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복음

독일신학자 베르너 라우비가 쓰고, 안네게르트 푹스후버가 그림을 그린 <어린이 성경>(북극곰, 2012)은 300쪽 안에 창세기부터 바오로 서간까지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통독용 성경이다. 늘 듣는 성경 내용이지만, 전후 맥락이 언제나 헛갈리는 게 또한 성경이다. 이 책은 성경의 드라마를 이야기로 전개하면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우리 자신을 성경 속 등장인물처럼 느끼게 하는 묘미를 기대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을 번역한 손성현 박사를 창천교회에서 만났다. 손 박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8년부터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에버하르트 부쉬의 <칼 바르트>, 게르하르트 마르틴의 <몸으로 읽는 성서-비블리오드라마> 등이 있다.

▲ 한 인격 안에 사탄과 하느님을 향한 두 가지 갈망이 공존하고 있다. (사진제공 : 북극곰)

<이야기 성경>이란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는?

독일 유학시절에 벼룩시장에서 그 책을 처음 보았어요. 벼룩시장이라면 이것저것 생필품이나 옛 물건들을 내놓고 파는 곳인데, 공부하는 사람이라서 역시 책에 눈길이 많이 가더라고요. 운이 좋으면 토마스만의 책도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어요. <어린이 성경>을 보고 그림에 확 필이 꽂히더군요. 즈카르야가 갓 태어난 요한을 안고 있는 표정이 너무 아름다워서 놀랐어요. 광야에서 시험받는 예수님의 도플갱어로 사탄이 설정된 것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죠. 그 옆에 있는 예수님의 두 가지 얼굴도 특별했지요. 한편에는 황금을 선택하고서 잿빛의 삶을 살고 있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사나이가 있고요. 다른 한편에는 고난을 상징하는 가시돋힌 나뭇가지를 쥐고 있는 사나이가 있죠. 결국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사나이는 미소를 머금고 있어요.

어린이용 성경에는 여간해선 사용하지 않는 그림이 많아요. 사무엘 얼굴을 보면 햇빛이 쏟아지는 쪽이 아니라 어두운 쪽에 있는 사무엘의 얼굴이 밝게 드러나 있죠. 이것은 단순히 성경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깊이 있는 재해석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무엘은 어둠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있어서 그 방향의 눈과 귀가 다른 빛에 노출되어 있는 거죠. 산상수훈 이야기에서는, 나치에 희생된 야누쉬 코르착과 마틴 루터 킹, 나치에 저항한 소피 숄과 마하트마 간디까지 그려 넣었죠. 테레사 수녀와 아시시 프란치스코까지 산상설교와 관련해서 그려 넣었어요. 그때 ‘이게 범상치 않은 책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얼른 사와서 언젠가 꼭 번역해서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싶었어요.


이 책의 일러스트를 그린 분이 정말 특별한 분 같네요.


삽화를 그린 안네게르트 푹스후버(Annegert Fuchshuber)는 1940년 독일 막데부르크에서 태어났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책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답니다. 아욱스부르크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부터 평생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는데, 마지막까지 일했던 티네만 출판사에서만 70만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어요. 우리말로 번역된 책으로는 제가 번역한 <이게 뭘까?>도 있고, 미하엘 엔데의 동화 <꿈을 먹는 요정>의 환상적인 삽화도 그녀의 작품입니다. 후버의 그림은 아주 세밀하면서도 깊이 있고, 어두운 데서 삶의 진실을 찾는 힘이 있어요. 푹스후버의 평생 소원은 어린이들에게 성경이야기를 일러스트로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어린이가 어른보다 성경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분이 죽기 3-4년 전에 <어린이 성경>을 완성했어요.

