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출판사, 사제들의 인생 모토 담은 <사제의 첫 마음> 출간

▲ <사제의 첫 마음> 가톨릭출판사, 2014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9월 19일 새 주교 선임을 위한 회의에서 주님에게 목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제가 양을 보살피는 사목은 “넓은 아량으로 환대한다는 뜻이며, 양과 함께 걸어간다는 뜻이고, 양과 함께 머문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교황은 주교들에게 먼저 “나는 나를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현관문을 열어놓고 있는가, 아니면 닫아걸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사목자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을 이해하고 돕고 이끌어 줄 수 있는 형제나 친구처럼, 더 나아가 아버지처럼 기쁨과 희망, 고통과 슬픔을 그들과 나누면서 함께 걸어야 한다”면서, “함께 걷는 것은 사랑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좋은 사목자는 백성들 가운데 머물며 ‘양의 냄새’가 나야 한다고 전했는데, “교구의 변두리로, 특히 아픔과 고독이 넘치고 인간의 존엄성마저도 무시당하는 온갖 ‘삶의 변두리’로 내려가라”고 청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제발 부탁하건대, 우리 사목자들은 ‘군주와 같은 마음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 사목자들은 교회와 혼인한 사람이기에 교회보다 더 아름답고 부유한 것을 갈망하는 야심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야심을 품는 것 자체가 추문”이라고 다그쳤다. 이어 “출세주의는 암”이라며 “우리는 말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증거로 우리 백성을 이끄는 스승이고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다. 교황은 사목자들에게 “애정과 자비로, 아버지의 강직함과 어머니의 부드러움을 겸비하는 태도”를 강조했으며, “자신의 한계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유머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유머는 우리 주교들이 주님께 청해야 하는 은총”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출간된 <사제의 첫 마음>(가톨릭출판사, 2014)에는 이런 사제들의 고백이 담겨 있다. 406명의 사제가 들려주는 ‘내 인생의 모토가 되어 준 한마디’를 모은 책이다. 주로 사제 서품 성구를 소개하고 있는데, “저는 멍텅구리,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당신 앞에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늘 당신과 함께 있어 당신께서 제 오른손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당신의 뜻에 따라 저를 이끄시다가 훗날 저를 영광으로 받아들이시리이다”(시편 73,22-24)라는 서품 성구를 정했던 서상진 신부(수원교구)의 겸손한 고백도 들어 있다.

지성용 신부(인천교구)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이란 서품 성구를 소개하면서, 신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선종한 형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편지에 옮겨 적은 <준주성범>의 한 구절을 되새겼다.

“사랑이 있는 자는 날아가고 달음질하고 즐거워하며, 자유스럽고 또 거리낌에 붙잡히지 않는다. 모든 것을 위하여 모든 것을 주고, 모든 일에 모든 것을 얻으니, 모든 선이 흘러나오는 지존하신 분에게 모든 것을 초월하여 고요히 잠겨 있는 까닭이다.”

또한 부제품을 넉 달 남기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아! 난 네가 사제가 되어도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는 신부가 되었으면 좋겠구나!”라는 유언도 새겨두었다.

▲ 사제서품 후보자들은 주교와 사제단 전체의 안수를 받는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이기우 신부는 서울대교구에서 오랫동안 도시빈민사목위원회와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는데, 그의 서품 성구는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루카 4,18)여서 서품 성구와 사목적 태도의 일관성을 엿볼 수 있었다.

한창현 신부(대구대교구)의 경우에는 신학생이 되기 전인 1987년 노동자대투쟁 시기에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영향을 미쳐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마십시오”(2테살 2,10)라는 구절을 서품 성구로 삼았다. 신영복 선생의 “관계의 시작은 입장의 동일함이다”라는 말 때문에 서품 성구를 정한 사제도 있었다. 김정훈 신부(마산교구)는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읽고 “저 자신이 앞으로 사제의 삶을 살아가면서 ‘위(up)’에 있는 자가 아니라 ‘안(in)’에, 그리고 ‘함께(with)’ 있는 자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기 위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요한 1,14)를 선택하기도 했다.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영선 신부는 부제로 서품되는 날 제단 앞에 엎드리고 있을 때 불쑥 ‘혁명을 시작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나를 너 앞에 엎드리는 것, 이건 혁명입니다. 존재의 혁명이고 삶의 혁명입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혁명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를 성전에 봉헌하는 마리아에게 시메온 예언자가 들려준 말씀을 평생의 길잡이로 삼았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이영선 신부는 이 당시의 경험을 “진리가 삶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첫 번째 절을 올립니다”로 시작해 “내가 밝힌 생명평화의 등불로 인해 온 누리의 뭇 생명들이 진정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발원하며 백 번째 절을 올립니다”로 끝나는 생명평화를 위한 백배를 하면서 다시금 깨우쳤다고 고백했다.

박창신 신부(전주교구)는 사제 생활을 하면서 매번 새로운 인연을 맺는 과정에서 늘 되새기는 모토가 “그저 신자들을 사랑하면 돼”라고 소개했다. 어느 원로사제가 자신에게 전해 준 ‘짧고도 강한 메시지’였다. 사목의 중심에 ‘사랑’이 없으면 ‘사목’이 아닌 ‘일’ 중심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현 요안 신부(제주교구)는 “나는 그리스도 대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 3,8-9)라는 성구를 서품 상본에 담았다.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1,3)라는 말을 모토로 삼았던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다른 주교들의 서품 성구도 담아놓은 이 책은 사제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이 무엇인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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