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JTBC 드라마 <밀회>

너무, 잘 만들었다. 빼어나다. 말해 무엇하랴. 순간순간의 밀고 당김이, 채우고 비움이, 유려하다 못해 얄미울 지경이다. 어쩌면 정성주 작가와 안판석 PD 콤비의 최고 작품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시청률이나 화제성 이전에 시청자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 작품으로서 말이다.

이 어찌 보면 뻔하고 속된 줄거리, 하도 관념적인 ‘관능’ 혹은 관음증이라 어처구니없을 정도인 관계들을 ‘애욕’의 이야기로 만들어 시청자들을 애타게 하고 아슬아슬한 감성의 늪에 빠뜨렸으면 더 이상 만듦새는 얘깃거리가 못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찜찜함이 남는다. 잘 만들기만 하면 된 걸까. 드라마는 그저 대박만 기록하면 되는 것일까.

보는 동안은 심히 흔들린다고들 한다. <밀회>를 보고 있으면 피아노 선율이 정신을 온통 헤집어 놓는다는 반응들이다. 텔레비전을 꺼도 잠을 못 이루겠다거나, 저런 일상적 단어에 치명적으로 홀리게 될 줄은 몰랐다고도 한다. 그런데, 불편하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저항하고 싶어지는 이 기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왠지 아무리 아름답게 그려지고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절대로 넘어가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선재라는 ‘천재’―외계인 혹은 투명인간

JTBC 월화극 <밀회>의 주인공 김희애 · 유아인은, 예술재단 기획실장 오혜원과 날개 꺾인 천재 (예비) 피아니스트 이선재로 열연 중이다. 엄밀히 말해 주인공은 피아노인지도 모른다. 관계들을 매개하는 건 늘 피아노다. 남자는 여자를 ‘선생님’, 그 여자의 남편 강준형(박혁권 분)은 ‘교수님’이라 부른다. 이 삼각관계 또한 피아노가 지배한다.

스승이자 매혹의 대상인 오혜원의 집에 놓인 피아노를 이선재는 치러 다닌다. 강준형이 교수로 있는 음대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난 때문에 피아노에 대한 꿈을 접고 택배 일을 하던 선재는, 피아노로 ‘먹고사는’ 오혜원 · 강준형 부부에게 발탁돼 본격적 수련을 받게 된다.

<밀회>에서 오혜원은 타인의 결핍을 채워주며 살아온 사람이다. 재벌가의 온갖 비리와 추문을 덮기 위해 설립된 ‘예술재단’에서 실장이라는 직함으로 일하지만, 실상은 1억 연봉을 받으며 갖은 더러운 뒷거래와 사생활 뒷수습을 도맡아 하는 고급 심부름꾼이다. 선재를 만난 후 그녀는 이 일에 역겨움을 느끼지만, 역설적으로 남들이, 아니 부자들이 다 자립하고 나면 자신의 설 곳은 없다. 피아노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타인의 재능을 탐하지만 본인의 재능은 ‘알아듣기’ 쪽이다. 그럼에도 듣는 것만으로 만족 못해 더 집착해왔다. 선재에게 끌리지만 갖고 싶은 것은 선재 자체보다 그 재능 충만한 ‘손’은 아닐까.

▲ JTBC 드라마 <밀회> 홈페이지 갈무리

어쩌면 이것은 위험한 드라마다. 지나간 꿈과 좌절, 회한이 불현듯 아득한 기억 저편에서 꿈틀거린다. 때로 시청자를 아찔하게 만드는 ‘피아노’의 힘이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에 반응할 사람들은 사실 정해져 있다. 어쩌면 결혼을 포함해 관계망 안에 들어있는 자들을 위무하고 대리만족을 주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드라마일 수도 있다.

어렸을 때 잠깐 학원에 다녔을 뿐 거의 독학으로 피아노를 완전히 뗀 천재 이선재는, 이 사회로부터 아무것도 제대로 배우고 얻지 못했다. 그는 잡초처럼 자랐고 일 나가는 어머니가 현관을 잠그면 종일 피아노가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무섭고 지겹고 심심해서 쳐야 했던 게 피아노였다. 음악가의 길을 접은 후 어머니마저 여의고, 그 ‘귀한’ 손을 아무렇게나 쓰다가 결국 피아노로 돌아오긴 했지만, 지금은 탐욕스런 어른들의 욕망에 부응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재벌과 음악가들이 마련한 무대, 그리고 ‘사랑’에 굶주린 오혜원의 환상을 위해서 말이다.

