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훈의 경계를 넘어]

지난 2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또 하나의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동북부의 한 오지마을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나 3백여 명이 숨지고 최소한 2천 명 이상의 주민들이 진흙더미에 매몰됐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현지 정부는 이렇다 할 실종자 수색 노력도 없이 단 하루 만에 마을 전체를 ‘집단 무덤’으로 선포한 채 손을 놓아버렸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한 친구는 SNS 상에 이런 탄식을 남겼습니다. “일치감치 포기한 저 나라 정부나, 끝까지 구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놓고선 시종일관 책임 떠넘기기에만 여념이 없던 이 나라 정부나 다를 게 하나 없구나.” 그렇습니다. 이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이 나라 정부에게 느끼는 실망감, 아니 배신감을 극명하게 대변해주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백억 원의 예산을 들여 3,200여 개에 달하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캐비닛에 모셔 놓고도 정작 위급할 때는 써먹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하기만 했던 정부의 이번 대처 모습에 비춰볼 때, 그 근거가 차고 넘치는 불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입니다. 세월호가 야속하게도 바다 속으로 자취를 감춘 지난달 16일, 이 나라의 원자력 ‘안전’위원회가 52일간의 계획 예방정비를 거친 고리원전 1호기에 대해 합격 판정을 내리자마자 바로 그 다음날 원자로가 재가동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느낌을 받은 이유가 말입니다.

세월호 침몰하던 날, 설계수명 다한 고리원정 1호기 재가동 승인
지난 4월 타이완에서는 5만 명 모여 반핵 시위

1978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이래로 애초의 설계 수명을 넘겨 37년째 가동되어 오는 동안에 모두 합쳐 130번에 달하는 사고와 고장을 일으켰던 그 원자로에서 만에 하나라도 대형 사고가 일어나게 되면, 반경 30km 내에 거주하는 420만 명의 주민들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사능의 특성상 어디로 도망칠 수도 없고 구조도 불가능할 텐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걸까요? 결국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대재앙의 싹을 미리 자르는 것 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인근 타이완의 국민들이 ‘거리의 정치’로 직접 그 가능성을 입증해보였듯이 말이죠.

4월의 마지막 주말,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에 위치한 총통부 근처에는 약 5만 명의 시민들(경찰 추산 28,500명)이 저마다 가족과 친구들의 손을 잡고 머리띠를 한 채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핵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것과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발의 안건의 통과 요건을 낮춰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정부가 신베이(新北)시 공랴오(貢寮) 지역에 건설 중인, 흔히 제4원전이라 불리는 룽먼 핵발전소를 영원히 폐쇄하라는 것이 그들이 당면한 요구였습니다. 시민들은 쏟아지는 거센 폭우에도 아랑곳 않고 타이페이 교통의 허브 역할을 하는 중앙역으로 행진해갔고, 그 곳에서 8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까지 연출했습니다.

▲ 타이완 반핵 시위 현장 (사진 출처 / euronews 유튜브 갈무리)

일요일 오후, 마잉주 총통은 집권 국민당 출신의 행정장관 및 시장들과의 3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국민적인 합의가 도출되지 않으면 룽먼 핵발전소 건설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내놓았습니다. 이제까지 모두 93억 달러(약 9조 5천억 원)의 돈을 들여 전체 2기 가운데 1기 원자로의 공사를 98%나 마친 국책사업을 중단하겠다고 정부가 시민들 앞에서 한 발짝 물러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승리의 축포를 터뜨리기에는 아직 다소 일러 보입니다. 엄밀히 말해 정부의 발표는 핵발전소 건설을 ‘보류’한다는 것일 뿐 완전히 폐쇄한다는 게 아니었으며, 당초 국내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국민투표 실시’의 부분도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하나씩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날 타이완에는 각각 2기씩의 원자로를 갖춘 핵발전소 3곳이 가동 중에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타이완이 서슬 퍼런 군사독재 정권의 계엄령(1949~1987) 하에 있던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중반에 건설된 것들입니다. 즉 인근 지역 주민들을 제외하고는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던 시대에 지어진 것들이라는 거죠.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대만전력공사는 1980년도에 네 번째 원전인 룽먼 핵발전소 건설을 정부에 제안했고, 1992년에 공식적으로 건설 계획이 발표된 뒤 1999년에 공사의 첫 삽을 뜨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정부의 주된 고민과 관심사는 높은 건설비용과 기술적인 난이도였습니다. 환경단체들과 일부 국민들이 우려하던 안전성의 문제는 그다지 큰 고려사항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2000년에 국민당의 장기집권이 끝나고 최초로 집권한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이 핵발전소 포기를 선언하면서 한 차례 큰 파동이 밀어닥치게 됩니다. 주식시장은 급락했고, 국회에서는 연일 격렬한 논쟁과 드잡이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여소야대의 상황에 밀린 민진당이 입장을 후퇴하면서 이듬해 룽먼 핵발전소 건설은 예정대로 다시 추진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2011년 3월 11일, 모두가 잘 알다시피 일본 동북부를 뒤흔든 대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대참사가 벌어졌습니다. 그동안 땅 속에 가라앉아 있던 타이완 국민들의 불안감이 용암처럼 밖으로 분출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타이완도 환태평양 지진대의 활성단층 위에 위치한 지진 취약 국가이기 때문에 그건 실로 당연한 불안감이었습니다. 참고로 현지 중앙기상국에 따르면, 타이완에서는 해마다 평균 2,200회의 지진이 일어나고 그 중 200회 이상이 실제로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이며, 1900년 이래로 96차례의 대규모 지진을 경험한 바 있다고 합니다.

