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순례단 후쿠시마 방문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일본 가톨릭 정의평화협의회(이하 정평협)는 9월 21일부터 23일까지 “전후 70년, 이제야말로 지상에 평화를 - 아픔을 아시는 하느님과 함께” 라는 주제로 제 39차 정의평화협의회 전국총회 도쿄대회”를 열었다. 일본 정평협에서는 “도쿄 전국대회와 평화를 위한 후쿠시마 방문”에 한국 가톨릭 탈핵순례단을 초청했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천주교창조보전연대, 한국남녀수도회 남장협, 여장연, 가톨릭 탈핵활동가와 탈핵신문 공동 방문단이 이 대회에 참가했다. 개회식과 기조강연 및 교류회, 그리고 20개 분과 모임과 심포지엄, 파견미사로 이어지는 전국대회에 2200여 명이 참석했는데, 한국순례단은 탈핵분과에서 한국의 탈핵운동에 대해 발표했다.

금년 도쿄 전국대회 주제가 말해 주듯이 이번 대회에서 평화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다뤘던 내용은 ‘전쟁 반대’, ‘핵 반대’다. 최근 일본 정부가 전쟁 포기, 전력 포기, 그리고 교전권 부인을 포함하는 평화헌법 9조를 침해할 수 있는 안전보장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킨 것에 대한 문제점을 밝히고, 아직도 문제해결의 길조차 보이지 않는데 핵발전소 재가동과 심지어 신설을 주장하는 정부의 입장이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는 것도 여러 분과에서 다각도로 밝혔다. 거짓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법안이며 전쟁을 위한 이런 움직임은 국민의 생명만 아니라 전 지구 생태계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발전소 재가동과 같은 맥락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했다.

▲ 동경 요요기 공원 집회 모습.(사진 제공 = 김은순 탈핵 활동가)

일본 정평협회장 주교님은 긴급한 사회문제들에 대한 주교회의의 성명서들을 언급하며 “그리스도인은 전쟁을 반대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교회의 권위자들은 신앙과 도덕에 적절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도록 교리를 제시하고 인도할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발표자들은 국제질서를 위한 명목으로 미국의 규칙에 의해 만들어진 안보 법률이 이 헌법 조항을 위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법안은 동북아의 평화를 해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 안보법은 전쟁을 위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일본 내에서 안보법 반대시위가 높아지고 있으며 특히 젊은 층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회도 기꺼이 안보법 반대에 참석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왜냐하면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 끌려 갈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평화를 위한 십자가였지 전쟁을 위한 십자가가 아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을 반대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평협회장 주교님은 “교회의 권위자는 정치에 대해서도 신앙과 도덕에 관한 것이라면 필요에 따라 적정하게 교리와 견해를 표명해야 할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교회의 입장을 표명했다.

▲ 통제된 후쿠시마.(사진 제공 = 김연수)

주요한 내용의 하나인 핵발전소 포기에 대해서는 핵발전소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피폭주민에 대한 소모임들에서 각각 발표와 나눔을 했는데, 탈핵분과에서는 후쿠시마의 상황과 한일 탈핵운동에 대해 나누었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핵발전소 반대 시위를 해 왔는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20명에서 30명 정도만 참가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가 터진 뒤 최대 10만 명이 넘는 시민이 그리고 만 명이 넘는 시민이 핵발전소 반대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여전히 후쿠시마 사고가 잘 수습되고 있으며 안전하다고 선전하면서 피난민들이 하루빨리 고향 후쿠시마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뒤 2-3년 사이에 이 지역에 사는 0세-18살 이하 어린이, 젊은이를 대상으로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그들 중에 120명이 갑상선암으로 판정 받았는데도, 일본 정부는 갑상선암 환자들이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후쿠시마에서는 방사능 제염을 위해 7000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으며 이들은 원전 전문가들이 아닌 단순노동자로서 4-5차 하도급을 통해 고용되므로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계약서가 위조되기도 하며 안전과 임금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도 도쿄전력에서는 계속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측의 발표에 이어 한국방문단도 단체별로 한국의 상황과 탈핵활동 상황을 발표했다. 한국의 신규 핵발전소 건설계획과 관련해서만 아니라 중국이 백두산에 핵발전소를 가동 중이라는 내용과 함께(세계일보 2015.08.18) 한 나라 안에서만의 탈핵운동이 아니라 한중일이 연대할 수 있는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 강하게 제기됐다. 백두산은 화산활동이 있었던 곳이며 그 인근에 중국의 여러 군사시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만약 중국이 전략적 무기로 사용한다면 핵발전소 폭발과 백두산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여파는 남북한만이 아니라 일본까지 미칠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원전 운영 경험도 짧다. 그러나 한국 국민들은 이러한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정부도 방치하고 있고 언론도 전혀 다루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핵발전과 관련된 초대형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한중일 3국 간 공동 대응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국 순례단을 대표하는 유흥식 주교님은 “생태보전과 탈핵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사명”이라고 말했다.

