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조민아]
4월 19일, 미국 볼티모어에 살던 26세 흑인청년 프레디 그레이(Freddie Gray)가 백인 경찰의 강경진압과 부당한 대우로 사망했다. 2014년 미주리에서 일어난, 역시 백인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초래된 흑인소년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의 죽음에 이어, 미국사회 인종차별의 심각한 면면을 드러낸 사건이다. 그레이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책임자 처벌, 정의를 요구하는 시위로 한동안 미국 전역이 들썩였다. 볼티모어에는 주 비상사태(State of Emergency)가 선포되었고, 4월 28일에는 정의와 평화를 요구하는 종교인 행진도 있었다. 실제 볼티모어에 살며 시위에 동참한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자면 시위 자체는 대체로 평화로웠다고 한다. 그러나 사건보도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자랑한다는 미국 주류언론을 통해 시민들에게 비춰진 볼티모어 시위의 이미지는 흑인들이 상점을 부수고, 물건을 약탈하고, 차를 불태우고, 도로를 점거하는 '폭력적인' 모습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신학개론 수업시간에 자연스레 이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스물 두 명이 듣는 이 수업에는 흑인학생이 한 명, 아시아계 학생이 네 명 있고, 나머지는 백인학생들이다. 평소 수업에 활발하게 참여하던 백인학생들이 먼저 나서 예상대로 시위의 폭력성을 비판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폭력은 안 된다."라는 의견이었다. 흑인학생이 상기된 얼굴로 경찰 폭력의 부당함이 사건의 시발점이었음을 지적하자 나머지 학생들은 "이유야 어쨌든, 폭력으로는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반박했다. 구석에 앉아 홀로 시위의 정당성을 항변하던 흑인학생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강의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토론 중 의견이 부딪치는 일은 종종 겪지만, 학생이 강의실을 나가 버리는 일은 처음이었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가 상처 받은 채 강의실을 떠나게 둘 수 없었다. 부리나케 따라 나가 그를 불러 세웠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어깨를 들썩거리며 더 이상 모욕감을 느끼기 싫다고 했다. 그를 설득했다. "억울하고 화난 것 안다. 그러나 지금 네가 자리를 뜨면, 볼티모어에서 저항하는 이들은 시위의 정당성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릴 기회를 잃는 거다. 프레디 그레이의, 볼티모어의 시위자들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 오늘 네게 주어진 책임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해라. 내가 같이 있어주겠다."
가까스로 그의 손을 잡고 강의실로 돌아왔다. 분위기가 싸늘하다. 학생들은 1학년이 대부분이다. 인종차별에 대해 개념적으로는 알고 있겠지만, 아마도 차별받는 이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너희들 각자,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처음 느낀 순간이 언제였지?" 아시아계 학생 하나가 자기는 피부색 때문에 오래전부터 늘 자기가 남들과 다르다고 느낀단다. 평소 말이 없던 백인학생 하나는 자기가 항암치료를 받았던 경험을 나눈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또래들이 놀렸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단다. 어떤 학생은 자기는 멕시칸인데 미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멕시칸 친구들 속에서 오히려 이질감을 느낀단다.
다음 질문이다. "그래서 다르다고 깨달은 순간, 느낌이 어땠지?" 두려움, 외로움, 불안함. 다양한 답변들이 쏟아져 나왔다. 말을 이어 갔다. "너희가 대다수의 남들과 다르다고 느낀 순간, 평소에는 잘 의식하지 못했던 이른바 '정상'에 대한 기준이 얼마나 촘촘하게 사람들을 나누고, 그 기준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억누르고 죄인처럼 느끼게 하는지 깨달았을 거야. 그래서 그 '다름'을 느끼고 상처 받았을 때 어떻게 대처했니?" 극복해 보려고도 했고, 그 기준에 맞춰 보려고 해도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절망했다고 아시아계 학생이 답한다. 항암치료를 받았던 학생은 그때의 상처가 너무 커서 머리로는 잊으려 해도 몸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고, 아직도 자기를 괴물처럼 바라보던 아이들이 떠올라 사람을 만나기가 두렵단다. 학생들이 숙연해진다.
이어서 질문했다. "그럼 이제 평화와 폭력에 대해 생각해 보자. 네 잘못도 아니고, 네가 극복할 수도 없는 이유 때문에 따돌림 당하고, 상처받고, 네 권리를 뺏기고, 심지어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할 때 그저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가만히 있는 것이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는 걸까? 너만 가만있으면 조용하고 다들 행복하지 않겠니?" 여기저기서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그건 평화가 아니라 거짓일 뿐이라고, 힘 가진 소수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누군가가 권리를 빼앗겨야 한다면 그건 억압이라고.
"그렇지.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그저 조용하고 안정적일 뿐이라면, 그건 평화가 아니야. 각기 다른 의견과 삶의 정황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이견과 분쟁이 있게 마련이야. 다름을 표현하게 하면서, 특히 목소리가 없는 약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평화지. 평화는 그러니까 늘 시끄러울 수밖에 없어. 지배자들의 기준과 편의에 맞추기 위해 그들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약자들, 소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는다면 그건 평화가 아니라 억압이야. 너희들 영혼을 망가뜨리고 미래를 빼앗는, 그 엄청난 폭력을 우리는 왜 폭력이라 부르지 않을까? 차를 부수고, 도로를 점거하는 가시적인 폭력은 심지어 범죄라고 비난하면서 궁극적으로 너희들이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를 뺏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은 합리적, 이성적이라 간주되고 법의 보호까지 받는다는 것은 모순 아닐까? 폭력이 정당화 될 수 없다면 이 구조적인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학생들의 얼굴에 진지함이 배어난다. 몇몇은 숨을 크게 들이 쉬기도 한다. 가르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수업이 끝나고 흑인학생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떠나지 않고 수업에 남아준 그에게 나는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수줍게 웃으며, 다른 학생들이 읽어 보았으면 하는 볼티모어 시위에 관한 글들이 있는데 공유해도 좋겠느냐고 묻는다. 물론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로 마음먹은 그의 결정에 나는 한껏 뿌듯해졌다. 그가 강의실을 나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면 오늘 수업은 어떻게 되었을까. 돌아와 줘서, 남아줘서, 그리고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 친구야.
조민아 / 평신도 신학자, 미국 세인트캐서린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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