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보는 파주 ‘신앙의 길’

천주교 의정부교구는 최근 7권짜리 소책자를 발간해 '신앙의 길'이라는 도보순례 길을 크게 소개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이 도보순례 길 중 제6 구간을 순례하는 신자들과 함께 걸어 보았다.

6구간은 경기도 파주시 금곡리에 있는 쇠꼴마을(쇠골공소 입구) 인근부터 시작해 자운서원, 법원리성당, 초리골을 거쳐 갈곡리공소로 이어지는 코스다.

의정부교구는 이 구간에 ‘사랑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금도 신앙 공동체를 이어오면서 여러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순교자를 배출한 갈곡리공소를 향해 가는 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지도상 거리는 약 14.5킬로미터.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며 천천히 걸으니 5시간 이상이 걸렸다.

▲ 자운서원 앞에서 파주 법원읍내를 향하는 길을 한 남자가 걷고 있다. ⓒ강한 기자
한국 관광공사가 제공하는 여행지 정보 ‘대한민국구석구석’에 따르면 쇠꼴마을은 비무장지대에 접해 있는 농장으로, 예로부터 소먹이풀이 많은 깊은 산골로 알려진 데서 나온 지명이다. 6구간 도중에 있는 파주 율곡 이이 유적지에는 자운서원과 함께 율곡 선생, 신사임당 등을 모신 가족 묘역이 있다. 최근 설립 50주년을 맞은 법원리성당은 부설 소화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9년 드라마 ‘아이리스’를 촬영했던 곳이다.

의정부교구 ‘신앙의 길’ 안내 책자에 따르면 6구간의 목적지인 갈곡리공소는 구한말 박해를 피해 들어와 옹기그릇 만드는 일로 생계를 잇던 갈곡리, 신암리 일대의 교우촌에서 비롯됐다. 칡의 계곡, 칡울이라고도 불렸으며, 공소 이름도 한 때는 ‘칠울공소’였다. 제8대 서울대목구장 뮈텔 주교의 일기에 1918년 12월 칠울공소를 방문한 기록이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는 1940-50년대 순교자 38위 중 한 명이며 덕원수도원의 첫 한국인 사제인 김치호 신부가 이곳 갈곡리 출신이다.

“길치 아니라고 자신했건만, 1개 구간 완주하니 해가 졌다”

신앙의 길 6구간을 걷고 싶다면 경의선 파주역, 월롱역, 문산역 등에서 버스를 타고 파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 근처를 찾아가면 된다. 포털사이트 검색에서는 버스로 1시간 거리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30분 안에 갈 수 있었다.

파주역에서 ‘금곡2리, 파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 정류장까지 가면 의정부교구가 제시한 6구간 출발 지점인 금곡교 앞까지 5분 거리다. 금곡교를 건너기 전 쇠꼴마을 가는 길이 있는 삼거리가 출발 지점이다.

금곡 평강교회, 파주시종합사회복지관 앞을 지나 걷다 보면 파주 귀농학교 캠핑장이 오른쪽에 있다. 오르막길 끝까지 오르면 군부대 정문이 나오는데, 부대 주위를 두른 철조망을 따라 왼쪽으로 걷는다. 사방산 정상까지 0.9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올 때까지 2킬로미터 쯤 걸어야 한다.

▲갈곡리공소로 가는 산길에서 두 할머니가 무언가 수확해 담은 자루를 끌고 내려가고 있다. ⓒ강한 기자
그러면 술이홀로 1333번길과 문산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못말길이 만나는 지점에 이르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자운서원을 향해 남쪽으로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 걸어야 한다.

도중에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포장도로도 있으니 길을 잘못 들지 않도록 주의한다. 책자 21쪽에는 술이홀로 1333번길과 문산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못말길이 만나는 지점 이후에 “여기서 왼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작은 연못이 있고 정자가 있다”고 간단히 언급돼 있지만, 단순히 왼쪽으로만 걸으면 지도에 없는 길로 잘못 들어설 수 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책자 개정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서술하면 좋겠다.

안내 책자에 언급되는 “작은 연못”과 “정자”는 고개 너머 파주 동문리 서원마을(자운서원로 234번길)에 있다. 여기서 잠시 쉬어 가도 좋지만 인근에 축사가 있어 공기가 좋지 않았다.

