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댕 ~ 지나는 여름을 보내며 태풍이 오지 않은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아니 이번 여름엔 색다른 두 개의 태풍이 우리를 강타하고 지났다. 삼삼오오 짝지어 에어컨이 팡팡 터지는 극장에서 “명량”을 마주하고 천행으로 기적을 일으킨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보며 가슴을 쓸어안거나, 밤잠을 설치며 새벽부터 광화문 광장으로 나와 삼삼오오 맨바닥에 앉아서 그 어둡고 모진 박해의 시절에 순교자들이 당했던 참수의 기억을 보내고 북한산에서 동이 트는 것을 보며, 그 시대를 겪어낸 선조들의 영혼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는 것….

100 시간의 밀월을 마치고 오실 때처럼 가볍게 다시 가신 그분을 기억하려는 말 말 말과 성찰이 홍수를 이룬다. 여기에 무엇을 더 보태야 할까? 끝없이 보태어도 그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기에는 어림도 없고, 한 마디 말을 더 해서 그 감동이 증폭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흰 수단자락을 펄럭이며 닷새 동안 한국의 하늘과 땅을 부지런히 오가던 교종을 직접 만났던 이들은 좀 묵직하고 단번에 믿음을 주는, 이 슈퍼맨의 활동에 쇼크를 받고 황홀했던 기억에 아직 취해 있을 것 같다. 왜 그토록 어려워 보이던 일들이 파파 프란치스코 앞에서는 눈 녹듯이 쉽게 무너졌을까? 왜 그분은 그렇게 쉽게 푸는 일들을 우리는 두 손 놓고, 그저 난감하게 보고만 있었을까? 그런데 돌아보니 그분이 급하게 다니며 해결했던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여전히 우리 옆에 묵은 빨래처럼 쌓여 있다. 꿈이었나, 꿈에서 잠시 천사가 나타났던 것인가?

바티칸 근처의 어느 담벼락에 그려진 슈퍼맨 프란치스코를 언급한 보도와 관련하여 이탈리아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분께서는 그렇게 표현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고 잘라 말한다. 그럼에도 우선 느껴지는 그분의 여유와 넉넉한 웃음은 매끈한 슈퍼맨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냥 한번 왔다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부르면 다시 달려와서 그 멋진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이제 괜찮아!” 하고 토닥거려 줄 것만 같은 기대를 주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컴퓨터를 검색하면 그분의 그 웃음을 다시 만날 수 있고, 위로 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따듯한 불빛이 새 나오는 창문 아래 앉아서 성냥을 다 그어버린 성냥팔이 소녀가 느꼈을 그 낭패감이 더 크고 실감나게 다가온다. 현실은 차가운 돌바닥에서 잠이 들것이고, 아마도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그리고 여전히 무기력하게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 8월16일 124위 시복미사가 봉헌되는 광화문 광장에 이순신 동상이 보인다. ⓒ교황방한위원회

두려움과 무기력을 바꾸어 놓은 역사의 인물인 이순신 장군 앞에 교종 프란치스코가 나타난 것은 바로 “천행”이라 부를 수 있는 사건이 우리 눈앞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죽음을 담보로 곡기를 끊고 그 원인을 알려 달라 절규한지 이미 한 달이 넘게 지나고 있었다. 무기력한 노동자에 딱히 선하지도 않다고 뒷말이 떠도는 그 수척한 아버지 앞에 교종이 멈춰선 것이다. 그의 손을 잡고, 그와 눈을 맞추며, 그의 하소연을 담은 편지를 받아서 깊숙이 접어 넣었다. 불가능한 것으로 설마 했던 그 기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 옛날 이미 기적을 이루었던 그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아래에서….

어떻게 그 감격을 잊을 수 있을까? 그 천행의 사건을? 그런데 영화에서 이순신이 그의 아들에게 되묻는 장면을 기억한다. “무엇이 ‘천행’이었겠느냐?” 회오리가 일어난 물살이었는가? 아니면, 그 물살에 장군이 탄 배가 휩쓸리지 않도록 줄을 매고 나누어서 끌어당긴, 그 도망가다 돌아온 민초들의 결심과 행동이었겠는가?

