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석 신부] 2월 7일(연중 제5주일) 루카 5, 1-11.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 기록한 문서가 아닙니다. 복음서들이 전하는 예수님의 행적도 사실 그대로를 보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그분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여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다고 믿으면서, 그분의 가르침과 삶을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이들도 그분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믿고 실천하던 바를 문서로 남겼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복음서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군중이 예수님에게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는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었고, 그것을 듣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이라는 말입니다.

오늘의 복음에는 초기 신앙인들의 믿음과 실천을 반영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라고 말하는 것은 초기 신앙인들의 마음가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주님’이라는 호칭과 엎드려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신앙인이 하느님 앞에 갖는 자세입니다. ‘주님’이라는 호칭은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일을 본 신앙인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이 하느님을 부를 때 사용하던 호칭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사람들은 그분을 주님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겐네사렛 호수에서 있었던 ‘기적적 고기잡이’ 이야기는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신앙인들이 믿고 있던 바를 담아서 전합니다.

(사진 출처 = pixabay.com)

겐네사렛 호수가 있는 갈릴래아를 무대로 예수님이 활동하신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몇 사람은 이 호수에서 일하던 어부들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부 출신 제자들 중에 오늘 거명된 시몬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있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원시 신앙공동체가 전하는 역사적 사실들입니다. 이 이야기로 그들이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 덕분으로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다는 말은 물론 아닙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구원이시며, 그분을 따르는 신앙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립니다.

오늘의 ‘고기잡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뒤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밤새도록 애썼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사람들의 노력은 헛수고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그물을 쳤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잡은 물고기를 배 한 척으로 옮기지 못하고, 다른 배를 불러야 할 정도로 고기잡이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따라 일하는 사람은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거둔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고기를 기적적으로 많이 잡았다는 사실 보도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어부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면서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어서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희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여기서 ‘낚는다’는 말의 뜻을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우리말에 ‘낚는다.’는 뜻은 낚시를 미끼 안에 감춰서 그것을 먹이인 줄 알고 삼키는 물고기를 잡는 행위입니다. 물고기는 속아서 잡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이 ‘이제부터 너희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고 말씀하실 때, 그런 뜻은 전혀 없습니다. 물고기를 얻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이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말씀 따라 사는 사람들을 얻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뽑은 사실을 말하기 전에 이 ‘고기잡이’ 이야기를 먼저 보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 그분의 제자입니다. 그분의 말씀 따라 실천하면,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많이 얻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 따라 사는 것은 하느님이 두려워 신앙이라는 대책을 세우는 길이 아닙니다. 선교는 하느님을 빙자하여 사람들 안에 두려움을 불어넣고,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교세 확장을 꾀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예수님의 말씀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권한으로 행세하며, 사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대우받기 위해 특수 복장을 하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세를 위해 전대사 한대사를 챙기며 영악하게 자기 자신을 위해 살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것은 당신의 삶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당신의 삶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자비로우셔서 예수님도 그 자비를 실천하고, 하느님이 고치고 살리는 분이라 예수님도 사람들을 고치고 살리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 종교 기득권층의 눈치를 보거나 권력을 가진 이들과 사귀어서 부귀영화를 누리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따라 그물을 치는 오늘 복음의 제자들과 같이, 그리스도 신앙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삽니다. 오늘 복음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풍요롭게 살기 위해 그동안 마련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 전향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가 마련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재물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죽어서 내세에서도 많은 것을 얻어 누리고 싶은 욕심도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이 그런 것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 소중히 생각하였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이 베푸셔서 있는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도 베풀며, 살라고 주어진 우리의 삶입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십니다. 하느님은 사랑하십니다. 그분을 아버지로 부르는 신앙인은 그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며 삽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는 제자는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서공석 신부(요한 세례자)

부산교구 원로사목자. 1964년 파리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파리 가톨릭대학과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광주 대건신학대학과 서강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부산 메리놀병원과 부산 사직성당에서 봉직했다. 주요 저서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하느님-교회”, “신앙언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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