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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영성, 고립에서 연대로책으로 읽는 복음

“세월호 이후, 공동체의 삶은 가능한가?” 질문하는 책이 발간되었다. 김진호, 엄기호, 백소영 등 14인의 신학자가 공동으로 지은 <사회적 영성>(현암사, 2014). 이 책은 ‘공감’에 대한 신학적, 인문학적 성찰을 담았다. 이미 우리 주위에 치유와 배려, 희생과 베품을 호소하는 글들이 많지만, 여기서는 한국 사회에 가득한 감정의 흐름과 구조를 사회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와 ‘영성’이 만나는 자리는 세월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이 책을 처음 기획했던 김진호 실장(제3세계그리스도교연구소)을 만났다.

   
 ⓒ이희연


‘사회적 영성’이란 말이 나오게 된 이유는?
대화문화아카데미 연례세미나에서 박명기 선생이 처음 ‘사회적 영성’이란 말을 써서 충격을 주었습니다. 요즘은 ‘영성현상’이라고 부를만큼 ‘영성’이 관심을 받고 있는데, 종교 밖에서도 영성운동이 일어나고 있지요. 한국 개신교에서 산업화 과정에서 순복음교회 등으로 발생했던 성령운동이 하층민을 대상으로 하는데 반해, IMF 이후 나타난 영성운동은 중산층 대상입니다. 내 생각엔 이미 교회가 중산층화 되었기 때문이고, 이 말은 교회에서 서민 대중이 떠나거나 주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도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가 중산층도 충분히 괴로운 상황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자기계발을 강조하고 ‘피로사회’를 이야기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괴로운 ‘잠재적 실패자’라는 거죠. 그런 사회에서 90년대 말부터 폭발적으로 나타난 현상 중에 하나가 단학선원 같은 신종교적 영성운동입니다.

신자유주의 때문에 괴로운 중산층들이 찾아가는 곳이 신종교라고요?
사람들은 이제 종교제도를 통해서 영성을 접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을 통해서 영성을 접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선승들의 영적 리더십이 부각되고, 또 최근에는 선을 대중화 하면서 엔터테이너적인 측면을 지닌 혜민 스님 같은 사람이 각광을 받는 것도 신종교 영성이 촉발시킨 영적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죠. 다른 것으로 유사 종교적 현상도 있어요. 팬덤 현상 같은 거죠. 한국에서 90년대 말부터 나타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에 대한 팬덤 역시 대단히 종교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어요.

열광적인 팬덤 현상도 영성과 관련이 있다고 보시는 군요.
예전에 영성은 종교심과 관련이 있었지만 지금은 좀 다르죠. 예를 들면 낚시광, 수집광 이런 현상도 사회학자들은 영성현상으로 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팬덤도 일종의 유사종교 현상이라고 본 거예요. 또다른 팬덤은 정치로 표현되기도 해요. 노무현 현상이나 박근혜 현상이라든가. 박근혜 현상은 또 박정희와 연결되어 있고요. 박정희를 ‘메시아’로 여기는 현상이 나타난 것도 1990년대 말입니다.

그런 신종교적 영성이나 개인화된 그리스도교 영성의 문제점은 무엇?
그리스도교 영성이나 신종교 영성이나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자기 자신에게만 집착하게 만들고, 내가 아픈 것이 나 개인에게 문제가 있어서 생긴 현상처럼 보게 하는 문제가 있어요. 그 부분만 치유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거죠. 그래서 자꾸 자기를 관리하게 만드는 거죠. 그렇지만 나비효과처럼 모든 문제는 사회적으로 얽혀있는 거잖아요. 나의 고통이 나로부터만 유인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뒤얽혀 사는데서 생겨나고, 내가 상처받은 상태에서 분출하는 숨소리 하나가 누군가에는 폭탄으로 떨어지고...이러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영성이 문제죠.

<사회적 영성>에서는 은사적 서사와 영적 서사를 구분하는데, 이게 뭐죠?
은사적 서사는 감정이론에서 다루는 표현인데, 미국의 흑인 앵커 오프라윈프리가 늘 이야기하는 거죠. 인생을 비포(before) 애프터(after)로 나누고, 어떤 사람이 어떤 핸디캡들을 극복해서 지금처럼 성공했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특출난 비결을 통해 아픈 게 나았다는 것인데, 이게 아무나 따라하면 되는 게 아니라서, 이런 은사적 서사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결핍감을 더 많이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이런 영적 경험을 소비하고 있죠. 영적 서사는 ‘사회적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문제를 읽고 해결하는 방식을 개인에게 환원시키지 않고 사회적으로 읽어보자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는데, 알다시피 구조 책임자인 세월호 선장이 도망가 버리고, 대재앙이 왔죠. 그런데 알고 보니, 선장은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이런 책임 없는 사람이 어떤 위험을 만났을 때 재앙을 일으키죠.

