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은 시설에 갇혀 살고 싶지 않다"

▲ 장애인 단체 회원들은 6일 명동성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현진 기자

“교황님의 꽃동네 방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시설 밖으로 나오기를 열망하는 수많은 장애인들의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는 꽃동네 거주 탈시설 장애인 모임’을 비롯한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3시 명동성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꽃동네 식 시설 수용이 이미 전 세계적으로 시대착오적임에도 교황이 방문하면 이를 정당화하게 된다고 가톨릭교회의 무신경함을 지적했다.

꽃동네 거주 탈시설 장애인 모임 회원들은 최소 6년에서 26년 간 꽃동네에서 살다가 자립한 이들이며, 꽃동네의 폐해를 직접 겪은 당사자들이다. 이들은 “교황의 방문은 탈시설을 바라는 장애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장애인들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립해서 살도록 하는 시대적 흐름에도 역행하는 일”임을 강조했다.

‘장애와 여성 마실’ 김광이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장애인들을 단순히 시혜의 대상으로 보고, 온정을 베푸는 수단으로 여기는 가톨릭교회의 태도를 성토했다.

김 대표는 “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은 왜 평생 시설에 갇혀 사는 장애인들의 문제와 꽃동네에 정당성을 주는 교황 방문 문제에 나서지 않는가”라고 물으면서,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또 “장애인들은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얻어먹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세상 속에서 스스로 먹고 살기를 바란다”면서, “이미 탈시설 자립으로 주체적인 삶을 사는 장애인들이 있다. 교황의 방문으로 장애인들이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꽃동네의 비리가 덮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꽃동네에 수용되어 있을 때는 근처 공원 정도만 나갈 수 있었어요. 그럴 때도 부탁을 해야 겨우 나갈 수 있었어요. 내 이야기는 항상 누군가를 통해서 해야 했고, 대부분은 내 말을 진득하게 들어주지 않았어요.”

꽃동네에서 26년간 거주하다가 탈시설 자립한 지 6년째인 유명자 씨는 다시 시설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는 것이 죽음보다 두렵다면서, “현재 활동보조서비스 문제와 부양제 폐지를 촉구하는 광화문 농성장에 교황이 방문하기를 원한다. 그곳에서 장애인들이 농성하는 이유와 장애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기자회견 뒤, 참가자들은 교황이 꽃동네를 방문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서한을 염수정 추기경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서한은 교구청 직원을 통해 전달됐다. ⓒ정현진 기자

교황 꽃동네 방문, 시대착오이며 UN 장애인권리협약에 어긋나

이어 인권재단 사람 이일영 이사장은 2009년 비준된 UN 장애인권리협약을 들면서, 이미 국제사회는 장애인들이 독립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으며, 이는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위해 가장 우선시되는 권리라고 설명했다.

이일영 이사장은 사회복지에서 이미 장애인 시설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하면서, “교황의 꽃동네 방문 여부보다, 이곳에서 장애인들이 하는 이야기가 교황에게 전달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교황이 꽃동네를 방문하더라도, 장애인과 시설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 역시, 지난 2004년 한국에서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역시 장애인의 사회 참여와 선택을 존중해 지역사회에서 살도록 하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황의 꽃동네 방문은 국제 장애인권리협약을 위반하는 동시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목적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 뒤,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는 이유와 의견을 담은 서한을 염수정 추기경에게 전달하기 위한 면담을 청했다. 그러나 명동성당 입구를 막은 경찰과 대치한 끝에 교구청 직원을 통해 서한만 전달했다.

▲ 이날 기자회견은 명동성당 앞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경찰이 명동성당 앞을 봉쇄하고 입구를 막아섰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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