우리가 함부로 소비 중인 ‘청춘’에 대하여

현재 오혜원과 이선재는 서로를 지독하게 탐닉 중이다. 불륜이니 치정이니 온갖 욕을 먹어도 싸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과연 오혜원과 이선재는, ‘둘’만이었던 적이 있나?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정의하고 강신주가 자주 언급하는 식의 ‘둘의 경험’이란 걸 했을까? 피아노 없이도? 그들 사이엔 늘 ‘피아노’가 있었다. 게다가 관계의 처음부터 지금껏 내내 남편이 훔쳐보았고 들었고 묵인하고 있는 중이다. 천재 제자 양성을 통한 명성을 꿈꾸는 강 교수의 욕망에 선재는 딱 들어맞는다. 재벌기업과 예술재단을 위해서도 이 천재 피아니스트는 필요하다.

무슨 ‘치정’이 이리 복잡할까 싶다. 치명적인 격정 멜로라면서, 둘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사회가 부를 ‘과시’하는 방식과 예술을 바라보고 소비하는 모든 방식 등등의 복잡한 설명이 끝없이 변주돼야 한다. 이쯤 되면 치정이 아니라 정치다.

그 어느 것도 스무 살 선재의 입장은 아니다. 선재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또래의 경험치를 가지고 또래를 만날 자유조차 없다. 중년의 시청자들을 위해, 그들의 한 번도 채우지 못한 어떤 욕망의 소비재로 쓰이고 있을 뿐이다. 멜로드라마 속 이런 류의 ‘사랑’에서, 20대의 존재 이유는 40~50대의 순간적 ‘허탈함’을 위한 도구로 쓰이기 위해서인가?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사악해진 걸까? 이런 착취적 감정 발산, 소모를 위한 대상화를 과연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은 것일까? ‘명품 드라마’라고 하는 시선 속에 과연 20대의 관점도 투영돼 있을까? 우리는 아이들을 애완하고 사육하다 못해 이제 젊어서 못 이룬 ‘로맨스’의 대상으로까지 소비하려 드는 것인가?

사악함은 어디에 깃드는가

영화 <블랙 스완>과 <스토커>에서 소녀가 ‘너의 본능을 깨워’라고 충동질하는 목소리를 만나 결국 제 안에서 깨우고 끄집어낸 것은 놀랍게도 ‘성(性)’이 아니라 ‘악(惡)’이었다. 사악함의 본능, 악의 조절능력을 잃어버린 순간을 관객은 목도하게 된다. 본능에 충실하라는 (미디어의) 목소리에 이끌려 가닿을 곳은, 그런 식의 심연일 수 있다.

이 소비만이 미덕인 사회에서, 절제 모를 욕망이 실현되려면 결국 타인을 희생시켜야 한다. 타인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어야 한다.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날 일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아니면 된다. 그러나 그 방향 모를 칼날이 겨누는 것이, 결국은 타인의 가면을 쓴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블랙 스완>의 끔찍한 환상과 착오의 세계를 떠올려 보라.

드라마 <밀회>에서 어쩌면 가장 사악한 사람은 오혜원이다. 우리가 쉽게 ‘막장’이라 부르는 드라마였다면, 오혜원은 아마 재단 소유주이자 재벌인 서 회장의 애첩이었어야 적당했을 것이다. 재벌의 여자이면서 남편의 아내이고, 젊은 제자도 탐하는 설정 말이다. 그런데 오혜원은 솔직하지도 쿨하지도 않다. 재벌가 남성의 선택을 못 받았기에 남자 비서나 다를 바 없는 직무를 수행하며 연봉을 받는다. 어쩌면 법적으로 처벌 받아야 할 일들이다. 동정의 여지란 없다. 그런데 김희애의 놀라운 연기력으로, 오혜원이라는 캐릭터는 비호를 받고 있다.

선재에게 교육의 기회를 누리게 해주지 않은 어른들은, 홀로 피아노를 터득한 아이를 시기하고 있다. 그 재능을 탐욕스럽게 제 용도대로 쓰려 한다. 그리고 갓 스물의 선재에게 이제 별 걸 다 요구한다. 어른들도 차마 생각 못할 ‘카사노바’적 연애 스킬을 ‘천부적’으로 풀어내어 나이 한참 많은 스승마저 (실은 시청자를) 홀리게 하는 역할이다.

우리는 지금 왜 드라마에 홀리게 됐을까. 우리는 왜 드라마에만 설레는가.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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