   
▲ <사회적 영성>, 김진호 등, 현암사, 2014
사회적 영성을 좀더 설명해 주시면?
우리가 겪는 고통과 절망, 수치심과 상처들에 대한 치유를 개인이 해결해야 될 몫으로 되돌려 보내고, 이 과정을 도와주는 협조자로 교회를 상정하면 곤란합니다. 사회적 영성은 그런 고통과 절망의 원인이 개인에게만 있지 않고 그가 얽혀 살고 있는 사회 자체 안에 내장되어 있는 것이고, 그 상처를 드러내고 회복하는 주체가 그 개인을 포함한 그 사회 구성원 전체라는 것입니다. 곧 연대를 통해 치유 과정을 걸어가야 한다는 영성입니다.

그런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이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네요. 기존 사회교리와 달리 이 문헌은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영적 지침처럼 들리니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영성과 사회적 관심이 분리되지 않아요. 교황께선 그 경계를 넘나드시면서 사회적 영성을 재시하고, 왜곡된 개인주의 영성을 식별하고 계시죠.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지금처럼 ‘영성화된 세계’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최근의 시위현상을 보면 2000년대 들어서면서 특별히 종교적 패턴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단체들의 깃발이 거의 사라지고, 그 자리에 촛불이 들어와 있어요. 종교적이죠. 이처럼 사람들은 이미 종교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말이죠. 예컨대 종교인들의 시위를 보면 개신교 성직자들이나 가톨릭 성직자들이 비슷한 행동을 하는데 가톨릭 성직자들이 눈에 띄잖아요. 가톨릭 성직자들은 전례의 의 전문가들이고, 개신교 성직자들은 말의 전문가들인데, 말은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게 없어요. 오히려 가톨릭 사제들의 제의와 동작이 훨씬 돋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 종교성이 부각되는 시기에 가톨릭 성직자들이 주목받는 행동을 하고 있고, 교황은 그걸 더 극대화해서 보여주시는 분 같아요. 교황님 캐릭터의 훌륭함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캐릭터가 시대와 만나면서 더 증폭되고 있는 거죠. 이처럼 교황은 우리가 말하고 싶은 사회적 영성에 아주 부합하게 보여주는 모범적인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적 영성에도 ‘수행’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제가 신학대학원 다닐 때 실습을 한 적이 있는데, 농촌 개발원에 갔어요. 거기서 실습한 것 가운데 ‘땅 밟기’가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는 임락경 목사님을 따라서 땅을 밟으면서 내 발과 땅의 온도를 느꼈죠. 땅을 밟으며 내가 이 곳 이 장소의 일부구나, 이 땅과 얽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일종의 영적 서사죠. 고립된 나를 발견하고 거기서 초월하는 나를 찾는 게 아니고, 내가 서 있는 이곳 구석구석과 내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거길 지나가는 바람과 얽혀있고요. 절에서는 ‘밥’에 관한 서사가 많잖아요. 그런데 개신교에서 밥이란 프로그램들 사이에 배고픔을 채워주는 도구에 불과하죠. 밥 해주는 사람은 밥해주는 사람일 뿐이고요.

가톨릭에서는 ‘성체성사’가 중요한데, ‘밥’으로 오신 예수님 생각을 하죠. 그나마 다행이죠.
개신교 신학자 가운데 구미정 박사가 있는데, 그분은 ‘밥의 영성’을 강조하면서 교회에서 밥해 주는 분들이 밥을 하시면서 사람들의 건강을 빌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먹는 상상을 한다고 말하더군요. 밥의 영성을 통해서 내가 밥 해주는 사람과 엮여 있고, 밥을 먹는 장소와 묶여 있고, 밥에 들어 있는 재료들과 묶여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밥을 먹어야 이 시대에 의미 있는 밥이 되는지 고민하게 되죠.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게 수행이고, 영성의 한 부분이 아닐까요.

자기 일상이 나 밖의 있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과정이 수행이라는 거군요.
예전에 박정은 수녀를 만나서 북미의 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회적 영성과 상당히 비슷한 측면이 많이 있어요. 서양에서는 1960년대 이후에 많은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의 제도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잖아요, 히피들은 일탈해서 자기들의 공동체를 만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지도 않고요. 이걸 ‘세속화’라고 불렀는데, 실제로 이 사람들이 ‘교회 밖에서’ 상당히 종교적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를테면 이 사람들은 ‘우리는 종교적(religious)이지 않지만 영적(spiritual)’이라고 주장합니다. 최근 개신교에서는 ‘가나안 신도’라는 말이 나왔어요. ‘(교회에) 안 나가 신도’라는 뜻입니다. 교회 밖에서 영성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죠. 이들에게 기성교회가 ‘냉담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보다 먼저 ‘영성적인 대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영성은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야 있다는 깨달음을 동반해야 합니다.
 

한상봉 기자/ 뜻밖의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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