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아쉬람 순례를 다녀오다(1)

 

델리에서 호텔가는 길


지상에서 천국처럼! 소유로부터의 자유!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들을 때마다 산울림과도 같이, 나의 내면을 두드리는 소나타와도 같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약 5시간을 날아간 싱가폴 공항에서 우리는 인도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3시간을 이용하여, 한적한 장소를 찾아 바닥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김진 목사의 인도 여행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가 있은 후, 각자 자기소개를 하며, 앞으로 17일간 생사고락을 함께 할 22명의 공동체 일원으로서 각오를 다졌다. 인도라는 가난한 나라의 정신적 풍요'에 대하여 궁금했으며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일행 중에 세 분 신부님과 한 분 수녀님이 계셔서 우리에겐 든든한 의지가 되었다.

황당한 인도, 그 첫날 밤

인도 델리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을 때, 인도의 첫 느낌은 야릇한 냄새와 많은 사람들, 무질서한 교통수단들, 널부러진 쓰레기더미들로 그야말로 당혹스러웠다. 이래서 공항에 도착한 그날로 되돌아갔다는 사람의 얘기가 있는 거로구나. '인도에서는 시계를 버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예약한 관광버스는 30분을 훌쩍 지나고서야 나타났다. 한국시간으로 밤 1시30분은 넘은 시각, 인도시간으로 밤10시가 넘어서야 호텔 가까운 대로변에 우리는 내렸고, 버스가 들어 갈 수 없으니 이제부터는 걸어가야 한다고 해서 호텔을 향해 줄을 서 골목을 들어섰다.

아, 이것이 무엇인가. 충격이었다. 쓰레기가 난장으로 수북수북 쌓여 있는데 쇠똥은 지름이 20cm 정도가 넘는 크기로 여기 저기 발을 떼어 놓기가 무섭게 질펀하게 쌓여 있고, 커다란 소 들이 턱하니 길을 막고 서 있거나 어슬렁거리고, 시커먼 개들까지 배회하고 있다. 더 끔찍한 것은 컴컴한 길가에 웅크리고 누운 사람이 여기 저기 있는 것이다. 저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일까?

점입가경이라던가, 막상 호텔에 도착하여 방문을 열었을 때, 더욱 충격적인 상황에 나는 어리둥절해서 어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한마디로 너무나 더러웠다. 침대 시트는 회색빛으로 끈적끈적하고 축축했으며 담요는 공사장 바닥에 깔린 것 같았고 화장실은 찌든 때가 심하게 얼룩져 있었다. 물론 더운물은 나오지 않았다. 물티슈로 얼굴과 손발을 닦고, 침낭을 그 침대 위에 피고 들어가 누웠다. 이 침낭이 없었다면, 어찌할 뻔 했나? 내 몸을 편히 누울 수 있는 침낭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방안에 온기라고는 없으니 추웠다. 누운 등짝에서 체온이 스윽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햐아! 이건 괴기 만화에 나오는 장면 같다. 나는 몸을 추슬러 다시 반듯이 누웠다. 이번에는 하체 쪽에서 쓰윽 쓰윽 체온이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잠이 들었다. 이렇게 인도의 첫 날 밤을 대면하고 아침이 되었다.

가난한 신비, 그리고 간디

우리에게 아침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큰 감격이요, 은혜였다. 독서를 매일 순번으로 돌아가며 하였고, 성찬의 전례에선 양영성체를 했으며 평화의 인사 때는 21명이 원을 한 바퀴 돌아가며 포옹의 인사를 나누었다. 미사가 우리의 중심이었고 힘이었으며 축복이 되었음을 믿는다.

어젯밤에 통과했던 그 야릇하게 복잡한 길에서 인도인들이 즐겨 마시는 짜이를 우리도 아침식사로 줄 지어 사 먹고 델리 문화 탐방에 나섰다. "누나, 누나, 어디 가요?" 인도인들이 우리말을 한국 사람처럼 간단하게 구사하는 데에 한바탕 웃음을 날리며, 우리는 쇠똥을 밟지 않으려고 발밑을 열심히 살피며 거의 경보 수준으로 걸었다. 물론 단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며 걸었다. 길 가의 개들은 피부병으로 군데군데 종기가 있었고, 신으로 추앙 받으며 길가를 배회하는 소들은 쇠똥이 엉덩이에 덕지덕지 붙은 세균의 온상인 듯싶었다.

