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 정의평화기금 수상자 룩산과 스리랑카의 현실

스리랑카의 군인들이 지난 1월 2일 콜롬보 시내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현장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사진출처/경향신문)
 

룩산 페르난도Ruksan Fernando(36, 스리랑카 인권활동가)는 2주전 싱가포르에 피신을 떠났다. 스리랑카 정부의 타밀타이거해방군(LTTE, 이하 타밀타이거)들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로 시작된 인권과 인도주의의 위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의 생명에 대한 위협과 공격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저희 단체에서 일하던 타밀 청년 두 명이 이유도 없이 구금되었습니다. 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감시와 협박 전화가 계속되었습니다.”

룩산이 정부의 타겟이 된 것은 작년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스리랑카가 이사국 선거에서 3선에 낙선한 것 때문이다. 룩산을 포함한 다수의 스리랑카 출신 활동가들은 자국의 인권상황을 돌보지 않으면서 국제사회에서 인권이사국이 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스리랑카의 인권상황을 알리며 맹렬하게 ‘낙선운동’을 펼쳤고 관행적으로 3선을 낙관하던 스리랑카는 고배를 마셨다. 그 후 그는 정부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이 때문에 인권과 평화를 위해 일하던 언론인들과 인권활동가들, 그리고 성직자들에 대한 탄압과 살해가 지속되자 주변의 모든 친구들이 스리랑카를 잠시 떠날 것을 종용하였고 그는 반강제적으로 싱가포르로 도피해 왔다.

“스리랑카 정부는 타밀타이거만 토벌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비판적인 모든 목소리와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인권활동가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원인 마노 가노산(Mano Ganesan)의원도 타밀반군의 협력자로 몰렸다. 협박이 이어졌고, 테러조사국에 의해 8시간 이상 강제조사를 받기도 했다. 결국 그도 반강제적으로 조국을 떠나야했다. 이중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저명한 신문 편집인인 라산따(Lasantha Wickramatunga)가 살해당한 사건이다. 그는 살해당하기전에 예언처럼 자신이 만약 죽는다면 그 배후에는 정부가 있다고 사설을 써놓았다. 이 사설이 실린 신문은 그의 사후에 발행되었고 영국의 <가디언>과 같은 세계의 저명한 언론들이 다시 받아 적으면서 스리랑카의 인권 상황을 전세계에 알렸다.

스리랑카는 지금 문자 그대로 전쟁중이다. 스리랑카 섬의 북쪽과 동쪽의 일부를 점령하고 있던 타밀반군은 정부쪽의 공세에 밀려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자신을 얻은 정부군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반군을 완전 소탕하겠다고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정부군의 공세가 가장 심한 바니(Vanni)지역에서만 2000여명의 사람들이 죽고 5000여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정부군은 전쟁지역에 있는 민간인들에게 즉각 피난을 떠날 것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민간인들은 피난을 떠날 수가 없다. 이번에는 타밀반군이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였기 때문이다.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가는 사람들이 약 250,000명이다.

정부군은 타밀군이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사용하고 있다고 비난하였지만 룩산은 정부군 역시 민간인들의 생명을 돌보지 않기는 매한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타밀반군의 위협을 무릅쓰고 피난을 떠나면 이번에는 정부군의 가차없는 폭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올해에 정부측의 집계를 따르더라도 37,420명이 전선을 넘어 피난을 떠나왔으며 35,000명이 현재 피신을 떠나 정글속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다.

계속되는 타밀타이거의 위협과 입대 종용으로 결국 피난을 떠났던 한 가족은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에서 수도없는 폭탄을 맞아 3명이 부상을 입었다. 룩산이 직접 도피를 도운 가족이다. 그들과 같이 피신해 있던 사람들 중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허다하다. “폭탄이 한번 떨어질 때마다 한자리에 몰려있던 사람들 중에서 서너명은 죽는다고 합니다.” 정부군이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는 학교나 교회와 같은 ‘안전지역’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설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몇 군데 되지 않는 이런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몸을 피한 사람들은 폭격을 맞는 것을 피할 도리가 없다. 그나마도 미국의 <인권감시 Human Rights Watch>에 따르면 전쟁지역에 있는 병원마저 폭격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바니지역으로 가는 모든 물자가 정부군에 의해서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들어가는 물자와 인적 자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반군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다는 것이 목적이지만 정작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주민들이다. 바니의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아 석유의 경우에는 콜롬보에 비해 그 가격이 900%나 높다. 주민들은 인도주의 지원을 호소하지만 정부군의 위협과 통제로 지원의 손길은 멀기만 하다. 민간단체뿐만 아니라 유엔 기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미 유엔 기구들은 정부측의 압력과 경고에 의해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바로 철수하였다. 민간인들이 몰려와 제발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유엔기구들마저 떠나고 난 후 전쟁지역의 인권과 인도주의에 대한 감시와 지원은 그야말로 무주공산이 되어버렸다.

