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민 신부] 11월 30일 (대림 제1주일) 마르 13,33-37

신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그리고 신부가 되고 나서도 대림시기면 등장하는 “깨어 있어라”는 말씀을 신앙적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깨어 있어라”는 말씀을 언제나 저는 같은 굴레 안에서 묵상해 왔는데, 그 굴레란 ‘바쁜 생활 때문에 주님을 잊고 긴장이 풀려 죄 짓지 않도록, 매 순간 주님을 기억하며 생활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라든가 ‘언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해 하느님을 만날지 모르니 하루하루 신앙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등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배워 온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따른 것이니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해마다 접하며 강론을 준비하면서도, “신앙인”이란 말에 대한 저의 고정관념 때문에 정작 저 자신은 여태껏 절반만 깨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컴퓨터가 만든 가상의 세상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은 모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주인공이 완전히 깨어나고 나서야 알아챈 것처럼 말입니다.

제한된 신앙인의 틀을 깨고...

올해 새롭게 시작한 소임 덕분에 저도 제가 만든 ‘신앙인’이라는 제한된 틀에서 어느 정도 깨어 나온 것 같습니다. 그간 저는 ‘신앙인’이란 말을 떠올릴 때면, 항상 성당 안에서 합장을 하고 머리 숙여 기도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제일 먼저 떠올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일과는 조금 거리를 둔, 자신의 ‘신앙’에 관한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성당 바깥 세상에 나가 심각한 고통 중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예수님 때문에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비로소 제 자신이 온전한 '신앙인'으로 깨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불의한 일'이었다는 표현만으로는 성에 안 차는, '악한 일'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일을 당하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으로 다가가 힘을 보태줄 때에야 비로소 제 스스로에게 ‘신앙인답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든 정의롭지 못한 세상 문제에 대해서든 내적인 기도로만 아니라 외적인 기도, 즉 실천과 연대까지 병행될 때 온전히 ‘깨어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2012년 10월 22일 정의구현사제단이 유신 40주년을 맞아 시청광장에서 연 시국기도회 ⓒ지금여기 자료 사진

물론, 우리 교우 분들 대다수는 고통 받는 이들에게 자비로운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지난 주 복음에서 들은 대로 배고프고, 목마르고, 몸 둘 곳 없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고통 받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 그리 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세상 문제에 깊이 있게 관심을 갖거나, 고통 받는 이들과 직접적으로 시간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은 바쁜 생활 때문에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저도 일 때문에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지 만일 예전 소임 그대로였다면 저 역시도 여전히 제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력이 됨에도 사회 문제들을 회피하거나 어려운 이들로부터 관심을 돌린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요. 특히나 신앙인임에도 불의한 사회 문제를 위해 활동하는 이들에게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큰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이라면 내 자신의 구원 문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구원 문제에도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구원의 좁은 문에 우리 자신도 들어가기 위해 애써야 하겠지만,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도 마땅히 그 좁은 문으로 안내해 줘야 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세상 안에서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역할은 구원의 문지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교회 바깥의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깨어 있어야 그 문지기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마르 13,34)

 

 
장경민 신부 (시메온)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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