▲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요한 게오르그 슈미트너(1625~1707)
왼쪽의 성화는 1700년경 독일에서 그려졌다고 하는 “매듭의 성모님 상”으로 교종 프란치스코의 집무실에도 그 복사본이 걸려 있다. 이 성모님과 함께 교종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종이 학생 시절에 독일에 갔다가 이 성화를 알게 되었다 하니, 해결해야 할 난제들을 풀기 위해서 성모님의 힘을 빌리는 것은 그분의 오랜 습관이었던 것 같다. 지혜와 인내로 얽힌 매듭을 풀듯이 한 땀 한 땀 풀어 나가는 것, 얽힌 자리인 매듭에 손을 대고 살살 달래듯이 풀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파파 프란치스코가 살아 내는 일상의 모습일 것 같다.

“매듭 푸시는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의 한 대목을 인용해본다. “ … 당신은 제가 얼마나 이 얽혀있는 인생의 매듭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지 아십니다. 마리아,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의 고통의 매듭을 풀어 주시도록 의탁하신 어머니의 손에 저의 인생을 의탁합니다. 아무도, 악마까지도 당신의 보호하심을 빼앗지 못합니다. 당신 손으로 풀지 못할 매듭은 하나도 없습니다. 강한 어머니,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당신의 아들 예수님의 전구자시여, 오늘 이 매듭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 손으로 풀어 주소서. 당신은 저의 희망이옵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가 광화문에서 금식하는 유민이 아빠의 손을 잡아주기 까지는 여름휴가를 한국교회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 그분의 결정이 있었다. 한없이 너그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가진 그분에게서 또 다른 얼굴을 본 것은 주교회의를 찾았을 때였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그분의 준엄하고 엄정한 얼굴이 화면에 드러난 것이다. 자신의 사제들에게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상을 요청한 것이다. 그 요청은 일생을 살아낸 교종의 삶을 담아내는 일설이었다. 그리고 그 길은 복음서에서 찾은 답을 따라서 그대로 일생의 살아온 그분의 단순함과 겸손함의 요청이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30)

전쟁 한가운데에서 백성을 섬기는 것이 곧 왕을 섬기는 것이라고 마침표를 찍는 “명량”의 이순신은 자신의 자리인 바다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적군을 맞아 싸워서 이기는 기적을 이루어 냈다. 그가 자신의 자리를 지켜 냈기에,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이루어 냈기 때문에 기적 같은 천행이 그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름 없이 살아 내는 가톨릭의 수도자들이 금식을 하는 유민이 아빠 곁에서 함께 금식하며 기도했기에 광화문의 농성장은 길거리 미사가 봉헌되는 교회가 될 수 있었다. 수도자들의 묵묵한 일상이 세상을 교회로 살려 낸 것이었다. 그리고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아시아의 젊은이들과 순교한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달려온 교종 프란치스코는 과거-현재-미래를 한꺼번에 보듬어 안으며 위로와 회개의 기도를 통해서 희망을 함께 나누었다. 어디든지 풀어야 할 매듭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겸손한 일상 안에서 광화문의 천행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분의 천행은 이렇게 역사와 만나는 순간 만인 앞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일탈이 일상이 되어 버린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는 일상의 감각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묵묵히 일상을 사는 이들이 바보로 취급되는 사회. 이 사회와 맛을 잃은 소금 같은 교회에게 정상 감각을 찾아 자신의 멍에를 메고 묵묵히 일상을 사는 것이 바로 복음의 길이다. 그리고 매듭을 하나씩 풀어 나가는 성모님과 함께 100 시간의 일상 안에서 기적 같은 천행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모델로 보여준 것이 바로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이었다. 여러 개의 응급 병동을 뛰듯이 다녀가신 후에도 여전히 돌보아야 할 환자들은 우리 곁에 있다. 이제 상처 입은 치유자가 그렇게 하듯이 스스로의 상처를 짬짬이 돌보며, 온 힘을 다해서 중환자들을 돌보아야 할 차례이다. 많은 숙제를 남겨 주고 가셨다는 어느 주교님의 감회에 공감이 가는 이유이다.

최우혁 (미리암)
교황님의 한국방문에 깊이 감사하며 자신에게 나누어준 숙제를 열심히 하기 위해 일상을 반성하고 있는 평신도 여성신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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