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여성상담소, 안산 시민 위한 무료 사회 심리극 프로그램 개최

경기도 안산시 대학동성당에 자리 잡고 있는 가톨릭여성상담소(소장 김은랑)가 5월 19일과 29일, 6월 9일 세 차례에 걸쳐 안산 시민을 위한 사회 심리극 프로그램을 무료로 연다.

김은랑 소장은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뿐 아니라 안산시 전체가 슬픔과 분노, 죄책감과 참담함에 잠겼다. 시민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동시에 현실을 직시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 며칠 전까지 성가대에서 함께 성가를 부르던 아이, 복사였던 아이, 이웃의 딸과 아들 등 알게 모르게 다 관계가 맺어져 있고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사고 당사자와 유가족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시민 모두에게 재난 상태예요.”

▲ 김은랑 가톨릭여성상담소장 ⓒ문양효숙 기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최대헌 박사(한국드라마심리상담협회 회장)는 이번 프로그램이 공동체의 당면한 문제를 다룬다는 면에서 ‘사회 심리극’이라고 설명했다.

“사회 심리극은 사회 이슈 중에서 우리에게 심리적 영향을 미친 문제들을 다룹니다. 그 이슈로 개인이 경험하는 심리적 어려움을 함께 모여 드러내면 그것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지요. 그런 일반화는 심리적 안정을 가져옵니다. 다른 하나는 표현하는 것 자체가 갖는 힘이지요. 쌓아두면 트라우마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요.”

최 박사는 사회 심리극이 단순히 심리적 어려움을 표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묻는다고 설명했다. 치유란 잊는 게 아니라 ‘충분한 애도와 직시, 그리고 해결’이기 때문이다.

“잊는 건 일종의 회피 증상이거든요. 칼로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흉터는 남아요. 그건 없앨 수가 없죠. 잊자고 하는 건 나쁜 의도예요. 똑바로 바라봐야죠. 직면해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맷집을 키워야 해요. 그러니 사회 심리극은 맷집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걸 혼자 하기는 힘이 드니, 집단이 모여서 하는 거지요.”

세월호 참사 직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안산 지역에는 지난 1일 ‘안산 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가 운영을 시작했다. 안산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는 유가족 및 안산 시민들의 체계적인 심리 지원을 위해 ‘경기도 · 안산시 통합재난심리지원단’이 전환한 것이다.

트라우마 센터는 “현재 전문심리요원 159명이 확보되어 있고, 이들이 안산 초 · 중 · 고등학교 가운데 54개 학교에 배치된 상태”라고 밝혔다. 전문심리요원들은 교육청, 학교 당국과 협의해 학생들의 정신건강상태 진단, 개인 및 집단상담 등을 진행한다. 이밖에도 트라우마 센터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우울, 불안 등에 대한 초기진단 ▲고위험군에 대한 사례관리 개인상담 및 집단 프로그램 ▲24시간 콜센터 등을 운영하며, 실종자 및 희생자 가족을 위해서는 ‘심리안정팀’이 직접 가정을 방문해 ‘찾아가는 심리지원서비스’를 제공한다. 보건복지부 위탁 사업으로 향후 3년간 활동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최대헌 박사는 “정부의 3년은 아무 의미 없는 숫자”라면서 “앞으로 계속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라우마는 개인 특성에 따라 변수가 많아요. 하지만 개인의 문제로 돌려서는 안 돼요. 군대에서 자살한 이들 문제를 다루는 법정에 가면, 부대 측에서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원래 문제가 있었다’고 말이죠. 원래 문제가 있었으면 군대에서 부르지 말든지, 불렀으면 관리를 잘 하든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직무유기잖아요. 마찬가지예요. 이 사건으로 앞으로 일어나는 개인의 문제는 단순히 한 사람의 취향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 국가가 기한을 두지 않고 쭉 책임지는 방향이 맞죠.”

▲ 안산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 ⓒ문양효숙 기자

김은랑 소장도 “대구 지하철 참사 피해자들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악몽의 그늘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 박사는 집단 스트레스, 혹은 집단 쇼크에 빠진 안산시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휴먼 벨트(human belt)’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엄청난 전문가 집단이 안산에 투입된 듯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안산에서) 빠져나갈 거예요. 걱정이죠.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결국 시민들만 오롯이 남게 될 테니까요. 고통은 쉽게 끝나지 않을 텐데, 그럼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요? 결국 사람들의 안전한 고리인 휴먼 벨트를 만들어야 해요. 당사자인 유가족보다는 이 문제를 더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시민들이 준비되어야죠. 유가족들에게 제2, 제3의 고통이 꼬리를 물텐데, 그때 든든한 이웃이 되어주고 여러 가지 상황에 버텨 주려면요.”

시민들의 심리적 연대와 성장을 강조하는 최 박사는 “트라우마에서 제일 중요한 건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된 사람이 처벌을 받아야죠. 무엇보다 중요한 치유예요.”

가톨릭여성상담소는 사회심리극 이후 미술치료 등으로 안산 시민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김은랑 소장은 명상과 테라피를 중점적으로 해 온 상담소가 본당을 직접 방문하는 ‘찾아가는 상담’과 피정 등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세월호는 끝난 게 아니라 계속 발생하는 참사”라고 말했다.

“아직 실종자가 수십 명 남아있을 뿐 아니라, 참사의 원인과 과정도 아직 명확하고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니까요. 트라우마는 지금 당장 나타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서 나타나죠. 제대로 된 관찰과 대처가 이뤄지지 않으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러니 단발적인 시각으로 봐서는 곤란해요. 지속적으로 해나가야죠. 저희도 시민들을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해 나갈까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최대헌 박사는 비탄에 잠긴 안산 시민들을 위한 장기적인 치유 방향을 묻는 질문에 “시민들이 느끼는 죄책감이 시민의 힘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답했다.

“지금 촛불을 드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도록 현실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해요.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함께 물어야 해요. 안산 지역사회 전체가 참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아픔을 견디어 내면서 애도가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문의 / 가톨릭여성상담소 031-415-0126)

▲ 합동분향소 앞에 수원교구의 매일 미사 시간을 알리는 현수막이 세워져 있다. ⓒ문양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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