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장, 참여불교와 해방신학의 대화 시도

“전 오늘 낮에는 한 신학교에서 이슬람에 대해 강의를 했고, 지금은 그리스도연구소에서 불교에 대한 포럼을 하고, 주말에는 불교인문학공동체에서 그리스도교를 주제로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지난 4월 28일 저녁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소장 양권석)는 서울 충정로 안병무홀에서 ‘사랑, 지혜를 만나다 : 한 그리스도인의 참여불교 연구’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은 어떻게 불교-그리스도교 대화를 연구하고 참여하게 되었는지, 그리스도인들이 ‘참여불교’ 운동에서 배울 수 있는 지혜와 수행은 무엇인지 발표했다.

▲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장
정경일 원장이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면서 참여불교를 수행하고, 여러 종교 전통을 넘나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학생 시절의 치열한 사회운동 경험이 있었다. 복음주의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던 정 원장은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자신의 신앙과 대립되는 것은 아닐까 내적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적 고통과 현실에 눈을 뜨고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정 원장은 이 시기에 “외적 · 내적으로 폭력적인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고백했다. 인간의 미움, 적개심, 분노, 폭력을 생생하게 목격했고, 덜 폭력적이고 덜 파괴적인 길을 고민하다가 불교 수행을 접했다.

“불교 수행을 하면서 내가 왜 그토록 분노했는지, 왜 정의의 이름으로 동지들과 형제들을 미워했는지, 내가 경험했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깨달음이 아니라 알아차림으로요”

정 원장은 고통의 원인과 현상에 대해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구원에 이르는 체계적인 길, 즉 수행법을 배운 것이 불교로부터 받은 선물이라고 말했다. 불교는 외적 · 내적 폭력의 그침, 알아차림, 깨어 있음, 잊지 않음, 내려놓음, 받아들임 같은 수행을 통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한국 사회의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교와 불교 서로 배워야”

20년 넘게 종교를 공부해온 정 원장은 “종교는 고통에 대한 응답이며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불교의 보리수는 고통의 땅 위에 서 있는 구원의 나무이며, 그리스도교의 십자가와 부활은 고난과 고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에 대한 가르침이다.

특히 참여불교와 해방신학은 종교의 이런 근본 목적에 맞게 가장 고통스러운 때에 새롭게 사회적 고통을 인식하고 체험하면서 현대적 응답으로 나온 종교적 사회운동이다. 정 원장은 해방신학과 참여불교를 더 성찰하고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사회적 고통이 극심한 한국에서는 종교간 대화와 종교 공동의 사회적 실천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 원장은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서로의 종교에 대해 배울 점들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그리스도교가 불교에서 배울 점으로 “영적 수행과 사회적 실천의 일치”를 꼽았다. 영적 수행을 통해 내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먼저인가, 아니면 사회적 실천을 통해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기는 것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에 그리스도교는 이냐시오 성인처럼 ‘활동 속의 관상’을 이야기하지만, 기본적으로 관상과 활동을 구분 지어 답하며, 관상을 활동보다 비교적 우선적인 것으로 본다. 반면에 불교에서는 “걷고 머무르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가만히 있는 모든 것이 선”이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수행법을 가르친다. 여기서는 명상이 세상 밖으로 도피하는 게 아니라 ‘이 세계가 곧 수행의 장소’가 된다.

또한 나가르주나의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다”는 말처럼, 상호연기(相互緣起) 이론에서 나온 “나와 무관한 존재는 없다”는 관계론적 세계관도 불교에서 배울 점이다. “중생이 아프므로 나도 아프다”는 생각을 실천에 적용하면 이 세상 누구의 고통도 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자비롭게 참여하지 않는다면 내 존재를 거부하는 셈이 된다.

이러한 사회적 고통에 대한 ‘연대’는 그리스도교 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불교의 ‘무조건적이고 무차별적인 자비’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이기에 만만치 않다.

한편 베르니에 그라스만이 “네가 억압자와 하나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억압자에게 맞설 수 있다”고 한 말처럼, 불교는 어느 한 쪽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자신과 일치시키는 데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다. 이는 정의를 위해 악과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당장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도전이다.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지난 4월 28일 저녁, 서울 충정로 안병무홀에서 ‘사랑, 지혜를 만나다 : 한 그리스도인의 참여불교 연구’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배선영 기자

“모든 존재가 고통 받는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고통은 다르다”

한편 정경일 원장은 불교가 해방신학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해방신학자 알로이스 피어리스 신부는 ‘사랑이 지혜를 만나다’라는 표현처럼, 뜨겁고 열정적인 그리스도교의 사랑과 어머니처럼 돌보는 불교의 자비가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 열정을 다스릴 지혜 역시 필요하다는 게 정 원장의 생각이다.

그러나 불교는 편들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자칫 가난한 이들이 겪어야 할 더 큰 어려움을 소홀히 할 위험도 있다. 그래서 정 원장은 ‘희생자 중심의 윤리’를 강조하며, 불교가 해방신학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방신학자 혼 소브리노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을 뒤집어 “가난한 이들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교 역시 “보살은 주변부로 가야 한다”는 말을 해방신학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고통을 받는다고 보기 때문에, 사회분석을 통해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고 선과 악을 이분화하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정 원장은 이에 대해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겪는 고통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고, 가난한 사람을 자기 명대로 못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며 “사회분석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분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정 원장은 ‘사회적 지혜’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불교의 탐진치 삼독이 제도화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군산복합체, 상업 미디어 등을 낳는다고 보았다.

정경일 원장은 세월호 침몰 사건에 대해서는 “종교신학자로서 무엇을 하든 다 죄스럽고,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부활절에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언어가 공허해지고 부활을 찬양할 수도 기뻐할 수도 없었다”며 “부처님 오신 날에 불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