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고통을 통해 만나는 하느님의 자비

2월 10일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 시기에 들어섰다.

특히 ‘자비의 특별 희년’과 함께 지내는 이번 사순 시기는 “하느님 자비를 기념하고 경험하는 가장 좋은 시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사순 담화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자비의 활동을 강조하면서, “이 희년의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자비의 활동을 실천하여 우리의 실존적 소외를 극복하기에 좋은 때”라며, “자비의 육체적 활동을 통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며, 쉴 곳을 마련해 주고, 찾아 주어야 하는 우리의 형제자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만진다”고 이른다.

예수의 부활을 앞두고 그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지켜야 할 것은 금육과 금식만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 회개와 참회는 자비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서도 사순 시기를 보내는 신자 개인의 참회뿐 아니라 사회적 참회와 실천을 강조한다.

“사순 시기의 참회는 오로지 내적이고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또한 외적이고 사회적인 참회가 되어야 한다.”(전례헌장 109항)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권력, 자본, 국가폭력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연대가 절실한 사회적 아픔이 있는 현장을 소개한다. 사순 시기 그리고 자비의 특별 희년을 보내며, 하느님의 자비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한다면, 이들을 만나, 우리 자신의 가난함을 확인하고 서로에게서 자비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은 어떨까.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농민

백남기 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지 세 달이 지났지만 책임 있는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대책위와 농민단체들은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 민주주의 회복 백남기 농민 살려내라”라는 구호 아래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순례단은 2월 11일 전라남도 보성에서 출발해, 광주, 전주, 안산 세월호 분향소를 거쳐 서울까지 걸으며, 시민들을 만난다. 마지막 날인 27일에는 서울에서 민중총궐기에 참여한다.

또 매일 오후 4시 백남기 씨가 있는 서울대병원 앞 천막에서는 그의 쾌유를 빌고, 정부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 2015년 11월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열린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를 위한 미사. ⓒ배선영 기자

3297일.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해 9월 3일 최고의원회의에서 “강성노조 때문에 망한” 기업의 예로 콜트콜텍을 들었다. 하루 아침에 공장 문을 닫고 해외로 이전한 회사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10년 거리 싸움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 뒤로 인천 부평 공장 근처에 있는 천막이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도 생겼다. 김무성 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콜트콜텍 방종운 지회장이 단식을 하다 쓰러졌고, 다른 해고노동자들이 단식 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부평에서 열리던 미사도 여의도로 옮겨 왔다.

“추운 날에도 미사를 드리려고 성당이 아닌 텅 빈 공장으로 오시는 여러분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줄 모릅니다.”

매달 둘째 주 목요일 저녁. 천주교 인천교구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를 위한 미사를 이어간다.

우리는 세월호를 기억한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미사가 여전히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인천교구는 매달 본당을 돌며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미사’를 봉헌한다. 2월 24일에는 간석2동 성당에서, 3월 30일에는 오정동 성당에서 오전 10시에 열린다.

부산교구는 수정 성당에서 둘째 주를 제외하고 매주 월요일 저녁에 미사를 연다. 둘째 주 월요일에는 가톨릭센터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미사’가 열리는데, 이때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며 함께 한다.

광화문광장에서는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저녁에 ‘세월호 아픔을 나누는 광화문 미사’가 열리고 있다. 마산교구는 ‘우리나라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는 미사’를 매주 목요일 저녁 교구청 지하성당에서 연다.

기아자동차 해고노동자, 국사교과서 국정화, 일본군 위안부, 용산 화상경마장....

시국기도회가 매주 열릴 정도로 참담한 세상이다. 매주 월요일 저녁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의 교구와 수도회 사제들이 돌아가면서 미사를 봉헌한다.

지난 2월 1일 미사에는 서품받은 지 한 달이 채 안 된 새사제들이 미사를 집전했다. 광주대교구 김경욱 신부는 “이제 막 서품을 받은 내게 이 세상은 무섭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를 듣고 강론대에 올라가 뭐라고 신자들에게 입을 떼야 할지 고민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민주주의가 쓰러진 상황을 마주하고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부가 강론에서 신자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게 하는 사회에서 김 신부는 십자가를 진 예수를 떠올렸다. 사순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마음 깊이 새길 시간이다.

학교 앞 도박장 입점을 반대하는 용산 화상경마장 반대 투쟁은 어느덧 1000일을 훌쩍 넘겼다. 750여 일째 천막노숙농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매주 금요일 오후 5시, 화상경마장 앞에서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또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집회도 진행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불법파견 처벌을 요구하는 기아차 노동자 최정명, 한규협 씨의 고공농성은 오늘로 244일을 맞았다. 서울시청 앞 옛 국가인권위 건물 전광판 70미터 상공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기도는 어떤 실천으로 이어져야 할까. “그들은 왜?”라는 질문을 품는 것만으로도 하느님의 자비에 조금 더 가까이 가는 문을 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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