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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인, '부드러운 남자'가 목에 밧줄 걸었던 이유?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
한수진 기자  |  sj1110@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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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14  18: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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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 ⓒ한수진 기자

그는 키가 컸다. 이렇게 큰 키로 6미터 높이 굴다리에 널빤지를 걸고 1인용 텐트 생활을 5개월이나 했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은 2012년 10월 충남 유성기업 아산공장 정문 앞에 다리를 뻗을 수도, 일어설 수도 없는 작은 망루를 짓고 올라 고공농성을 벌였다. 농성을 중단한 건 팔다리 마비와 감각 상실 등 심각한 건강 상태 때문이었다. 살기 위해 올라선 망루였기에, 죽어서 내려올 수는 없었다.

반년 뒤에는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 옆 광고탑에 올랐다. 이번엔 이정훈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과 함께였다. 한 번 경험을 해봤다고 고공농성이 쉬워질 리 없었다. 몸의 불편과 건강 악화는 차라리 견딜 수 있었다. 어려운 건 그와 동료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던 회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할 법조차 진실을 외면하는 현실이었다.

홍 지회장은 지난달 18일 129일 만에 고공농성을 풀고 땅 위로 내려왔다. 검찰이 지난해 12월 30일 유성기업의 노조 파괴 행위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광고탑 위 농성은 이 지회장이 이어가고 있다.

오는 15일 유성 희망버스 출발을 며칠 앞두고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만난 홍 지회장은 행사 준비로 분주했다. 인터뷰 사이사이 걸려오는 전화에 답을 하고, 동료와 간단한 실무를 논의하는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올라간 듯 했다. 희망버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을 거다.

“2011년 첫 번째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을 방문할 때 저도 같이 있었던 기억이 나요. 이번에 제가 희망버스에 기대하는 건 단지 유성기업만이 아니라, 기업의 노조 파괴 문제를 사회 전반에 알리는 겁니다. 유성이 해결책을 찾는다 하더라도,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해 어렵게 이뤘던 사회적 합의가 하나둘 무너지는 것처럼 똑같은 길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려면 기업의 노조 파괴 자체가 다시 반복될 수 없도록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고, 공감하게 되는 것이 희망버스가 가진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희망버스를 못 타더라도 노동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서로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홍 지회장은 2004년에 유성기업 아산공장에 입사했다. 군 제대 후 여러 일을 하다 친구의 소개로 일을 시작했다. 회사 동료들도 대부분 지인의 소개로 입사한 이들이었는데, 평균 근속년수가 25년이었다.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회사라 먼지와 소음이 상당히 심하고, 격주 야간 근무에 노동 강도도 높았지만 “같이 일하는 형님과 친구들을 만나 의지하다 보니” 자연스레 버티게 됐다.

그러나 회사의 노동 강도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버틸 만한 것이 못됐다. 뇌출혈과 스트레스성 질병으로 투병생활을 하거나 심지어 통근버스에서 돌연사하는 동료가 하나둘 생겨났다. 노동조합은 야간 노동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2010년부터 노조에서 노동안전부장 직책을 맡았어요. 산재를 비롯해 노동자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일이었는데, 한 동지가 퇴근하고 집에 가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 다음에 뇌출혈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 등으로 돌연사가 이어졌어요. 야간노동은 2급 발암물질로 분류돼요. 평균수명을 13년 줄인다는 보고도 나와 있고요. 노조가 회사에 야간노동을 폐지하고,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실시하라고 요구한 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어요.”

   
▲ 151일간 유성기업 아산공장 앞 굴다리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홍종인 지회장. 움직이지 못해 앙상해진 홍 지회장의 다리를 의료진이 검진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정운)

‘심야노동 폐지’와 ‘주간 연속 2교대제 실시’는 2009년 유성기업과 노조가 합의한 내용이었다. 구체적으로는 2011년 1월 이 두 가지 안건의 시행을 두고 회사와 노조가 협의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노조의 교섭 요구에 회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해 5월 18일 노조가 파업을 선언하자 회사는 직장폐쇄를 강행하고 용역업체 직원을 배치했다. 6일 만에 경찰이 투입돼 조합원 전체 530여 명이 연행됐다. 홍 지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억울함이 너무 컸다”고 말했다.

“단지 ‘밤에 잠 좀 자자’는 기본적인 요구를 했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대포차가 조합원에게 돌진해서 광대뼈가 함몰되고, 집회 장소로 가겠다는데 방패로 찍어서 두개골이 열리고.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탄압과 폭력을 당하면서 사지로 몰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더 악이 받치더라고요.”

직장폐쇄는 회사가 치밀하게 준비한 노조 파괴 시나리오의 시작이었다. 시나리오는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작품이었다. 직장폐쇄와 용역업체를 동원한 탄압, 공권력 투입, 해고와 징계, 손배 가압류, 새 노조 설립으로 이어지는 치밀한 계획이었다. 그러니까 회사의 약속 파기는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유인책이었다. 2011년 7월 복수노조법이 시행되자마자 새 노조 설립을 지원한 회사는 현재도 회유와 협박, 법의 틈새를 이용한 다양한 방식으로 민주노조를 탄압하고 있다.

