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교황청 입장에 불만스런 보수적 미국 가톨릭신자들


교황 재위 1년을 돌아볼 때, 초기의 인상은 가장 실망한 사람들이 다름 아닌 교황의 선출을 가장 반겼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작고한 리차드 존 노이하우스 신부는 “명백히 불편한 마음”을 밝혔다. 일부에서 지적하듯 새 교황에게 엄격함이 부족하고 몇 번 경솔한 임명을 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불편한 마음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것은 교황이 몇 가지 조치를 취함으로써 우익들을 좀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이슬람 과격주의를 공격했던 레겐스부르크 강연과 라틴어 미사를 부활시킨 것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요즘 또 한 번 불만에 찬 겨울을 맞이한 듯하다. 교황청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안일하게 접근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교황청의 태도는 일부 미국 가톨릭계의 흥분과는 사뭇 대조된다. 워싱턴에서는 이번 주 화요일의 대통령 취임과 목요일의 연례 생명 행진을 나란히 놓고 보았다는 것이 그 두드러진 예이다(한 예로 아베 마리아 로스쿨이 공교롭게 오바마의 선거 운동 주제인 “우리는 낙태를 종식시킬 수 있다.”는 푯말을 들고 행진을 했다).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취임식에서 관례에 따라 성경에 손을 얹고 있다.(사진출처-한국일보)


교황은 이러한 와중에 세 차례에 걸쳐 새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낙태나 기타 다른 “생명 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 저명한 미국 가톨릭 신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노이하우스 신부의 사망이 남긴 허탈감 때문인지 사람들의 실제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속으로는 분명히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최근에 필자는 낙태 반대 운동을 대표하는 한 미국인 주교와 저녁을 같이 했는데, 그는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교황청에서 일언반구도 없으니 어찌된 일이죠?”

지금까지 교황과 오바마 간에 세 번에 걸친 통신은 다음과 같다.
* 11월 5일 축하 전문(바티칸 의정서에 교황은 취임 전의 국가 수장에게 인사말을 건네지 않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자체가 주목할 만한 것이다).
* 11월 11일 전화 통화(오바마가 세계 주요 지도자들에게 한 순회 전화의 일환).
* 1월 20일 취임식을 기념하는 또 한번의 전문

앞의 두 메시지는 비공식적인 것이었지만, 교황청 대변인이 그 요점을 발표하였다. 교황은 오바마의 당선을 “역사적 기회”라고 지칭하였고, “이 세상에 평화와 연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교회와 국가가 협력하기를 바란다고 피력하였다. 1월 20일 전문도 공개되었고, 그 골자는 힘을 합해 “빈곤과 기아, 폭력”에 맞서 싸우고 “국가간에 이해와 협력, 평화”를 증진하자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오바마에 대해 교황청의 다른 곳에서도 풍기고 있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당선 다음 날, <로세르바톨레 로마노>지는 1면에 오바마를 “일치를 위한 선택”으로 환영하는 기사를 실었다. 선교 뉴스국 <아시아 뉴스>는 오바마가 전세계에 미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유럽 내 인종 관계에 도움을 줄 거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교황청 외교단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특히 중동 지역과 아프리카에서 교회의 외교 정책에 이익이 될 거라며 계속해서 낙관론을 피력해 왔다. 어쨌든 교황청에서 오바마에 대해 기꺼이 태도를 밝힌 사람들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모두 미국인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미국 주교들은 말만 그럴싸하게 하고 행동은 취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주교들이 오바마 당선 직후 볼티모어에서 만났을 때, 세간의 빅뉴스는 <선택의 자유 법령>에 관한 정면 공격이었다. 그러나 낙태 반대자들은 '낙태 선택주의자'인 가톨릭 신자들은 영성체하지 못한다는 경고가 최종 문서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실망하였다. 그러나 교황청의 초기 논조와 비교해 볼 때, 주교들은 결국 분명 강경해졌다.
물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낙태 반대자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교황은 신앙교리성 장관이었을 당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으로서 독일 교회에 낙태 죄에 연루될 위험이 있으니 임신 상담소를 폐쇄하라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제 교황으로서 낙태를 “인권에 반대되는 것”으로 “사회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비난하고 있다. 2007년 브라질 여행 당시 교황은 멕시코 주교들 편에 서서 낙태 선택주의 정치인들에게 교회법상 자동 파문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지금까지의 세 차례 교황과 오바마간의 교섭은 형식적인 것이었고, 실제로 오바마의 통치가 시작되었으니 힘든 관계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는 교황청과 미국 주교들이 알게 모르게 “선인과 악인” 역할을 나누어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교황청은 협력이라는 당근을 내밀고 주교들은 문화 전쟁이라는 채찍을 휘둘렀다고 본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불가피하게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양 대륙의 가톨릭 문화가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유럽의 가톨릭 신자들은 아주 극단적인 보수주의자일지라도 대체로 낙태 문제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물론 그들도 낙태 반대자들이지만,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낙태권을 돌이키기 어렵다고 생각하기에, 지나친 입씨름은 삼가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낙태가 가톨릭 신자들과 정치인들의 대화에서 중대한 문제이지만, 대서양 건너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으며, 교황에게도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는 교황이 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압력이 증대되기 시작하였다. 컬럼니스트 제프리 쿠너는 최근 <워싱턴 타임즈>지에 이렇게 썼다. “교황청은 새 암흑 시대를 막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교황이 나서서 <선택의 자유 법령>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드높이고 오바마 행정부 하의 낙태 선택주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미사에서 영성체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동 파문될 수 있다고 경고할 때이다.”

물론 아직까지 그러한 제재는 없었다.

3년 전 노이하우스 신부가 경종을 울린 이후, 필자는 또 다른 저명한 미국 보수주의자와 이야기를 했는데, 그가 잊혀지지 않는 쓴소리 한 마디를 했다. “우리는 로날드 레이건을 뽑은 줄 알았는데, 결국 지미 카터를 뽑은 거였어요.”

레겐스부르크 강연이 있자 그러한 판단이 터무니없어 보였었다. 그러나 교황이 현재의 행보를 계속한다면 불만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 같다.


   1월 20일 교황 전보의 전문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의 취임식에 즈음하여, 진심으로 행운을 빌며, 중대한 책무를 수행하는 대통령께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끝없는 지혜와 힘을 주실 것을 믿고 기도 드립니다. 대통령께서 미국을 이끄시는 동안, 국민들이 종교와 정치 유산에서, 모든 구성원, 특히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 힘없는 이들의 존엄과 평등, 권리를 존중하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협력하는 데에 필요한 정신적 가치와 윤리적 원칙들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우리 형제 자매들이 빈곤과 굶주림, 폭력의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염원하는 이 때, 저는 대통령께서 굳은 결심으로 이해와 협력 평화의 증진에 앞장 서 주시어, 모두가 하느님께서 전 인류 가족을 위해 차려 주신 생명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이사야 25,6-7). 대통령과 가족 여러분, 미국 국민들 위에 하느님께서 기쁨과 평화의 복을 내려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09.1.23. 존 알렌 [출처-NCR]

번역/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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