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가슴으로 읽는 <복음의 기쁨>…김항섭 한신대 교수 강의

“만약 이번 교황이 지금처럼 우리가 열광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면, 교황에 대한 관심과 갈채는 거두고 각자 있던 자리에 안주할 건가요? 교황도, 주교도, 사제도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와 하느님이 오직 일대일로 만나는 관계였지요. 자신이 신앙대로 살지 않으면서 교황님과 본당의 미운 신부님 핑계를 댈 수는 없습니다.”

▲ 김항섭 교수
김항섭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는 “우리는 예수님 앞에 홀로 서야 하며 결국은 교황이 아니라 나의 문제이다”라는 말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읽는 <복음의 기쁨>’ 다섯 번째 강좌의 문을 열었다. 덧붙여 “평신도로서 뚜렷한 자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역할과 책임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겨야 진보적인 교황을 맞이한 의미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김 교수는 ‘자본의 우상 숭배와 배제(척)의 경제’를 주제로, 성서적 관점으로 ‘우상숭배’라고 볼 수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강의했다.

김 교수는 시장경제에 대해 “단순히 말해서 노동자에게 임금을 적게 주고, 자연을 공짜로 이용해서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 하며, 이런 관점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간의 보편적인 구원과 해방을 지향하는 종교라면, 인간과 자연을 폭력적으로 짓밟는 경제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생명보다 수익성 고려하는 “고삐 풀린 시장경제”
세월호 참사의 배경 중 하나

이런 맥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고삐 풀린 시장경제와 금융투기”라는 말을 했는데, 김 교수는 특히 ‘고삐 풀린’이란 표현에 주목한다. “이 말은 경제와 금융투기에 아무런 규제가 없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신자유주의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규제완화’, ‘규제철폐’라는 용어에서 마치 억압에서 풀려나는 해방이나 자유를 떠올리면서 막연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비판했다.

김항섭 교수는 “세월호 침몰 사건 뒤에도, 2009년 이명박 정부가 기업 비용을 200억원 절감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여객선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리는 ‘노후 선박 규제완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규제완화는 국민들의 안전이나 생명이 아니라 기업의 수익성만을 고려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규제완화와 철폐에 매달리는 이유가 시장경제를 맹신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김 교수는 “시장경제가 최선의 방책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시장의 폐해나 부작용에 대해 말하면 ‘그것은 시장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비판했다.

교황이 ‘시장독재’라고 비판한 신자유주의에서는 시장이 절대적인 규칙이고 유일한 해결책이다. 김 교수는 “시장경제와 다른 주장을 하면 좌파, 종북, 빨갱이라고 쉽게 규정지으며, 시장경제라는 유일한 선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은, 비록 그것이 폭력적일지라도 윤리나 도덕을 넘어 그 자체로 정당화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는 구조조정의 논리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관점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 김항섭 교수는 “평신도로서 뚜렷한 자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역할과 책임을 실천해 진보적인 교황을 맞이한 의미를 살리자”고 당부했다. ⓒ배선영 기자

또한 교황은 먼저 성장하고 나중에 나누자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현실에서 검증된 바 없는 이론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낙수효과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기업이나 부유층이 부를 늘리면 그 혜택이 자연스럽게 중소기업이나 서민에게도 돌아간다는 논리”라고 설명하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떨쳐버리고, 마음대로 소비생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이것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항섭 교수는 “시장이나 자본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경제체제는 돈과 권력을 상대화하고 인간을 조작하고 타락시키면서 윤리조차 거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더 나아가 하느님마저도 이를 통제할 수 없으며, 결국 하느님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시장의 신, 자본의 신을 세운다”고 역설했다.

자본과 시장의 신이 만들어낸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보통 군비경쟁과 교육을 제시하는데, 교황은 이를 정면으로 반대한다. 군비경쟁은 더 심각한 경쟁을 조장할 뿐이며, 교육은 가난한 이들을 길들여서 시장경제체제의 지배계급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로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눈앞의 성과, 수익이 없더라도
장기적 전망 속에 천천히 일하는 데서 대안 찾아야

“<복음의 기쁨>에 제시된 ‘평화와 정의와 형제애를 이룩하기 위한 네 가지 원칙’을 보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지침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 김 교수는 특히, 첫 번째와 세 번째 원칙에 주목한다.

김 교수는 첫 번째 원칙인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에서 당장의 성과나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시장경제에 대한 방안을 찾았다. 이 원칙은 ‘눈앞의 즉각적인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천천히 확실하게 일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당장 수익을 내지 않으면 안 되는 현 경제체제는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기 어려우며 이는 곧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독재가 들어설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해준다”고 지적했다.

세 번째 원칙인 “실재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를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대한 이야기라고 접근한 김 교수는 “우리 사회를 연구해 나름의 이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이론을 들여오는 데에만 급급한 지식인들이 개념 정의와 분류하는 것에만 그치고 사람들의 행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죽은 학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진보적인 사회운동이나 천주교 사회운동이 약화된 것이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 서양의 학문을 내세우며 대중들이 내 생각을 이해 못하고 따르지 않는다고 탓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성찰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