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
[단신] 최후 진술서양운기 수사, 제주 강정 해군기지 관련 재판

양운기 수사는 제주 강정 해군기지 공사현장 입구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해군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공사현장을 지나는 트럭 아래 들어가는 행위 등으로 경찰에 기소됐다 불구속으로 나와 재판중이다. 이 글은 2015년 5월 28일 그의 1심 재판에서 발표한 최후 진술서다.  이날 검사는 그에게 1년 6개월의 금고형을 구형했으며 판결은 아직 나지 않았다.

최후 진술서
2015. 5. 28. 제주지방법원 202호 법정 (판사: 정도성)

저에 대한 1심 재판이 시작 된지 1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긴 시간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 애써 오신 판사님과 재판 실무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 중에 한 사람이며 동시에 가톨릭교회에 몸담고 있는 종교인이며 수도자입니다. 저는 강정에 해군기지가 건설되기 전부터 해군기지의 추진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군은 화순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 했으나 주민반대로 실패했으며 이어서 위미 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고 했습니다만 2007년 3월 마을 총회에서 최종 부결되면서 역시 실패했습니다. 저는 이를 꾸준히 지켜봐 왔습니다.

위미 마을 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안건이 부결되고 약 40일 뒤 2007년 4월 26일, 강정마을에서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전체 2000여 명의 주민 중 100여 명이 모여서 해군기지 유치 신청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마을 임시총회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임시총회임에도 회의 내용에 대한 공지가 없었으며 임시총회 공고기간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마을회장을 비롯한 몇몇 주민들은 ‘해군기지 유치의 안’을 표결도 없이 87명의 서명으로 찬성결정을 내렸습니다.

강정마을 엉터리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신청이 있은 뒤, 5월 14일 당시 도지사 김태환은 최우선 후보지로 강정마을을 발표하고 6월 8일 국방부는 기다렸다는 듯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건설 지역으로 통보했습니다.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이 필수적으로 검토해야하는 입지타당성 조사도 생략하고 해당지역의 여론조사는 졸속으로 추진됐습니다.

서명에 참여하지 않은 강정 주민들의 대다수는 국방부의 발표가 있고나서 자신들의 마을 앞 바다에 해군기지가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민들은 8월 10일 임시총회를 열고 당시의 마을회장의 자격을 박탈하고 열흘 뒤에 해군기지 유치 사안에 대해 전체 주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투표권 보유자 1050명중 투표자 725명이 참석해 해군기지 유치에 반대한다는 숫자는 680명이었습니다. 찬성 35명, 무효 9명이었습니다.

투표참여자 중 94%의 반대표가 나옴으로써 주민들은 해군기지에 대한 반대 입장이 분명함이 확인됐습니다. 이것은 강정해군기지에 대한 강정주민들의 최초의 의사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의사표현을 정부와 해군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해군은 87명이 서명한 유치신청서만 인정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강정마을의 해군기지는 이처럼 처음부터 정당성을 상실하고 출발한 것입니다. 정부와 해군은, 국책사업은 주민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강정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를 반대하다가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여러 재판부들의 유죄판결의 이유 중 하나도 ‘국책사업’에서 주민동의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화순마을과 위미마을에서는 왜 주민들에게 동의 받는 절차를 밟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부가 국책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어떤 마을은 주민들의 동의를 묻고 어떤 마을은 주민들의 동의를 묻지 않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 그 기준이 무엇인지 밝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이미 제주 해군기지 사업은 그 유치 과정에서부터 민주적 절차에 하자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강정해군기지 사업에 반대활동을 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동북아의 긴장과 군비확장의 문제, 미국의 군사전략의 문제, 환경파괴의 문제, 입지 타당성의 문제,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묻는 민주적 절차의 문제, 공사과정에서 불법, 탈법, 편법의 문제 등 많은 문제가 있으며 저의 신앙과 양심에 따라 반대하는 이유를 열거할 수 있습니다만 여기서 그런 문제를 모두 다 열거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앞서 말씀 드린 대로 ‘해군기지유치’ 과정에서 강정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반민주적 절차의 문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하나만 말씀드려도 충분히 저의 행동에 대한 변호가 된다고 믿으며 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 하나면 민주사회의 질서와 상식 안에서 저 자신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판사님, 강정 해군기지 사업과 관련해 기소된 강정주민들은 8년째 경찰, 검찰, 법원, 교도소를 드나들고 있습니다. 비용 또한 엄청납니다. 수많은 주민들은 소중한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생활하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날치기 통과된 강정해군기지 유치사업으로 몸과 마음이 황폐해졌습니다. 판사님은 이런 상황이 과연 법의 잣대로 모두 해석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자리는 한 사람의 행동이 법리적으로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그에 따른 어떤 처벌을 받는가를 가리는 자리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법은 그런 것만 다루는 것입니까? 한 사람의 행동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고 그에 따른 선고만 하면 이 법정은 진정 할 일은 다 하는 것입니까? 물론 법정은 법조문에 근거하여 잘잘못을 판단하고 선고를 하는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판사님, 과연 그것만이 이 법정의 역할의 전부이겠습니까? 법이 사람과 관련될 때 법정의 판결은 법리적 타당성으로만 정리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사람은 각자의 양심이 있기 때문이지요.

마치며
저는 여기 법정에서 제가 실형을 선고받거나 집행유예를 선고 받거나 벌금형을 선고 받거나 무죄를 선고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내려진 처벌이 매우 무거워도 저는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저에게 내려지는 처벌이 매우 가벼워도 저는 기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재판은 이미 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강정마을 주민 전체의 일이며, 국가가 백성에게 주권이 있음을 진정으로 인정하는지, 우리 시대의 가치를 읽을 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판결을 내리는 이 자리는 곧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내리는 판결이며 동시에 지금의 시대에 어떤 가치가 지배하는지, 2015년 한국의 법 감정, 그리고 수준이 어떠한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의 사건은 모든 개체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삶의 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강정과 관련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법정에는 아주 소수의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이 소수의 사람들 앞에서 판결을 받지만 그 판결은 강정주민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양심들, 우리 시대의 인권, 우리 시대의 위정자들, 우리시대의 국가 수준, 우리 시대의 작은 희망이거나 절망에 대한 판결이 될 것이며 저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만나는 사람들, 제가 만나는 시간과 공간, 제가 만나는 시대마다에 전달할 것입니다. 글로 전달할 것이며, 강연으로 전달할 것입니다. 이 법정의 주인공들, 이 법정의 온도와 습도, 이 법정의 체취와 이 법정의 색깔, 이 법정의 크기, 이 법정의 밝기, 그리고 이 법정의 눈동자와 마지막 숨소리까지 제 마음에 적고 새길 것입니다.

판사님, 공판과 관련해 여러 고민으로 애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한 행동이 양심에 비추어볼 때 죄스러움은 없지만 나랏일을 하시는 여러 분들께 수고를 끼치고 애쓰게 했음에 송구한 마음을 전합니다.

2015년 5월 28일 피고인 양운기, 두 손 모읍니다.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