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공사가 많이 진행되었다고 들었다. 이제는 아무리 반대해도 소용이 없는데 계속 반대 할 필요가 있나?” 수도회 동료가 저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제가 답했습니다. “그렇겠지, 지금 정부의 성향을 보아서는 아무리 반대해도 공사를 중단하지는 않겠지. 그러나 정부가 공사를 중단하지 않더라도 편법, 불법, 위법 공사로서 부당함은 사실이므로 반대하고, 그 사실을 알리는 일은 계속해야 한다”라고.

사실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공사를 반대 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이미 널리 알려진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절차의 부당성’ 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생태계, 경관 1등급의 강정 구럼비 앞바다를 ‘절대 보전지역에서 해제’하려고 제주도가 2009년 12월 제출한 동의안을 도의회가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날치기로 통과시킨데 있습니다.

강정마을은 ‘절대보전지역 해제 무효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은 2012, 7, 5일 강정마을 주민들의 청구를 ‘원고 자격이 없다’며 기각 했습니다. 기각 이유는 강정 주민들이 ‘근거법령 또는 관계 법규에 의하여 보호되는 개별적, 직접적, 구체적 이익이 없다’고 보이므로 원고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006년 대법원은 행정소송법 개정의견서를 통해 원고자격 범위를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 대신 ‘법적으로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로 개정하여 그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습니다. 또한 재판청구권의 실질적 보장, 현대 행정에서의 국민권리구제 확대, 행정에 대한 감시기능의 강화 등을 위하여 행정소송에서 원고자격을 확대하는 세계적인 추세를 사법부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권력과 임명자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려

이처럼 대법원 역시 행정소송에 있어서의 원고자격을 확대하는 입법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두고 보면 이 사안에서 대법원의 판단은 구체적인 권리구제뿐 아니라 행정에 대한 감시기능의 강화라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전혀 부합하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주민과 합의 없이 추진되는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할 주민들이 스스로를 구제할 수단 하나를 없애버린 것이며 강정마을 주민들의 권리가 침해받고 있는 현실에서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가 박탈된 것입니다. 즉 대법원의 판결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대법원은 법적 판단을 회피하고 정치적 관점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늘 정치적 관점으로 판단하는 것이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의 문제입니다. 정치적 관점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위치와 입장에 따른 판단입니다. 이 경우 진실이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임명자의 입맛에 맞는 것이 판단 기준이 되고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정의가 제자리를 잡기 어렵습니다.

2003년 4월부터 제주도 전체면적의 79%를 보전지역으로 지정, 제주 자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제주특별도지사는 강정 전체 절대보전지역의 면적 대비 무려 12.7%에 달하는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하면서도 주민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것은 중대한 절차적 위법을 저지른 것입니다. 또한 행정에 있어 주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공정성, 투명성 및 신뢰성을 확보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원리를 부정하는 처사이며 행정적으로도 위법을 저지른 것입니다.

다음의 “제주특별자치도 보전지역 관리에 관한 조례” 제3조를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제3조(주민의견 청취 등)” ① 도지사가 특별법 제292조부터 제294조까지의 규정에 따라 보전지역ㆍ보전지구 등을 지정(변경을 포함한다)할 때에는 미리 주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단,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미한 사항을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보전지역ㆍ보전지구 등의 면적의 축소
2. 보전지역ㆍ보전지구 등의 면적의 100분의 10이내의 확대

▲ 제주 강정마을에서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가 봉헌된 4월 20일 오전, 사제와 지킴이들이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 앉아 있다. ⓒ문양효숙 기자

수도회 동료가 또 묻습니다. “국가기관들이 선거에 개입했다고 해서 대통령에게 사퇴하라고 말해도 사퇴할리가 없는데 계속해서 사퇴하라고 할 필요가 있나?” 제가 답했습니다. “국가기관들의 공작과 불법, 탈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면 당연히 사퇴요구 해야 한다. 대통령이 사퇴하지 않더라도 불법, 탈법으로 당선된 것은 사실이므로 사퇴 요구는 정당하다”라고.

위법과 불법으로 진행되는 해군기지 공사를 아무리 반대해도 중단할리 없고, 국가기관의 공작과, 불법으로 당선된 대통령의 사퇴를 아무리 요구해도 대통령은 사퇴할리 만무합니다. 그럼에도 해군기지 공사가 옳지 않다고 지적해야 하고 불법으로 당선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권력은 옳지 않은 일을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며 힘과 돈을 가진 측에서는 같은 방법으로 이 사회를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공간으로 여길 것입니다. 또한 수단과 방법이 불법이라도 목적만 이루면 되는 병든 사회가 될 것입니다.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수도자의 태도

수도회 동료는 또 묻습니다. “수도자가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정치적일에 너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나? 그런 것들은 모두 정치적 문제들이 아닌가? 수도자는 영적인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제가 답했습니다. “해군기지의 문제를 정치적 관점으로 접근하면 공사 중단을 요구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불법선거의 문제도 정치적 관점으로 접근하면 대통령 사퇴요구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해군기지와 대통령 선거의 불법 문제를 정치적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고, 옳고 그름의 관점으로 접근해보면 신앙인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사건”이라고.

그렇습니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해군기지 공사가 불법, 위법이며 아무리 반대해도 공사는 계속될 것이고 아무리 사퇴를 요구해도 사퇴할리 만무합니다. 해군기지 공사 중단은 정부의 정치적 결단의 문제이고 대통령 사퇴의 문제도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결단의 여부와 상관없이 신앙인은 옳고 그름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공사 중단의 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 사퇴의 여부와 상관없이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알리는 것이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오히려 저에게 “수도자가 정치적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동료가 오히려 정치적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안을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옳지 않은 일에는 옳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수도자 역시 여기서 예외일수 없습니다.

어떤 사안을 볼 때 정치적 관점, 혹은 현실적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 아니면 예, 아니오의 태도, 즉 옳고 그름의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에 따라서 세상에서 존재 방식이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치과잉의 사회에서는 신앙인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사건을 정치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따라서 신앙인이면서도 자신도 모른 사이에 옳고 그름의 관점으로 사건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선거에 국가정보원, 보훈처, 경찰, 국방부등 정부 기관들이 개입하여 부정을 저질렀음에도 대통령 사퇴요구 필요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태도가 대표적입니다.

우리 신앙은 결과와 상관없이 복음에 따르는 일이라면 주저없이 행해야 합니다. 공권력이 옹위하면서 분명한 위법이 자행되고 있는 강정 해군기지 건설은 가톨릭사회교리에 비추어 봐서라도 반대운동을 계속해야 합니다. 해도 소용없다는 말은 신앙인이 세상을 거슬러 세상을 위해 일해야 하는 본분을 망각한 말입니다.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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