핵발전소 건설 중단 선언에도 논란 계속되는 타이완
‘절대 안전하니까 믿어 달라’고?

그런 상황에서 전체 2,300만 명,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600만 명의 주민들이 기존의 핵발전소 반경 30km 내에 거주해온 것만 해도 불안한데, 게다가 인구가 초밀집된 수도 타이베이로부터 불과 42km 떨어진 곳에 또 다시 핵발전소를 건설 중에 있다고 하니 민심이 들끓을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후쿠시마 사태 2주기인 2013년에 20만 명이 모인 시위가 벌어진 뒤부터 상당수 타이완 시민들에게 반핵은 가장 대중적인 일상의 언어이자 절박한 요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집권세력 내부에서도 심상찮은 민심의 흐름을 의식한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당 의원 33명이 당의 오랜 방침을 거슬러 핵발전소의 운명을 국민투표로 결정짓자는 동의안을 제출한 것을 필두로, 주요 대도시 시장들이 룽먼 핵발전소 건설에 회의적인 의견을 내비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던 지난 4월 22일, 과거 민진당 주석이자 계엄령 치하에서 정치 양심수였던 올해 72살의 린이슝이 과거 1980년에 백색테러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와 쌍둥이 두 딸이 살해됐던 옛 자택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것은 다시 한 번 시민들을 거리로 불러 모으는 저항의 호루라기 역할을 하게 됩니다. 경찰의 물대포까지 동원된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린이슝과 반핵 활동가들의 호소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나섰고, 결국 정부의 핵발전소 건설 중단 선언까지 이끌어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잉주 정부와 국민당이 지난해에 스스로 천명했듯이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을 허용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원자력 없는 대만을 추구할” 의향은 아직 전혀 없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물론 4월 27일에 정부가 98%의 공정률을 보인 룽먼 원전 1호기를 안전 점검이 끝난 뒤 (가동하지 않고) 그대로 봉인하는 동시에 나머지 2호기의 건설도 즉각 중단하며, “원전을 가동하기 전에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언제 투표를 실시할 지는 전혀 밝히지 않았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즉 뒤집어 생각해보면, 앞으로 정부가 핵발전소 건설의 불가피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여론이 자신들에게 유리해졌다고 판단하면 그때 가서 국민투표라는 형식을 거쳐 공사를 다시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설사 그게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룽먼 원전을 못 짓게 됐으니 전력 수요를 충당하려면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존의 핵발전소 3곳 가운데 2곳의 원자로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차례로 설계 수명을 마감할 예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4월 30일에 단식 농성을 중단하면서도 린이슝이 아직 싸움을 멈출 때가 아니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또한 핵 없는 타이완을 외치며 거리에 나섰던 시민들이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 찬성이라는 현재의 국민투표 요건을 25% 투표로 낮추고 당장 핵발전소 전면 폐쇄를 국민투표에 부치라고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동안 핵 발전의 위험성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절대 안전하니까 믿어 달라’는 대답만 되뇌어온 ‘불통’ 정부에게 더 이상 나와 내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맡길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온갖 사고와 비리로 얼룩진 고리 원전 1호기가 오늘도 태연하게 풀가동되고, 2012년 11월에 설계 수명이 다 돼 멈춘 월성 1호기의 숨통을 또다시 되살리려는 시도가 점점 노골화되는 이 나라 이 땅의 우리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최재훈 (안토니오)
국제연대단체 '경계를넘어'의 회원으로 활동. 2008년에 노엄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개정판, 이후출판사)을 번역했으며, 2011년 7월에는 여행기 <괜찮아, 여긴 쿠바야>를 공동집필해 출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