으로 느껴진다.
성모님의 얼굴에서 슬픔이나 괴로움, 어떠한 그늘도 찾아 볼 수 없다. 금방이라도 아기가 엄마의 시선과 마주치면서 ‘까르르’ 웃을 것만 같은 그런 모자간의 평화로움이 이콘 전체에 흐르고 있을 뿐.

죽음과 새로운 생명이라는 두 기도를 바치다

이 이콘엔 왠지 소박한 겸손이 묻어 있고 사랑에서 흘러 나오는 향기도 있다. 푸른빛 쉐뻬찌 (또는 꿒피아 cuffia 머리를 가린 속 망)의 차분한 색감은 이콘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욱 부드럽게 해 준다.

인사 이동 후 1년 반 동안 다른 이콘들과 둘둘 말아서는 풀어 보지도 않았던 이콘이였다.
갑자기 이 이콘이 생각난 것은 지금 내가 두 분을 위해서 가까이 있을 수도 없고 무엇을 해 줄 수도 없다는 절박함으로 올리고 있는 상반된 기도 때문이였다. 죽음과 새로운 생명이라는 두 기도를 바치다 순결한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성모님께 이 두 분을 당신의 손에 안겨 드리고 싶었다.

성모님을 바라보다 그 사랑 가득한 눈과 손길로 두 분을 위한 자비심과 하느님께 전구를 부탁하는 내면의 기도를 바치며 슬그머니 이콘 전체를 만졌다. 아기 예수님의 손이 성모님의 볼을 만지듯 나 또한 하나 하나 그림을 그리듯 만졌다. 아기 예수님이 모두고 있는 두 발의 고요처럼......
손끝으로 어떤 전율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리 만큼 조용한 사랑만이 느껴진다.

사랑은 강렬한 전율이 손끝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구나.
사랑은 번쩍 비추이듯 어떤 형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니구나.
사랑은 우레와 같은 소리로 응답하지 않는 것이구나.
사랑은 한번 바라봄으로 다 알아 버리는 그런 것이 아니구나.
사랑은 이렇게 요란하지 않는 것이구나.

사랑은 심장의 뜀박질을 조용히 들을 수 있는 마음이구나.
사랑은 입가에 침묵이 있는 여유이구나.
사랑은 품에 담고 싶은 간절함이구나.
사랑은 만져보고도 다시 눈 속에 담고 싶은 그리움이구나.
사랑은 이미 다 알고 있어 더 무엇이 필요치 않는 열림이구나.
사랑은 내면의 움직임도 느끼는 예민함이구나.
이렇게 사랑은 다 내어 주고도 빛으로 승화하는 촛불과 같은 영적 평화이구나.

삶과 죽음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
그 주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산란한 기도를 정리하며 마음모아 모든 간구를 바친다.
지금 이순간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닦을 수 있음도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의 사랑이 두 분과 함께 하신다는 한가닥 믿음 때문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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