제가 이 책을 소개할 적에 가장 먼저 이 그림을 보여주면서 “이 남자는 누굴까?” 물어요. 한 아이가 유목민의 요람에 누워 있고, 그 옆에서 한 남자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고 있어요. 모세 아버지가 아닐까, 엄마는 없는 모양이네, 여러 이야기가 나오죠. 이 그림은 라헬이 죽고 없는 상황에서, 야곱이 막내아들 벤야민을 눕혀 놓고 우는 모습이죠. 야곱은 라헬을 너무 사랑했는데, 그 사랑하던 여인이 죽은 것이죠.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보배를 잃어버린 것이지요. 이 마당에 흉년으로 곡식을 얻으러 이집트에 다녀온 자식들이 벤야민마저 이집트로 데려가야 한다는 말을 야곱은 들어야 했어요. 요셉도 잃었는데 말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보면서 야곱 이야기를 사랑하던 여인을 잃은 한 남자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읽어 본 적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야곱에게 전혀 감정이입이 안 되었던 거죠. 이 책의 표지 앞뒤에 광야가 나오는 것처럼 막막한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입니다. 제가 2011년에 이 책을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그 여름 두 달 동안 단숨에 번역을 마칠 수 있었어요. 저도 당시에 사막 같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거든요.

▲ 손성현 박사는 성경을 살아있는 이야기로 읽자고 제안한다. ⓒ한상봉

그림만 아니라 성경이야기를 통독하는 즐거움도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이 책을 번역하면서 통독의 기쁨을 맛본 것도 큰 수확이었죠. 목회자로서 성경을 가르치고 강의도 준비하지만, 성경을 읽더라도 직업상 여기 읽고 저기 읽고 했을 뿐 통독할 겨를이 보통 없거든요. 통독을 하겠다고 마음먹어도 탈출기 19장쯤에서 막히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에서 절망하잖아요. 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달음에 이 책을 번역하면서 ‘아, 이 이야기가 나를 이끌어가고 있구나.’ 생각했죠. 이 책의 미덕은 그림도 좋지만 한 번에 천지창조부터 바오로가 로마로 가는 이야기까지 읽을 수 있다는 거죠.

여기저기서 통독모임 진행하면서 얻은 확신은 성경은 한 구절을 갖고 깊이 묵상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성경은 또한 통독하는 책이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야기 속에 같이 들어가서 흘러가는 것이죠. 통通 자가 두루 통하다, 꿰뚫는다, 소통한다는 뜻이 있죠. 그러니 성경은 두루 읽고, 꿰뚫어 읽고, 소통하며 읽는 게 필요해요. 예전에 청파감리교회에서 통독모임을 해보니 여덟 시간 밖에 걸리지 않더군요, 1박2일로 스케줄을 잡고, 첫날 잠자기 전까지 구약을 읽고, 다음날 신약을 읽었어요. 한 사람이 5분 정도씩 읽도록 하는데, 중간에 지루할까봐 퀴즈를 내요. 모세 이야기를 읽고서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여자이고, 내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없었죠. 저도 유명하지만 제가 만든 노래가 더 유명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빠져나올 때 제가 만든 노래를 불렀어요.” 하고 말하면 대뜸 “미리암”이라는 답이 나오죠. 그럼 도서상품권을 선물로 주곤 했어요.


성경이 지루할 수 있는데, 이야기로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통독모임을 하면서 성경이 대하장강 같은 이야기구나, 해요. 성경은 단순히 목회자들이 설교할 때나 인용하는 금과옥조 같은 말씀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죠. 그래서 제 나름대로 인생의 구호를 만들어 보았어요. ‘이야기를 타고 나를 넘다.’ 내가 성경 이야기 속으로 쑥 들어가면 이 세상에서 이걸 가져야지, 이걸 이뤄야지, 하면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던 마음을 버리게 돼요. 그리고 나 역시 지금도 계속되는 이런 이야기의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져요. 좋은 이야기가 내 안에 살아 넘치고 있으면 이 세상의 헛된 목소리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최근에 한병철 선생이 쓴 <시간의 향기> 라는 책 보면, 충만한 삶을 만들어주는 게 이야기라고 하죠. 서사적인 흥미를 자아낼 수 있는 이야기가 우리 삶 속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우리네 삶이 늘 초조하다는 겁니다. 우리 삶의 템포가 너무 빨라져서 삶이 힘들다는 가속화 테제를 넘어서 한병철 선생은 오히려 ‘이야기가 사라져서’ 문제라고 말하죠. 한가롭게 머물면서 이야기 속에 자신을 한번 푹 집어넣는 체험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래야 지금의 나에 사로잡히지 않고, 나라는 게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낀다는 거죠. 우리는 성경의 위대한 이야기의 일부분이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순명하는 사람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악취가 나는 삶을 살게 되는 까닭은 이야기가 없어서인데, 만약 정말 좋은 이야기를 우리가 알고 있고, 그것을 듣고, 누군가에 전해줄 수 있다면 우리 삶이 지금보다 더 향기로운 시간이 될 수 있겠죠.