2012년 9월 국회에서 열린 용역폭력 청문회에서는 유성기업의 노조 탄압에 창조컨설팅뿐만 아니라 국정원과 노동부, 경찰, 원청인 현대자동차까지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노조는 회사와 창조컨설팅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하지만 법의 힘은 창조컨설팅을 해체하는 선에서 그쳤다.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회사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노조 탄압은 노동자만을 향하는 게 아니에요. 노동자의 가족 전체가 받는 탄압이죠. 가족을 완전히 붕괴시킨다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용역 깡패에게 맞아서 병원 신세를 지고, 손배 가압류로 신용불량자가 되고, 이혼하고, 우울증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고. 한 동료는 부인이 일을 하러 나간 사이 아이들과 있다가 이유 없이 애들을 때렸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도대체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나더래요. 제가 굴다리와 광고판에 올라갈 때 목적은 하나였어요. 어떻게든 이걸 끝장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거죠.”

회사 정문 앞 굴다리 망루에 올라 농성을 한지 한 달쯤 됐을 때 홍 지회장은 유서를 썼다. ‘내 한 목숨이 죽는 것으로 진실이 밝혀진다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을 강제로 끌어내리지 못하도록 목에는 항상 밧줄을 두른 상태였다. 때로 조합원들이 힘들다고 전화를 걸거나 ‘내가 죽고 네가 죽어야 이 일이 끝나지 않겠냐’고 절규를 할 때마다 주머니에서 유서를 꺼내 읽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죽으면 진실을 알리는 게 아니라,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너무 여러 번 꺼내 읽은 탓에 농성을 정리하고 내려와 주머니에서 유서를 꺼냈을 때 가장자리가 다 해어져 있었다.

“솔직히 무조건 진실을 알리면 우리가 승리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자본 위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이라도 진실은 꼭 밝혀지고, 법도 정당하게 판단할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최근 검찰이 회사에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걸 보면서, 아직까지 대한민국 법은 노동자에게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죠. 나도 국민인데, 노동자라는 이유로 누구나 평등하게 받아야 할 법의 기준이 가혹하게 다가온다는 건 참 살기 힘들게 만들어요.”

   
▲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 부근 광고판 위에 설치된 깃발 사이로 홍종인 지회장과 이정훈 지회장이 서있다. (사진 제공 / 정운)

홍 지회장은 토요일이었던 지난 8일 옥천경찰서가 우체국 등기택배로 보낸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출석기한은 월요일인 10일까지. 출석에 응하지 못했더니 12일에 또 다시 두 번째 출석요구서가 발부됐다. 3번째 요구서에 응하지 못하면 곧바로 긴급체포가 가능하다. 홍 지회장은 “희망버스를 앞두고 경찰이 뻔히 보이는 수를 쓰고 있다. 자본과 정권이 얼마나 합작해 노조를 탄압하려 하는지 매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행태가 얼마나 불합리하며, 부당한 것인지 진실을 알리고 싶어 했다. 홍 지회장은 “이 문제를 두고 대국민 설문조사를 하든지, 공청회를 하든지, 대통령을 앞에 두고 좌담회라도 열면 좋겠다. 그 정도로 답답하고 억울하다”고 답답해했다.

홍 지회장에게 노조 간부가 아닌, 인간 홍종인이 어떤 사람인지 물었더니 망설임 없이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린 시절 그는 그림을 그리고 글 쓰는 걸 좋아한 문학소년 이었다. 즐겨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별이 빛나는 밤에’에 보낸 사연이 채택돼 시집 100권을 받은 적도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테이프에 녹음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는 그는 어릴 때 꿈이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도 편안하게 가정을 꾸리고 큰 욕심 없이 내가 일한 만큼 가져가는 게 아니었겠냐”고 말했다.

“흔히 인생을 쳇바퀴에 비유하는데, 제 인생은 주기가 너무 빠른 것 같아요. 좀 천천히 다가오면 옛날 이야기도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지난 시간을 거슬러보면 쳇바퀴의 속도가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생각도 들더라고요.”

인생을 절반 쯤 살았을, 아직 청년의 얼굴이 남아 있는 그의 삶이 세상에 묻고 있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삶과 현재의 간극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무엇이 그의 삶을 의도하지 않은 쳇바퀴 속에 태워 더 빨리 가라고 채근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한다. 회사가 높은 이윤을 내야 노동자를 고용하고, 월급을 줄 수 있다고. 이윤을 위해 야간작업은 당연히 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여기에 홍 지회장은 되묻는다. “노동자가 있어야 공장이 돌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회사의 이윤이 존속해야 노동자가 살 수 있다는 말은 맞아요. 하지만 생산현장에 노동자가 없으면 회사는 존속할 수 없어요. 서로 필요한 존재인 거죠. 회사와 어용노조가 이야기하는 ‘상생’은 진정한 의미의 ‘상생’이 아니에요. 한쪽에 치우치면 양쪽 다 죽을 수밖에 없어요. 회사가 성장하고, 그만큼 노동자의 임금이 성장해야 나라의 경제가 커지는 것도 같은 이치에서 나오는 거죠.”

사람들의 말에선 빠져있지만, 홍 지회장의 말에는 들어있는 게 있었다. ‘사람’이다. 홍 지회장은 “빨리 노조 간부 명찰을 떼고 싶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서 조합원들과 술도 한 잔 먹고, 욕도 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싸움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와 내 이웃의 일상을 회복하고 싶은 절실함이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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