도쿄대회를 마치고 일본 탈핵분과 순례단과 한국 방문단이 함께 “평화를 위한 후쿠시마 방문” 순례를 시작했다. 순례를 시작하면서 먼저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전쟁 반대와 원전 반대 집회에 참가했다. 집회에는 만 명 정도가 모였는데 어린아이부터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참가했다. 특이한 것은 이렇게 많은 시위대가 모였는데 경찰은 단지 3-4명이 나와 통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벽을 치고 수백 명이 넘는 경찰이 방패를 들고 설치는 한국 분위기와는 대조적이었다. 전쟁반대와 원전반대 집회에는 유명한 작가들 연예인들이 나와서 발언을 하는데, 그날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와 여러 유명 작가가 참석했다. 한국 탈핵순례단도 나가서 발언을 하고 한국에서 준비한 일본 ‘탈원전을 실현하고 자연에너지 중심의 사회를 요구하는 천만인 서명’에 함께한 서명지를 선물로 전달했다. 한국에서 1700명의 서명을 받았다. 한국 대표자가 일본 대표자에게 서명지를 전달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시위에 참석한 두 아이의 엄마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곳에 참석한 이들이 곳곳에서 눈물을 흘렸다.

▲ 후쿠시마. 아무도 살지 못하는 마을. 차도 사람도 없다. ⓒ김연수
우리는 집회 참석을 마치고 후쿠시마로 향했다. 후쿠시마로 가는 길, 후쿠시마에서 30-40킬로미터 떨어진 산 아래에 있는 이다테무라에서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고 폐가들이 즐비하게 남아 있었다. 바람의 방향 때문에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곳이다. 사실 이 산으로 인해 그 너머 지역 사람들은 방사능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다고 할 수도 있다. 폐교가 된 고등학교를 방문했는데 방사능 0.712마이크로시버트(μ㏜/h) 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안전하다는 0.3마이크로시버트를 훨씬 초과하고 있다. 바로 뒷산으로 들어가면 훨씬 더 높이 나오는 핫스팟 지역이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학교를 정상화하고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기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에 가까이 갔을 때는 도로가 폐쇄되어 있었고 출입 허가증을 검사했다. 들어가려면 미리 신청을 해야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도로 곳곳에 출입금지라는 표지와 함께 바리케이드가 놓여 있었다. 더 이상 사람들의 출입이 불가한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과 가까운 곳이라 해도 거리와 바람 조건에 따라서 피난지가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서 하라마치 성당이 있는 곳에는 성당도 유치원도 운영되고 있었고, 후쿠시마 인근 절에는 사람이 머물 수 없어서 가족들은 차로 한 시간 거리에서 기거하고 스님만 매일 출퇴근해서 절에 머물며 여러 가지 이유로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하며 위로하고 자신과 세상을 치유할 길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 방사능 수치. ⓒ김연수
핵발전소 인근 들판에는 멧돼지들이 활보하고 있었고, 곳곳에 방사능으로 오염된 흙을 담은 검은 비닐봉지가 줄서 있는 가운데,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을 파내고 새로운 땅으로 채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방사능 선량계가 1.8을 가리키고 있는 곳이 있는데, 실제 우리가 가져간 선량계는 2.8을 가리키고 그 아래 풀밭에서는 7.1을 가리키는 곳도 있었다.

핵발전소가 폭발한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쓰나미에 의해 폐교가 되어 있었다. 학교 입구에는 시계탑이 있는데 그 시계는 쓰나미가 시작된 시간에 멈추어 있었다. 영원히 잊지 말자는 의미일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쉽게 잊고 잊어야 할 것들은 깊이 새기고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 같다.

김연수 신부(스테파노)

예수회 사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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