천신만고 끝에 피난에 성공하더라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스리랑카 정부는 피난에 성공한 이들을 난민캠프에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곳을 복지후생마을(Welfare Village)라고 부르고 있지만 국제단체들은 수용소(Concentration Camp), 아니면 적어도 구금시설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부측의 애초 계획에 따르면 20만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철조망으로 둘러 쌓인 5군데의 이 시설에서 모든 피난민들을 강제로 3년까지 수용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유엔난민고등판무소의 강력한 항의로 정부는 수용자의 80%를 1년 안에 풀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스리랑카의 국회의원인 마노는 “그들은 스리랑카 국민이다. 왜 그들을 가두어야하는가?”라고 강력하게 항의하였지만 정부측의 대답은 “우리는 지금 전쟁중이다. 모든 이들에 대한 심문이 필요하다.”는 싸늘한 대답이었다.

이런 정부측의 모든 반인권적이고 반인도주의적인 조치에 대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은 높아가고 있지만 스리랑카 정부는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 영국정부는 전 국방장관인 브라우니(Des Browne)를 스리랑카의 현상황에 대한 특사로 임명하였지만 스리랑카 정부는 2월 13일 즉각 거부하였다. 내정간섭이라는 이유이다. 스리랑카 정부는 “일년에 6억달러를 지원하는 일본도 특사를 임명하기전에 우리와 상의하였다”면서 “고작 그 백분의 일인 6백만달러를 지원하면서 일방적으로 특사를 임명하는” 영국을 비웃으며 “우리는 더 이상 식민지가 아니다”라고 일축하였다. 미국 등이 주도하여 정부군과 타밀타이거 양쪽에 주민들이 대피할 동안 휴전할 것을 요구한 것도 역시 일언지하에 거부하였다.

“정부측의 이런 행동은 스리랑카의 일반 국민들에게는 영웅적인 것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서구제국주의에 맞서는 ‘사회주의적’인 스리랑카라는 정부의 정치선전이 국민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야당도 야당 구실을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에는 찬성한다, 다만 인권을 지켜달라. 이정도의 목소리밖에는 못내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스리랑카에도 단호하게 전쟁에 반대하는 좌파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존재가 너무나 미비해서 정치적 영향력이 거의 없다고 한다.

스리랑카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룩산의 얼굴은 지극히 어두웠다. "솔로몬의 지혜에 나오는 두 어머니 이야기 아시죠? 서로 내 자식이라고 우기자 솔로몬이 반으로 갈라서 반반씩 차지하라고 하자 진짜 엄마는 울부짖으며 자기가 포기하겠다고 했죠. 불행하게도 지금 난민들에게는 진짜 엄마가 없습니다. 정부군도 타밀타이거도 반으로 찢어 시체로라도 가지겠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별로 없다. 중국이나 몇몇 나라들이 계속해서 스리랑카에 무기를 파는 한 서구의 압력은 일축될 것이고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가장 큰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본은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테러와 전쟁에 지치고 한편에서는 애국주의에 도취된 다수의 국민들은 어떤 식으로든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이런다고 전쟁이 끝나겠습니까? 어림없습니다.” 정부가 타밀반군의 마지막 근거지를 점령하였고 이제 완전소탕은 시간문제라고 자신만만해하는 그 순간 타밀반군의 비행기가 콜롬보 상공에 나타났다. 물론 요격에 의해 떨어졌지만 반군의 비행기가 북쪽에서 이륙하여 유유히 수도 콜롬보의 상공에까지 나타난 것이다. 정부의 호언장담과 위신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곧 다가오는 듯한 애국주의적 승리에 도취된 대통령을 비롯하여 다수의 국민들은 패닉에 빠졌다. “테러를 없앤다는 전쟁이 더 많은 테러를 불러옵니다. 그것이 지난 24년간 타밀타이거와 정부군과의 내전이 가르쳐준 교훈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교훈을 귀여겨 듣지 않고 있습니다.”

엄기호/국제 인권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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