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을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얼마 전 오랜만에 시원스레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원주 치악산 자락을 다녀왔다. 굳이 그곳에서 회합을 가져야 한다는 한 후배의 지극정성 탓이었다. 투덜거리며 갔지만 막상 도착해서 보니 그때야 후배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가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단풍으로 물든 가을산은 무척이나 아름다워 탄성 밖에는 자아낼 게 없었다. 아, 하는 내 목소리도 그리 곱게 물들 수 있을까. 생활과 사회에 찌든 나도 저리 붉게 나를 갈무리 지을 수 있을까. 마음이 눅어졌다.

그 중에서도 발을 담그던 계곡가, 집채만큼이나 큰 바위를 헐벗고 검어진 손아귀로 부둥켜 안고 오른 담쟁이 넝쿨손들이 빨갛고 노랗게 물들어 있는 것은 가히 진경이었다. 무슨 생명이 그곳에 흐를 수 있을까 싶게 넝쿨들은 삐삐말라 있었다. 마른 그 손으로 사람도 오르기 힘든 가파른 바위를 올라 그곳에 생명의 숨결을 피우고 있는 담쟁이넝쿨이 무슨 성인처럼 느껴졌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고 한다. 내가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고 한다.

난 도대체 어떤 벽 앞에서 절망으로 떨군 고개일까? 불혹이라는 마흔에 무엇에라도 다시 혹해 나도 저 담쟁이처럼 어떤 벽들을 넘어서고 싶다. 결국 그 너머에 다른 산이 있더라도, 있더라도 말이다.

송경동 / 시인. 시집으로 <꿀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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