그런데 번쩍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신비가 아닌가? 더러움을 더러움으로 생각지 않으며, 사람과 짐승과 그냥 사이좋게 자유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것. 개도 소도 사람이 다니는 길 한가운데 눕고 싶으면 눕고, 가고 싶으면 어슬렁어슬렁 간다. 아무도 탓하는 사람이 없고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짐승들도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이것이 인도의 정신일까? 이 자유로움은 무엇인가? 당장 끼니가 없어도 걱정은커녕 평화롭기만 한 그들이다. 크고 둥근 눈에 기다란 속눈썹과 까만 눈동자는 평화를 그득 담고 미소를 머금는다. 진심으로 "나마스테"(당신 안의 신을 찬미한다)를 말하는 느낌을 준다.

 

간디박물관

간디박물관

간디 박물관은 대단했다. 간디 일생의 사진과 그림, 행적 보도 자료 등으로 꾸며 놓았는데, 그 규모가 어마하다. 간디를 모르는 그 누구라도 돌아보면 간디를 짐작할만하다. 구자르트 주의 고위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집안의 전통을 이어 그도 관리가 되어야 했지만, 그의 일생은 순탄치 않았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신지식을 배웠으나 모든 지식과 생활 습관을 과감히 내던졌고, 양복을 벗어 버리고 천민의 생활로 의식주를 전환하여 무에서 깨달음을 추구하고, 헐벗고 무지한 민족의 지도자로 추앙되기 까지 간디의 인생여정은 거의 신화적이다. 그는 원래 소심하고 왜소하며 머리도 썩 좋지 않았다. 그는 무수히 방황하였고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인도에서 간디는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신이다. 간디의 화장터를 광활한 성지로 가꾼 그들의 마음으로도 알 수 있다. 국민들이 굶어 죽고 가난에 찌들어 생활하지만 공적인 거룩함의 표시에는 아낌이 없다. 잘 가꾸어진 정원과 나무들, 넓은 잔디밭(거대한 운동장 크기)을 둘러쳐 있는 사각의 성곽 안에는 그윽한 향과 음악으로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돌무덤에는 그가 죽어 가며 외쳤다는 "오, 라마"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등불이 밝혀져 있으며 늘 신선한 꽃들로 장식 되어 있다. 무덤의 돌에 이마를 대고 무릎을 꿇은 채 오래 기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지금도 나라를 위해 가난한 백성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간디는 죽어서도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타지마할

버스로 4시간을 달려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명한 타지마할을 관람했다. 경비가 삼엄했다. 세계인을 탄복하게 하는 그들의 자랑, 타지마할은 신비롭다. 그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과 웅장함에 놀라고 대리석에 새긴 문양의 정교함과 섬세한 아름다움에 찬사를 금 할 수가 없으며, 왕비를 위해 세웠다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 감동한다. 당시에 이러한 건축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22년 동안 국가의 재정이 흔들릴 정도의 거액을 들였으며 제국의 온갖 보물과 미술, 공예품을 한데 모은 것이라 한다.

얼마나 많은 인명이 희생 되었을까? 황제는 타지마할이 완성되자 건축기사를 죽였다고 한다. 유일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 무굴의 황제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 왕비의 묘관이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세계의 문화유산이란 말이 결코 무색하지 않다. 자므나 강이 내려다보이는 아그라포트 궁을 관람하는 길에서 10여명의 한국인 승려를 만났다. 그들에겐 한국인 가이드가 붙어 다니며 상세히 설명을 해 주고 있었는데 귀동냥을 하며 쫒아 가다가 문득 의문이 일어났다. 우리는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계속)



이경자/ 의정부교구 마두동 성당 신자, 예수살이공동체 회원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