어린이들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실제로 어린아이에게 읽혀 봐도 좋고 어른들도 좋아합니다. 다윗과 밧세바 이야기를 보면, <어린이 성경>에도 이렇게 야한 장면이 나오는데 어른 성경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통상 어린이용 성경에서 잘 다루지 않는 예언서도 깊이 있어서 어른들에게도 관심을 끌죠. 천사도 보통 스타벅스 로고처럼 사방사방한 얼굴로 요술지팡이를 집고 있을 것 같지만, 이 책에서는 팔레스타인에서 불뱀을 뜻하는 스랍이 푸른 톤으로 그려져 있어요. 천사가 성화에 나오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보면 금방 얼어붙을 것 같은 모습이죠. 뱀의 형상을 한 천사의 몸은 날개로 가려져 있고, 이런 천사가 숯불을 들고 있는 거죠. 하느님의 거룩함은 인간이 생각하는 틀에 맞추어져 있지 않다는 겁니다.

▲ 불뱀의 형상을 한 천사가 날개로 몸을 감추고 있다. (사진제공 : 북극곰)

예전에 야노프스키라는 구약 학자에게 들은 기억이 나는데, 그림을 그린 푹스후버는 단순하게 필을 받아서 상상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학자들에게 자문을 얻어 세세한 디테일도 잡아 낸 셈이죠. 이집트 도시 위에 어둠이 쏟아져 내리는 열 가지 재앙도 그렇고, 지면 곳곳에 그려 넣은 작은 꽃 하나도 신경 써서 그렸다는 느낌입니다. 또 어지간한 성경에서 다루지 않는 욥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했지만 나중에 다 잘 되었다는 식이 아니죠. 욥이 세 친구들과 논쟁하면 하느님을 향해서 원망을 쏟아놓는 모습도 그대로 묘사하고 있어요. 특히 욥 이야기를 전하면서, 욥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에 의해서 유대인 게토 구역으로 쫓겨나 쭈그리고 앉아 있는 유대인의 모습과 오버랩을 시켜 놓은 것도 독특합니다. 성경 이야기가 먼 옛날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거지요. 이 책을 낸 출판사 편집진은 신자가 아닌데, 그분들이 욥 이야기를 편집하면서 화가 났다고 해요. ‘하느님이란 자가 사탄과 흥정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망가뜨릴 수가 있느냐’는 거지요. 그러면서 이 성경 이야기에는 인간의 오욕칠정이 다 들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해요.


제가 보기에 예수님의 인상이 참 친숙하던데요.

▲ <어린이성경>, 베르너 라우비 지음, 안네게르트 푹스후버 그림, 북극곰, 2012.
보통 그림 성경책을 보면 예수님이 서양인처럼 그려져 있는데, <어린이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팔레스타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어요. 보통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다른 거지요. 덧붙여 <어린이 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신앙에도 어두운 부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겁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어둠과 빛, 이 세상의 어둠과 빛이 고스란히 성경 이야기에서도 펼쳐지는 거지요. 이런 진지하고 깊이 있는 성찰을 사실 어린이들도 좋아해요. 저희 집에서는 식구들이 저녁마다 모여서 이 책을 읽는데요, 9시 종이 치면, 둘러앉아서 <어린이 성경>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읽고, 기도하면서 하루를 정리하는 거죠. 다른 가정에서도 이 책을 그런 식으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아요. 성경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이들이 ‘나도 결국 이 이야기의 일부구나’ 하는 생각하고 ‘나’를 뛰어넘는 삶을 살면 좋겠어요. 창조 때 시작된 이 드라마는 나를 통해서 계속되고 있구나, 여기길 바라요. 교회도 남을 가르치는 공동체라기보다 이런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책의 마무리로 적혀 있는 로마서 8장 말씀을 모두 체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성경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아주 새로운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말이 기억나요. 그렇게 늘 새로운 이야기로 이 책이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29)


한상봉 기자
/뜻밖의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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