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입니다. 지난여름 수도원 정원 잔디밭에 온갖 자태를 뽐내던 풀들이 가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자신의 소멸을 거부합니다. 사실 잔디밭에 잔디와 함께 자라는 풀들은 잡초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그 풀의 이름을 아직 모를 뿐이라, 잡초라고 하면 생명체를 가엾이 대하는 태도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풀의 이름이야 어떻든 잔디밭은 잔디를 키우는 것이 목적입니다. 잔디는 정원의 여왕입니다. 오로지 주연인 여왕만이 존재할 뿐, 조연은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이 여왕을 지키기 위해 온갖 다양한 자원과 무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잔디라는 여왕 이외의 다른 풀들은 당연히 사라져야 합니다. 잔디 깎는 기계는 탱크가 전진하듯 정원 잔디밭을 밀고 나가면서 보기 좋게 정리해 나갑니다. 예초기는 잔디 깎는 기계가 닿지 않은 돌 틈과 후미진 곳을 치고 나가는 곡사포입니다. 개인화기를 들고 백병전을 치르듯 호미로, 낫으로, 양 손으로 잔디 이외에는 박멸합니다. 한 여름의 높은 온도와 많은 습기로 잡초들이 세력화되는 속도가 무섭습니다. 외국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일당을 주고 정원 잔디밭에 풀을 뽑은 것입니다. 함께 사는 베드로 형제가 농약을 뿌리겠다고 해서 농약도 뿌렸습니다. 그것은 최루탄이었고 화학전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잡초와 잡목은 저에게는 눈엣가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잡초들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다시는 도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적한 대로 정원이 유지되려면 민초 같은 잡초들은 발본색원해야 합니다. 이런 민초들은 언젠가는 다시 고개를 들고 자유를 달라고, 인권을 보호하라고 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원에 여러 생명들이 공존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것은 김일성, 김정일을 잘 모르는 철없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때문에 가차없이 제거하지 않으면 제멋대로 여기저기에서 자유 민주주의 세력이 퍼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력들은 민주와 평화를 요구하지만 그것은 김정은 체제를 도와주는 꼴이 되기 때문에 제가 관리하는 잔디밭에는 유신체제 같은 한국적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유기농을 하는 이웃사람이 잔디밭에 농약을 뿌리면 땅 속에 생명체가 죽어나간다고 사회의 원로가 말하듯 하소연했지만 베드로 형제가 제초제를 뿌리는 세균전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측근들이 말하기를, 정원 잔디밭에는 조연은 필요 없고 오로지 주연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풀들이 서로 도움을 주면서 자라는 연대는 불온한 사상을 가진 종북 세력들의 주장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주차장을 정비할 때 주차장 바닥에 깔렸던 보도블록을 아스콘 포장으로 덮었습니다. 자유니 민주니 떠들어대면서 바닥이 블록인 주차장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좌파 세력이 정권을 잡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블록 틈 사이에 흙이 들어가면 그곳에 풀씨가 자라나서 나중에는 독립군 같이 화근을 불러올 것입니다. 싹둑 잘라내지 않으면 여러 풀들과 연대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분명히 저항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주차장은 잡초들의 잔치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런 볼품없는 민초들은 자신들끼리 어울려 살며 뿌리 내리고 체제를 비판하기 때문에 저는 다양함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 독재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민초들은 말 그대로 잡초처럼 밟힐수록 일어서고 경이로울 만치 생존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의 연대를 놔두면 언제인가 위협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의미 없고 오로지 여왕인 잔디만 존재하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홍기

그런데 밟히면 밟힐수록, 탱크로, 개인화기로, 화학전, 세균전을 해도 아직도 잡초들은 버젓이 살아있습니다. 일방적으로, 한 맺힐 만큼 짓이겨도 잡초들은 가을 바람결에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누가 눈여겨 봐 주지도 않은데 잡초들은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때문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밟아야 합니다. 독재하는 저는 그만큼 두렵기 때문입니다. 사실 잡초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볼 때 무서운 점이 많습니다. 뿌리째 다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저의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저의 경험 때문에 저는 두려움이 크고, 때문에 온갖 무기로 무장하고 잡초들을 관리했던 것입니다.

앞으로 더욱 강하게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 관리하면 완전히 뿌리 뽑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약 삼 년 정도 강하게 밟아 나가면 잡초는 더 이상 궐기하지 못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야 그 뒤에도 잡초들이 덤비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공들이고 가꿔온 정원이며 잔디밭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정원을 관리하려면 어느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아니 솔직히 저의 속내를 말하면 잡초는 필요 없는 것입니다. 정원 관리를 위해서는 잡초들은 당연히 제거됨이 마땅한 것입니다. 잔디밭을 잘 가꾸어 나가는데 잡초, 잡목 등은 무조건 없어져야 할 불온하고 위험한 세력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잔디밭 전체를 잡초들이 장악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 동안의 정원 관리로 이곳저곳에 종북좌파 세력이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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