큰길(자운서원로)로 나가 동쪽(왼쪽)으로 300여 미터 걸어가면 자운서원 입구다. 자운서원 앞에서 법원읍내까지 이어지는 길은 오른편으로 넓은 인도가 있어서 걷기 좋다. 율곡아파트와 법원여자중학교를 지나 천현초등학교 건너편에 있는 법원리성당까지 3킬로미터 가까이 걸어야 한다.

성당 앞에서 큰 길을 따라 동쪽, 갈곡리를 향해 걷다가 파주 시립 법원도서관 앞에서 초리골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동북쪽으로 걷는다. 두루뫼 박물관을 지나 2.5킬로미터 가까이 걸으면 은막골과 문터골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문터골 쪽으로 방향을 잡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 갈곡리공소를 향하는 산길 입구의 나뭇가지에 의정부교구 ‘신앙의 길’을 알리는 노란 리본이 묶여 있다. ⓒ강한 기자
이 근처부터 산길이기 때문에 책자에 실린 작은 사진과 안내 문구에 의존해 걸어야 했다. 본격적인 산길로 오르는 길목부터는 나뭇가지에 묶어 놓은 노란색 ‘신앙의 길’ 리본을 가끔씩 만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목적지인 갈곡리공소까지 직선거리로 3킬로미터가 안 되는 짧은 구간이지만, 의정부교구가 소개한 순례 길은 사람들이 흔히 다녀 잘 닦인 산책로는 아니다. 더구나 처음 걷는 야산길이기 때문에 안내 책자와 가끔씩 나타나는 리본을 확인하며 길을 더듬듯이 걸어야 했다.

이 산에서 내려온 뒤에는 갈곡리 숲속의전원마을 입구를 지나, 아직 공사 중인 큰 도로 밑을 지나는 굴다리를 거쳐 야산을 하나 더 넘어야 갈곡리공소에 도착할 수 있는데, 이 길은 과연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몇 번씩 의심할 만큼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깜빡 길을 잘못 들어가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을 듯한 개통 전인 도로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곳에서는 특히 스마트폰의 GPS 장치와 지도 앱을 활용해 자기가 지금 있는 위치와 목적지의 방향을 확인하며 걷는 것이 좋겠다.

오전 10시 25분 금곡교 근처에서 출발한 기자는 오후 5시 해가 질 무렵에 갈곡리공소에 도착했다. 제대 봉사와 반장을 겸하고 있다는 정 마리아 씨가 공소 성당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었다. 공소 순례자를 위한 전대사 미사가 봉헌되는 오후 2시까지 이곳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3시간이 늦어졌다.

예상보다 멀고 험한 ‘신앙의 길’
등산화 준비, 지도 확인은 필수

기자 스스로 ‘길치’는 아니라고 자신했기에, 안내 책자와 스마트폰, 카메라, 물 한 병만 들고 혼자 6구간을 걷기 시작했지만, 안내 책자에만 의존해 길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 갈곡리공소 ⓒ강한 기자
안내 책자에는 약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적혀 있지만 이는 성인 남자가 쉬지 않고 걸었을 때 가능한 시간일 것 같다. 식사와 휴식, 성당이나 공소에 들러 기도하는 시간을 포함해 6시간 정도로 넉넉하게 일정을 정해야 할 것이다. 순례 길 도중에 화장실이 잘 갖춰진 곳은 자운서원, 법원읍내의 농협, 갈곡리공소 정도다.

이 구간을 처음 방문하거나 도보 여행에 자신 없는 순례자는 이곳 지리에 익숙한 사람과 동행하거나, GPS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과 지도 앱을 적극 활용하면 좋겠다. 낙엽 쌓인 산길도 두 번은 오르내려야 하니 등산화 신기를 권한다.

앞서 2014년 9월 의정부교구 순교자공경위원회는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며 도보순례를 할 수 있도록 7개 구간으로 구성한 ‘신앙의 길’ 안내 책자를 제작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제1-3구간은 황사영 알렉시오의 묘와 103위 성인 중 한 명인 남종삼 요한 묘역, 양주관아를 순례하는 길이며, 4-7구간은 뮈텔 주교의 공소 방문 길을 중심으로 신암리성당과 갈곡리공소 등을 방문하는 길이다.

이 길은 그동안 교구 신학생들이나 소수 신자 모임에서 걷던 순례 길이었다. 순례 안내 책자와 별도로 발간한 팸플릿에 순례 완주 후 도장을 찍을 수 있도록 했으며, 7개 구간을 완주한 사람은 순교자공경위원회를 통해 교구장 축복장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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